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엠코 대행사 용역직원들이 원주민들이 집밖으로 나오지 않고 저항하자 문에 용접을 하고 단전과 단수를 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엠코가 서울에 처음으로 분양한 동작구 상도동 현대엠코타운 센트럴아파트가 지난달 25일 처음으로 입주를 시작했다.

새집 마련에 들뜬 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게 자연스런 풍경. 그러나 이곳에선 그런 모습을 찾아 보기 어렵다. 현대엠코와 원주민들 간의 갈등으로 연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파행의 원인은 추가부담금이다. 당초 원주민 조합원은 추가부담금 없이 확정가로 아파트를 받기로 계약했다. 그러나 현대엠코와 대행사 '현승'은 추가부담금을 요구하며 이들의 입주를 거부하고 있다. 재판을 통해서 추가부담금 일체를 납부할 의무가 없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막무가내였다.

이번 사태를 단순한 입주과정에서의 갈등 정도로 치부할 순 없다. 이해하기 어려운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현승'이 200명이 넘는 용역을 동원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원주민들을 반강제로 끌어냈다. 또 내부에 사람이 있는데도 문을 용접해 사실상 감금하기도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전기와 수도도 끊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당시 상황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고 한다. 난장판을 넘어 최악의 사태였다는 게 원주민들의 목소리다. 이런 일을 굴지의 대기업이, 도심 한복판에서 벌였다는 점은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대체 이곳에선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원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현대엠코 대행사 용역직원들이 지난달 25일 새벽에 현관문의 경첩을 잘라내고 입주민들을 끌어냈다.
계약 외 추가부담금 강요

시간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 134번지에는 주택조합사업이 추진됐다. 시행사와 시공사는 원주민들에게 살고 있던 집과 토지를 내주면 아파트 1채를 공급하겠다고 300여명의 원주민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추가부담금 없이 확정가로 아파트를 지어주겠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조합은 추가로 많은 수의 조합원을 모집했다. 그리고 원주민보다 많은 900여명의 상도동 비원주민을 조합원을 모아 '134지역주택조합사업'을 출범했다.

당초 시공사는 한진중공업이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건설경기 하락이 겹치면서 한진중공업 재정상황에 적색등이 켜졌다. 이에 한진중공업은 일반 분양분에 대해 20% 할인분양을 하라는 조건으로 공사에 들어가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조합 입장에서는 조합원 부담이 커져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조합은 결국 시공사 교체로 가닥을 잡았다. 그리고 양질의 아파트를 저렴하게 공급하고 추가부담금을 최소한으로 하겠다는 현대엠코와 계약을 맺었다.

현대엠코 대행사 직원 250여명이 원주민들이 입주한 아파트를 둘러싸고 있다.
원주민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ㆍ월세를 전전해야 했다. 그래도 오직 '내 집'이 생긴다는 희망 하나로 견뎌 왔다. 그런데 이런 원주민들의 꿈이 좌절 위기에 처했다.

문제는 2009년 7월 현대엠코가 원주민들에게 모집조합원과 동일하게 1억5,000만원에 달하는 추가부담금을 납부하라는 안건을 조합총회에서 통과시키면서 시작됐다. 당초 계약조건과 다른 요구에 원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원주민들과 조합은 이 문제를 들고 법정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2010년 2월 조합과 조합원, 현대엠코는 변경된 분양계약서를 체결했다. 여기엔 '소송 결과를 수용하고 이행한다', '소송이 꼬리를 물지 않도록 재판은 1심으로 끝낸다', '소송 결과로 인한 차액은 나머지 조합원이 부담한다' 등의 내용이 명시돼 있다.

십시일반 소송비를 마련한 원주민들은 1년간 지루한 법정 다툼을 벌였다. 그리고 2010년 12월 판결이 나왔다. 결과는 원주민들의 승리.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원주민들은 청산부담금을 포함하여 추가부담금을 일체 납부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원주민 계속 압박

현대엠코 대행사 용역직원이 입주한 원주민 집 앞에 진을 치고 24시간 감시하고 있다.
하지만 승소의 기쁨도 잠시. 현대엠코는 약속과 달리 '조합총회의 의결은 헌법보다 우선한다'는 안내문을 보내왔다. 사법부의 판결과 원주민들의 재산권을 무시한 채 추가부담금 납부를 종용하고 나선 것이다.

이후 현대엠코는 계속해서 원주민들을 압박했다. 2012년 '추가부담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조합원에서 제명시켜 버리겠다'는 공문을 4차례에 걸쳐 보냈다. 사실상 집과 땅을 빼앗겠다는 말이었다. 이에 원주민들은 법원에 조합원 제명절차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승소했다.

현대엠코는 입주증 발급도 거절했다. 원주민들은 입주증을 받기 위해 납부해야 할 모든 잔금(발코니 확장비, 층간 부담금, 이주비, 아파트 관리비 선수금, 기존 부담금 등)을 치렀다. 그리고 9월20일 입주센터에서 입주증 발급을 요청했다. 그러나 용역들에 의해 입주센터 출입을 제지 당했다. 입주증을 받지 못한 건 두말할 것 없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300명의 조합원 가운데 250여명이 현대엠코와 합의를 했다. 남은 50여명의 원주민들이 완강하게 저항하자 현대엠코는 강수를 뒀다. 미합의 조합원들에 대한 유치권 행사를 공언하고 나선 것이다. 이 경우 원주민들은 재산권을 행사하기 어려워진다. 심한 경우 집이 경매에 부쳐질 수도 있다.

