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공식적으로 하나가 된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 선진당을 품에 안은 새누리당은 보수 대연합의 신호탄을 성공적으로 쏘아 올렸다며 흐뭇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 새누리당은 충청권과 대구ㆍ경북(TK)을 묶는 중부 벨트 완성에도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선진당과의 합당이 전부는 아니다. 이회창 전 선진당 대표, 이인제 대표와 함께 충청권의 '거물' 중 하나인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는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박 후보의 보수 대연합과 중부 벨트 구상에도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작지 않은 이유다.

정 전 총리는 박 후보가 대통령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양극화 해소와 서민경제를 살리는 데 부적합 ▦가부장적 리더십 ▦그릇된 역사인식 등을 꼽고 있다.

반면 정 전 총리는 안철수 무소속 후보에 대해서는 "동반성장에 대한 의지와 실천능력이 충분한지 확인한 다음에 지원할 수도 있다"고 말해 이른바 '조건부 지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정치권의 한 인사는 "정 전 총리와 박 후보가 등을 돌리게 된 데는 과거 여러 차례 조우(遭遇)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을 것"이라며 "정 전 총리는 적어도 현정권에서 대통령에 이어 2인자였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친박의 구애 그러나…

친박(친 박근혜) 진영은 지난 추석연휴 무렵 정 전 총리 측과 접촉을 시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친박 진영은 선진당과 합당 전에 정 전 총리를 영입한다면 충청권 접수 시나리오가 순탄하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정 전 총리 측은 친박의 제안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예상했던 대로"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계가 진전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한마디로 무리라는 것이다.

정 전 총리가 총리 재직 시설 공ㆍ사석을 통해 여러 차례 박 후보와 만나거나 마주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그럴 때마다 박 후보는 '의례적인' 악수나 목례만 했을 뿐 그리 살갑게 대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정 전 총리는 자존심과 자부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물이다. 그런데 박 후보의 응대가 좀 냉랭했다고 하니 정 전 총리로서는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겠냐"고 반문했다.

정 전 총리는 얼마전 박 후보에게 쓴소리를 했다. 정 전 총리는 지난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동반성장서울연대 특별강연회'에서 "슈퍼헤비급(대기업) 선수와 플라이급(중소기업) 선수에게 권투를 시켜놓고 룰을 잘 지킬 테니 잘해보라는 식"이라며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안 하겠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고 정 전 총리가 민주통합당의 손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정 전 총리는 같은 자리에서 "민주당은 재벌을 손보겠다고 하는데 재벌 손보면 다 되느냐"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일자리"라며 문재인 후보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정 전 총리의 선택이 대선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까지 정 전 총리의 발언과 최근 상황 등을 종합해보면 결국 안 후보를 돕지 않겠냐"고 전망했다.

누가 정운찬과 함께 할까?

이인제 선진당 대표는 새누리당과 합당 직후 "15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왔다"며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모든 선진당 식구들이 합당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러 곳에서 역풍 조짐이 비치고 있다.

권선택 류근찬 임영호 전 의원 등은 지난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탈당을 공식 선언했다. 흡수 합당에 반대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17대 국회 때 열린우리당 노란 점퍼를 입고 금배지를 달았던 권 전 의원은 곧바로 민주당에 입당했으나, 류 전 의원과 임 전 의원은 당분간 무소속으로 남아 독자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선진당 소속 인사들의 탈당은 권 전 의원 등으로 그치지 않을 것 같다. 충청지역 광역ㆍ기초의회 의원들 중 상당수도 둥지를 옮길 가능성이 크다. 이시우 보령시장, 유환준 세종시의회 의장 등은 새누리당과의 합당 발표 직후 선진당을 나와 무소속 신분이 됐다.

충청권의 간판이었던 이회창 전 선진당 대표도 현재로서는 새누리당과 선진당의 합당을 썩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이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지난 25일 언론 인터뷰에서 "이 전 대표가 선진당의 합당에 지지 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다"며 "이 전 대표는 (이미) 선진당을 탈당했기에 지지 의사를 밝힐 위치가 아니다. 합당과 관련해 전혀 (이 전 대표 측과) 접촉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이인제 대표는 이날 합당 선언 직후 기자들과 만나 "선진당의 창당 주역인 이 전 대표에게 합당과 관련해 사전에 상세하게 보고했고, (이 전 대표가)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회창 전 대표는 새누리당과 선진당의 합당 과정에서 일정 부분 거리를 뒀던 것 같다. 당분간 이 전 대표가 무소속 신분이 된 류근찬 전 의원 등과 정국을 관망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들이 정 전 총리와 함께 안철수 후보를 지지할 경우 새누리당의 충청권 접수와 중부 벨트 완성 구상에도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