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후 코리아는 올해 말 한국 비즈니스를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2010년 김대선 야후코리아 대표가 새로운 온라인 비즈니스전략을 발표하는 모습.
컴퓨터를 켜고 넷스케이프 혹은 익스플로러 아이콘을 클릭하면 화면 상단에 선명한 YAHOO(야후) 로고가 떠오른다. 불과 십수 년 전, 인터넷이라는 신세계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이다. PC(Personal Computer: 개인용 컴퓨터)가 없었던 나로서는 대학 내 컴퓨터실을 주로 이용했다. 당시 컴퓨터실에 설치된 PC 대부분은 야후로 첫 화면을 장식했었다.

야후가 곧 인터넷에 가기 위한 유일한 통로처럼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우리는 야후를 통해 수많은 정보들을 접했고, 무료 이메일로 친구들과 소통했다. 야후코리아의 철수 발표가 사람들의 마음 한켠을 허하게 하는 것은 저마다 야후에 담긴 추억 한 자락쯤은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엠파스, 프리챌, 라이코스 등 그동안 무수히 나타나고 사라졌던 뭇 포털사이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인터넷 보급 초창기부터 포털사이트 안방마님 역할을 해왔던 야후가 올해 말로 국내 사업을 중단하고 야후코리아를 철수시킨다. 1997년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지 15년 만이다.

야후코리아는 19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올해 말로 국내 사업을 종료한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야후코리아 사이트는 연말까지만 운영되며 이후에는 야후 미국 사이트로 연결될 예정이다.

야후코리아 측은 철수이유에 대해 "한국에서의 사업이 지난 몇 년간 도전 과제에 직면해왔다"며 "야후의 비즈니스를 개선하고 더 강력한 글로벌 비즈니스 수립에 자원을 집중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업계 전문가들은 야후코리아 철수의 가장 큰 원인으로 검색광고대행 자회사인 오버추어코리아가 마지막 보루였던 다음커뮤니케이션과의 재계약에 실패했던 것을 꼽았다. 2002년 국내시장에 진출한 오버추어코리아는 네이버, 다음, 네이트, 파란 등 국내 대표 포털사이트와 언론사 사이트의 검색광고를 대행하며 강력한 독점체제를 구축, 야후코리아의 캐시카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2010년 네이버가 자체 검색광고 플랫폼을 만들어 독자 노선을 걸은 데다 이번에 다음마저 등을 돌리면서 그동안 오버추어코리아의 매출로 포털사이트 실적 부진을 상쇄해왔던 야후코리아마저 타격을 받게 된 것이다.

오버추어코리아의 부진이 야후코리아 철수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원인은 시장에서 겪은 부진에 있었다. 한때 검색시장 1위를 달리던 야후코리아는 2000년대에 들어서며 다음과 네이버에 차례로 선두를 내줬다. 시시각각 변하는 국내 인터넷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하고 계속 하강곡선을 그린 야후코리아는 결국 지난 8월 말 기준 0.2% 수준의 초라한 검색 점유율을 기록하며 체면을 구겼다.

야후 본사의 사정도 문제였다. 글로벌 검색시장에서 구글에 밀려 나날이 하락세를 겪었던 야후는 최근 내부분열까지 겪으며 경영진을 수시로 교체해왔다. 한마디로 엉망인 내부사정을 돌보기조차 바쁜 상황이라 실적이 최악이었던 야후코리아에 더이상 힘을 불어넣을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야후코리아는 지난 7월 야후의 CEO로 선임된 뒤 전 세계에 걸쳐 강도높은 사업조정에 나선 마리사 메이어의 뜻에 따라 철수, 전권을 아시아 총본부인 대만에 넘기게 됐다.

한때 최고의 포털사이트로 상징성 커

"이순신 장군님, 야후는 다음이 물리치겠습니다.", "야후에서도 못 찾으면 엠파스."

한때 검색시장의 선두주자였던 야후코리아를 공략한 후발주자들이 1999년 선보인 광고문구들이다. 이처럼 포털사이트 비교광고 전쟁이 불붙었던 당시 이른바 대세였던 야후코리아는 여타 업체들이 넘어서야 할 벽이자 목표였다.

국내 포털사이트 역사에서 야후코리아가 가지는 상징성은 대단했다. 현재 검색시장을 사실상 양분하는 네이버와 다음이 자리를 잡기 전인 1997년대 9월, 야후코리아는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거둔 성공을 바탕으로 국내시장에 무혈입성한 최초의 포털사이트였다.