이와 관련, 현대엠코 관계자는 "현재 공사를 마치고도 대금을 받지 못한 상황"이라며 "따라서 유치권 행사 등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추가금 관련 갈등이나 소송 등은 조합과 원주민들 사이에 벌어진 일일 뿐"이라며 "시공사인 현대엠코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현대엠코가 서울에 처음으로 분양한 동작구 상도동 현대엠코타운 센트럴아파트 조감도.
용역 동원해 끌어내고 감금

다급해진 미합의 조합원 50여명은 입주 계약일이던 지난달 24일 자신의 집을 점유했다. 그러자 현대엠코는 실력행사에 돌입했다. 대행사인 '현승'을 통해서다. 이 회사는 일단 청소대행업체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상 '용역회사'라는 게 원주민들의 평가다.

'현승'은 원주민을 제외한 나머지 조합원들의 추가부담금 총액을 확정한 후 추가로 발생하는 수익을 귀속 받는 '청산대행체제'를 맡았다. 미합의 원주민들로부터 한 푼이라도 더 뜯어내면 바로 대행사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가는 구조인 셈이다.

그러나 '현승'은 법적으로 청산대행업무를 맡을 수 없다. 청산대행업무를 맡기 위해선 관할 구청 주택과로부터 인허가 받아야 한다. '현승'도 신청서를 냈으나 두 차례나 반려됐다. 이 때문에 낸 행정소송에서도 패소했다. 조합 외엔 청산대행업무를 맡을 수 없다는 규정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승'은 청산대행업무를 집행했다. 이 과정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먼저 신림동 일대에서 활동하는 조폭 등이 포함된 250여명의 용역직원들을 아파트 주변을 둘러싸고 도열을 했다. 이어 그라인더, 용접기 등 장비를 챙겨 아파트 내부로 들어갔다. 이들은 스스로를 '현대엠코 직원'이라고 소개하며 원주민들을 끌어냈다.

노인은 물론 임산부에게도 자비는 없었다. 상의를 탈의하고 문신을 드러내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가 하면 "험한 꼴 당하고 싶지 않으면 합의하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열어주지 않는 경우에는 그라인더로 경첩을 자르고 자택 내부로 들어가기도 했다.

심지어는 내부에 원주민들이 있는 상태에서 문을 용접해 사실상 감금하기도 했다. 별도로 CCTV를 설치하고 문 앞에 24시간 진을 치는 등 철저하게 감시했다. 문을 지속적으로 두드리거나 시끄러운 소리를 내 원주민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감금한 가구의 전기와 수도를 끊기도 했다. 때문에 원주민들은 밤에는 촛불에 의지해 생활해야 했다. 화장실엔 배설물이 넘쳐났다. 당연히 먹거리를 해결할 수도 없었다. 출입문에서 식당 배달부를 통제해 음식을 주문해 먹을 수도 없었다.

원주민들은 결국 용역 직원들의 눈을 피해 베란다에서 지인이 올려주는 음식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그야말로 지옥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었다는 게 원주민들의 증언이다. 이런 상황은 원주민들이 촬영한 동영상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일부 미합의 원주민들이 끝내 저항하자 현승 측은 "지금까진 조폭들만 투입했지만 이제부터는 징역살이 할 '특별조'를 투입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피를 보겠다는 강도 높은 협박이었다.

물론 원주민들이 가만히 있던 건 아니다. 잔뜩 겁에 질려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러나 20분이 훌쩍 지나서야 늑장 출동한 경찰은 오히려 원주민들을 잡아갔다. 경찰은 "민사로 해결하라", "원만히 해결하라" 등의 말로 회유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현대엠코 관계자는 "일부 물의가 빚어졌다는 얘기는 전해 들었다"면서도 "불법점거가 예상되는 세대에 용접을 했을 뿐 내부에 사람이 있는데도 용접을 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세법 위반 의혹도 제기

'현승'의 무차별 공세와 기댈 곳 없는 상황에 7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백기를 들었다. 이 과정에서도 현대엠코의 세법 위반 의혹이 제기됐다. 협상 테이블에서 '현승'과 현대엠코 직원이 나와 "양도세를 안 내게 해줄 테니 6억8,000만원짜리 집을 5억2,000만원에 팔라"고 제의한 것이다.

그러나 양도세를 탈세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원주민에 과징금이 부과된다. 이와 관련 현대엠코 직원은 "10년 전에 투자한 금약을 회수한 걸로 장부처리 하면 된다"며 "10년전 자료는 금융감독원을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며 원주민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현대엠코는 "공사대금이 250억원 남아 유치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한다. 그런데 원주민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추가대금은 명분일 뿐 실제론 합의를 통해 아파트를 매입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현대엠코는 상도동 일대에 2년간 신규 아파트 공급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상도 엠코타운 입주로 인근의 전세수요가 몰려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집값도 많이 뛰었다. 그 차익을 노리고 무리수를 뒀다는 게 원주민들의 주장이다.

원주민들은 "법치국가에서 굴지의 대기업이 법보다 주먹, 공권력보다 힘을 앞세운 물리력 행사를 통해 주민들의 정당한 권리와 재산권을 강탈해 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대엠코는 현재 서울ㆍ경기 지역 40여곳에 토지주 조합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조합원들에게 안겨준 불신은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리한 잇속 챙기기가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은 격이 된 셈이다. 상도엠코타운에서 탄식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