● 경기침체 심화에 구조조정 확산올 선박 수주량 59% 급감… 중소 조선업체 줄줄이 폐업대형사선 인력 줄이기 착수 철강사도 생산량 감축 검토실물경기 침체 확산으로 시멘트·유통업체도 큰 타격

텅빈 독, 한 중견 조선업체의 독이 건조한 물량이 없어 텅 비어 있다. 해운에서 시작된 불황이 조선·철강 등으로 이어지면서 국내 주요 기간산업에 구조조정의 공포가 되살아나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국내 주력산업인 해운과 조선ㆍ철강산업으로 이어지는 연쇄 구조조정이 점차 본격화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해운경기 불황이 조선업계를 거쳐 철강업계에까지 연쇄적인 충격을 주고 있어서다. 선박 물동량이 줄면서 선박 발주가 급감하고 이에 따라 철강 수요가 위축되는 식으로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 실물경기 침체에 따른 연쇄 구조조정은 이들 업종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감지되는 등 산업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해운업계는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극심한 해운경기 불황으로 재무구조가 부실한 업체들이 청산되는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중소 해운업체 가운데 이미 4개 업체가 올 들어 파산이 최종 결정됐으며 이달 안으로 또 다른 업체 한 곳의 파산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인력 조정도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법정관리를 받고 있는 회사는 영업인력이 계속 회사를 나가는 분위기"라며 "일부 업체의 경우 주요 인력이 모두 빠져나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반면 한진해운ㆍ현대상선ㆍSTX팬오션 등 대형 해운업체들은 아직 인위적인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해운업계의 위기는 곧바로 조선업계로 전이되고 있다. 물동량 감소와 운임 하락에 고전하는 해운사들이 신규 선박 발주를 줄임에 따라 조선업계는 심각한 수주난에 허덕이고 있다.

실제로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량은 520만CGT(부가가치 환산 톤수)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8.6% 급감했다. 같은 기간 수주액도 189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6.9% 줄어들었다.

현대중공업도 희망퇴직

이처럼 선박 수주가 급감하며 급기야 세계 1위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사무기술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기에 이르렀다. IMF 금융위기 때도 희망퇴직을 실시하지 않았던 현대중공업이 첫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것은 현재 상황이 IMF 때보다도 좋지 않다는 방증이다.

그나마 대형 조선업체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2008년 이후 단 한 척의 배도 수주하지 못하며 일감이 떨어진 중소 조선업체는 폐업에 내몰리고 있다. 통영에 있는 삼호조선은 올해 경영난으로 파산했고 21세기조선은 폐업을 앞두고 있으며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중인 신아SB조선은 회생과 폐업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성기종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부족한 발주량과 낮은 선가, 충분하지 못한 수주잔액 등으로 조선사 간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저가 생계형 수주로 발주가와 적정가의 차이가 여전히 큰 것은 조선업계가 2차 구조조정으로 들어섰다는 신호탄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부진한 계열사 정리 작업 속도

선박 건조량이 줄면서 조선용 철판인 후판 사용량이 감소함에 따라 철강업계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3ㆍ4분기 포스코의 조선용 후판 판매량은 총 89만6,000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나 줄어들었다. 더구나 철강업계는 조선 등 수요 감소 외에 만성적인 공급과잉 문제도 안고 있어 이미 다각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간 상태다.

포스코의 경우 업종이 유사하거나 수익성이 부진한 계열사들의 정리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스테인리스 코일 판매 계열사인 포스코AST와 포스코NST를 합병하고 플랜트 관련 계열사인 성진지오텍과 포스코플랜텍의 합병을 검토하는 식이다.

박기홍 포스코 부사장은 이날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기업설명회(IR)에서 "올해 말이나 내년 초가 되면 의미 있는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동부제철은 이달부터 내년 3월까지 6개월간 전임직원의 임금을 30% 삭감하기로 했으며 동국제강은 6월 연산 100만톤 규모의 포항 1후판공장을 폐쇄하며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사상 최악의 불황을 맞은 철강업계는 공장 폐쇄, 임금 삭감 등 구조조정에 이어 본격적인 감산에 대한 검토에도 들어간 상태"라며 "철강업계의 불황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업체별로 생존을 위한 대응책 마련에 몰두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업계 한 관계자도 "중소 업체들은 폐업 등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고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대형 업체마저 생존을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이들 산업은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업종이라는 점에서 산업 전반에 미칠 파장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부동산 경기 침체가 전이 되면서 시멘트 및 전자ㆍ가전 업계가 고통을 겪고 있으며 실물경기 침체로 유통업체가 경영난에 허덕이는 등 한국 산업 전반에서 연쇄 구조조정이 감지되고 있다.

ITㆍ전자도 안전지대 아니다

소니ㆍIBM 등 글로벌 업체 이미 몸집 줄이기 진행

실물경제 위기에 따른 체인형 구조조정에서 다소 비켜나 있는 것이 정보기술(IT)과 전자 산업이다. 삼성전자ㆍLG전자ㆍSK하이닉스 등은 회사마다 재무 상태에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글로벌 톱 플레이어의 지위 덕에 치킨게임에서 생존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소니ㆍIBM 등 굴지의 세계 ITㆍ전자업체가 글로벌 경기침체를 견디지 못하면서 인적 및 사업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어 한국만 안전지대가 될 수 없다는 위기감이 그것이다. 실제로 일부 회사의 경우 계약직에 대해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간판 주자인 소니는 현재 본사ㆍ계열사를 대상으로 2,000여명의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상태다. 한발 더 나아가 자회사 소니ECMS의 공장을 폐쇄하는 등 사업ㆍ인적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대대적 구조조정에 나선 샤프 역시 전체 직원의 20%가량에 해당되는 1만여 명의 직원을 감원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외에 NEC와 일본의 반도체 업계도 심각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인적 구조조정은 미국 대형 IT 업체도 예외는 아니다. 리서치인모션(RIM)이 경기침체에 따른 비용절감을 위해 전체 인력의 12%에 달하는 인력을 감원할 계획이다. HP도 내년까지 2만7,000여명을 줄이기로 했다. IBM도 북미 지역에서 1,000여명의 인원을 감축했고 MS도 마케팅 관련 인력을 줄이는 등 전세계 ITㆍ전자 업체가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심각성은 해외 업체가 겪는 문제를 우리 ITㆍ전자 업계도 똑같이 겪고 있다는 점이다. 내수시장 침체와 글로벌 경기불황 이라는 두 재앙이 엄습해오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말ㆍ연초에 있을 사업ㆍ조직 개편에서 인력 구조조정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자업계 고위관계자는 "현재 각 사마다 사업 구조조정 등을 논의하고 있다"며 "결국 효율성이 떨어진 사업부가 정리되면서 자연스럽게 인적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재용기자 jy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