한국 진출 1년 만에 300만 페이지뷰를 기록하며 국내 최고의 포털사이트로 등극했던 야후코리아는 2년 후인 1999년 무료 이메일 서비스를 도입하며 2,000만 페이지뷰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뉴스 제휴 공급, 쇼핑몰, 사용자 기호 연구 시설 등을 최초로 선보이며 후발 포털사이트의 길라잡이 역할을 해왔다.

야후코리아가 쇠락의 길로 접어든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네이버와 다음, 엠파스 등 사용자 요구에 맞춘 다양한 서비스를 빠르게 내놓았던 토종 포털사이트들이 부상하면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화된 까닭이다. 야후코리아의 경쟁력 악화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미국 본사의 운영방식과 서비스를 고수하며 한국인의 취향과 사용습관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해 빠르게 변화하는 국내 인터넷 시장을 주도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했다"고 진단했다.

야후에서 네이버로 중심이동

국내 인터넷의 역사는 포털사이트와 궤를 같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초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등이 일으킨 PC통신붐으로 사람들은 굳이 익숙지 않은 인터넷 공간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때 등장한 포털사이트는 '현관', '관문'이라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인터넷 활성화를 향한 문을 열었다. 물론 이 당시의 포털사이트는 현재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검색엔진 위주의 서비스로 시작됐다.

국내 최초의 검색엔진들은 대학생ㆍ대학원생들이 1995년을 전후해 개발한 코시크(Kor-seek.com), 까치네(kachi.com), 미스다찾니(mochanni.com) 등이었다. 코시크는 최초의 한글 검색엔진이라는, 까치네와 미스다찾니는 각각 최초의 키워드형 검색엔진과 메타검색엔진이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1996년에는 국내 최초로 상업용 검색서비스인 심마니(www.simmani.com)가 등장했다. 한글과컴퓨터의 황오정씨를 비롯해 다섯 명의 개발자가 참여해 만든 심마니는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그 해 국내 최고의 검색엔진으로 등극했지만 이듬해 야후가 국내에 진출하면서 상황은 뒤바뀌었다. 당시 무료 웹메일 서비스가 거의 전부였던 상황에서 야후코리아는 해외에서의 웹검색 디렉터리 서비스를 무기로 국내 검색시장을 평정했다. 이 시기 라이코스 또한 국내에 진출했지만 야후코리아만큼의 큰 반향을 거두지는 못했다.

야후코리아의 독보천하가 진행되던 1990년대 말, 마침내 토종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와 다음의 반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네이버와 다음은 검색엔진이 아닌 포털사이트로 승부를 걸었다. 단순히 웹에 있는 방대한 정보를 찾아서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지식인, 카페 등과 같이 사용자 콘텐츠를 모으고 그 안에서 사용자들이 오래도록 머물 수 있게 만드는 전략을 이용한 것이다. 때마침 불어온 인터넷 보급 바람과 맞물려 진행된 포털사이트 전쟁에서 '지식검색'이라는 신무기를 장착한 네이버가 선두를 차지, 지금까지 업계의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철수한 포털 상당수

네이버, 다음 등이 포털사이트 시장을 장악하며 회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던 것은 야후코리아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엠파스, 프리챌, 파란닷컴 등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유수의 포털사이트들이 문을 닫아왔다.

이 중 야후코리아와 함께 가장 최근에 사업을 접은 것은 파란닷컴이었다. 그동안 KT가 유지해왔던 파란닷컴은 지난 2004년 한미르와 하이텔을 통합해 탄생한 지 8년여 만에 자취를 감추게 됐다. 초기에 1GB의 대용량 메일을 적극 홍보하며 5대 포털사이트에 이름을 올렸던 파란닷컴은 0.1%에도 못 미치는 검색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다가 결국 폐쇄됐다.

야후코리아, 네이버, 다음 등과 함께 2000년대 초반 선전했던 엠파스는 2009년 문을 닫았다. 코스닥 상장사였던 엠파스가 2006년 SK컴즈에 인수되면서 별도로 사이트 또한 네이트와 통합됐다.

폐쇄됐다가 소리소문없이 부활한 포털사이트도 있다. 한때 검은색 개로 입소문을 탔던 라이코스가 그 주인공이다. 라이코스는 다음이 인수했다가 지난 2010년 인도기업에 재매각됐다. 현재 뉴스, 날씨 등 기타 서비스는 전혀 없이 최소한의 검색엔진만 제공되고 있다. 초기화면에는 여전히 검은색 개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드림위즈는 여전히 포털사이트를 열고 있지만 심각한 경영난으로 서비스가 언제 중단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난해 6억9,000만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드림위즈는 계속되는 적자로 결손금이 쌓이며 올해 1분기 말 기준 자본금 33억원에 자본총액이 5,500만원에 불과한 상태다.

획기적인 커뮤니티 서비스로 2001년 200만 가입자를 단숨에 모으며 큰 반향을 일으켰던 프리챌도 간신히 명맥만을 이어가고 있다. 2002년 말 무리하게 시행한 유료화 정책이 실패하며 지난해 11월 파산한 프리챌은 웹하드 업체인 아이콘큐브에 매각, 최소한의 서비스를 유지하고 있다.

독과점 폐해 예상돼

저마다 특색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며 다양한 생태계를 만들었던 포털사이트들이 하나하나 문을 닫기 시작하며 특정 업체들의 독과점이 심각한 수준에 다다른 상태다. 국내 포털사이트 시장은 1강(네이버)-1중(다음)-1약(네이트) 그리고 '약'으로 분류하기도 민망한 다수 업체들로 분류된다. 지난달 기준 포털사이트 시장 점유율은 네이버가 71.9%, 다음이 21.7%, 네이트가 1.8% 수준이다.

한때는 시장점유율이 언제라도 바뀔 수 있다고 여겼던 전문가들도 어느새 강고해진 독과점 체제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사용자 자신이 원하는 정보들을 접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 포털사이트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특정 업체들의 시장 지배는 나아가 정보의 지배, 여론의 지배 등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까닭이다.

포털사이트 업계 관계자는 "3대 포털사이트라고 꼽히는 네이트도 시장점유율이 2%에도 못 미치는 현 상황이 바로 독과점"이라며 "방대한 정보와 그것을 통한 검색광고수익이 맞물려 돌아가며 재생산되는 이상 현 체제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 포털사이트 이름 의미는?
네이버=항해하는(navigate) 사람(~er)… 다음은 '미래 지향' 순우리말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인터넷을 실행할 때 가장 먼저 뜨는 포털사이트들이다. 그렇다면 익숙해진 까닭에 귀에 쏙쏙 박히는 포털사이트 이름들의 유래는 어떻게 될까?

네이버(NAVER)는 '찾다'라는 뜻의 navigate에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닌 er을 결합해 만든 이름으로 '항해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포털사이트의 이름과 같았던 사명은 2001년 NHN(Next Human Network)로 변경했다. 사람과 사람, 정보와 정보, 네트워크와 네트워크 간의 연결을 뜻한다.

다음(DAUM)의 이름은 순 우리말인 다음(어떤 차례의 뒤)에서 따왔다. 다채로운 소리(多音)를 담고, 미래를 지향한다(NEXT)는 기업철학이 담겨있다.

네이트(NATE)는 '다음' 이라는 뜻의 next와 '문'의 의미를 담은 gate의 결합어다. 미래를 열어주는 다음 세상의 문이라는 뜻으로 사람, 정보, 콘텐츠 등이 결합되고 서로의 차이를 채워줌으로써 완성된다는 뜻을 담았다.

네이트의 전신인 라이코스(LYCOS)와 2003년 네이트에 인수합병된 싸이월드(CYWORLD)도 의미심장한 이름을 지니고 있다. 라이코스는 라틴어로 늑대거미를 뜻한다. 거미의 많은 발만큼이나 폭넓은 검색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싸이월드는 가상이라는 의미를 담은 cyber와 세계라는 뜻의 world가 결합해 만들어졌다. cy는 사람간의 사이를 의미하기도 한다.

야후(YAHOO)와 구글(GOOGLE)의 작명과정에는 의외성이 개입돼있다. 야후는 소설 걸리버여행기에 나오는 원숭이처럼 생긴 동물의 이름이다. 창립자인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가 자기들의 모습이 야만적인 야후와 닮았다고 하여 즉흥적으로 지은 사명이라고 전해진다. 구글은 미국의 수학자 에드워드 케스너의 조카인 밀튼 시로타가 만든 googol이라는 신조어에서 유래된 것이며 '10의 100제곱'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인터넷의 광대한 정보를 구글이 모두 다루겠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창립 당시 실수로 인해 googol을 현재 이름인 GOOGLE이라 적었는데 이후에도 해당 이름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