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레일 통행세 논란 '일파만파'부품 자체조달 가능한데 STX 끌어들여 의혹특정기업 끼워넣기에 공정위 법 개정 준비감사원도 구매 특감 예정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지난 7월 체결한 파키스탄 중고 철도차량 수출 계약 과정에서 특정 기업을 수의계약 형태로 끼워넣은 사실이 드러났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공정위는 통행세 제재와 법 개정에 적극적 행보

파키스탄 중고 철도차량 수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를 두고 ‘통행세’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차량정비용 부품, 소모품 등 파키스탄 중고 철도차량 수출 사업에 필요한 부품들을 코레일이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음에도 굳이 중간에 STX를 끼워넣으며 ‘통행세’ 문제를 야기한 것이다.

특히 대기업들이 같은 그룹 내 계열사를 끼워넣어 중간 마진(margin)을 챙겨주는 일반적인 통행세 사례와는 달리 코레일은 STX라는 별개의 회사를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더욱 많은 의혹을 낳고 있다.

통행세 제재 강화 예정

통행세란 구매업체가 납품업체에 발주할 때 업무와 관계없는 다른 업체를 중간에 넣어 별다른 역할 없이 마진만 챙기게 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기업 간 거래에서 공공연한 관행처럼 여겨져 왔지만 현행법상 제재기준이 불명확해 처벌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롯데그룹에 6억4,900만원 상당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직접적인 통행세 제동에 나선 것이다.

공정위는 통행세 규제를 위한 법 개정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연구용역을 의뢰해 작성한 ‘독과점 시장에서의 경쟁을 제한하는 불합리한 거래관행 규제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제23조 1항 7호(부당하게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대해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해 지원하는 행위)에 기반, 통행세를 엄격하게 규정하는 법 개정을 진행할 계획이다.

STX는 도대체 왜?

공정위의 통행세 제재 움직임이 강화됨에 따라 파키스탄 중고 철도차량 수출 계약에서 일어난 코레일의 ‘특정기업 끼워넣기’ 또한 문제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해당 계약이 공정위가 대기업의 통행세를 대상으로 첫 제재를 가한 것과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데다 그 방법 또한 전형적인 ‘계열사 끼워넣기’ 형태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코레일은 파키스탄과 144억원 규모의 중고 철도차량 10량 수출 및 차량유지보수 컨설팅 계약을 체결했다고 지난 7월23일 발표했다. 보유 중인 중고 철도차량을 내년 3월까지 수리해 파키스탄에 수출하고 운전ㆍ유지보수인력도 2년간 현지에 파견한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파키스탄에 중고 철도차량을 수출하면서 함께 진행되는 부품공급계약 과정에 STX가 끼어있다는 사실이다. 코레일과 파키스탄이 합의한 계약에는 5년간의 사업이행보증서(2년간 수리ㆍ품질보증 무상 AS)가 포함돼 있다. STX는 무상 애프터서비스(AS) 기간 동안 필요한 예비품과 소모품, 차량정비용 부품 등의 공급 계약을 맡았다.

주목할 사실은 STX가 공급을 맡은 부품들이 코레일 자체적으로도 충분히 공급 가능하고 실제로 그동안 그렇게 해왔던 것들이라는 점이다. <주간한국>은 최근 코레일의 파키스탄 중고 철도차량 공급에 따른 유지ㆍ보수 등의 부품 명단을 확보했다.

명단을 확인한 결과 STX와 공급계약을 맺은 해당 부품들은 그동안 코레일이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에 따라 납품업체를 통해 직접 공급받아왔던 것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실제로 코레일은 국내에서도 321량의 디젤 기관차량을 운영하며 관련 부품들을 지속적으로 구매ㆍ소진하고 있다. 해외수출의 경우에도 그 나라의 환경에 맞게 새로 제작해야 하는 부품들 이외에는 전량 자체 조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독 이번 파키스탄 중고 철도차량 수출과 관련해서는 STX를 끼워넣은 3자 계약을 맺음으로써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코레일 차량기술단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본체에 관련되거나 고가품은 본사에서, 소모품은 부산철도차량정비단에서 업체를 통해 직접 납품받고 외자(외국에서 들어오는 부품)는 조달청을 이용한다”며 “파키스탄 중고 철도차량 수출과 관련한 것은 해외사업단에서 담당하고 있어서 어떤 식으로 부품을 조달하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간마진은 어디서?

‘코레일-STX-납품업체’ 형태로 부품을 공급받더라도 ‘코레일-납품업체’일 때보다 상호 간에 이득이 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중간에 유통과정이 추가될 경우 최종 단가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중간 유통업체의 마진도 고려해야 하는 까닭이다.

유통업체들이 최종 단가를 낮추기 위해 유통단계를 간소화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코레일로서는 STX가 계약과정에 끼어듦으로 인해 납품업체와 직접 계약을 맺을 때보다 높은 가격으로 부품을 공급받을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중간에 끼어든 STX가 일정 부분의 마진을 챙겨가야만 하는 상황에서 코레일 또한 기존과 동일한 가격으로 부품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납품업체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에도 코레일은 납품업체가 챙겨야 하는 마진을 STX에 몰아줬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결국 ‘STX 끼워넣기’로 코레일이든 납품업체든 어느 한 쪽은 피해를 보게 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상거래과정을 조사해 경영효율성 등 중간유통의 필요성을 살펴봐야 한다”면서도 “대기업 통행세의 경우처럼 불필요한 유통과정이 늘어나면 결국 부당거래 의혹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의계약도 문제

코레일이 ‘코레일-납품업체’의 기존 구도에 STX를 끼워넣는 과정에서 수의계약을 한 것은 더욱 큰 문제다. 이와 관련, <주간한국>이 제2447호(2012년 10월22일 자)의 ‘특정 민간기업과 커넥션 있었나’ 기사에서 파키스탄 중고차량 수출사업의 수의계약 문제를 지적했을 때 코레일 측은 보도해명자료를 보내 반박한 바 있다.

당시 코레일 측은 해명자료를 통해 “공기업ㆍ준정부기관 계약사무규칙 제6조5항3호(해외공사를 수주하거나 수행할 때 발주자의 요구사항을 이행해야 하거나 계약기간을 준수해야 하는 등의 사유로 경쟁을 시킬 수 없는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경우 일반경쟁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에 기반, 수주경쟁력을 고려하고 해당사업과 해당국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민간기업과 협력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관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코레일이 그동안 납품업체들로부터 직접적으로 부품공급을 받아왔던 점을 감안한다면 굳이 철도사업을 전혀 진행해본 적이 없었던 STX를 수의계약으로 끌어들인 것은 충분히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이와 관련 코레일 측은 “파키스탄 중고 철도차량 수출 건은 관련 부서(해외사업단)에서 가장 잘 알고 있으니 그쪽에 문의하라”고 공을 넘겼고 해외사업단은 취재불응 의사를 밝혔다.

한편, 코레일-파키스탄 중고 철도차량 수출 사업 중 잡음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양국 모두 관련 사업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감사원은 이른 시일 내에 코레일 구매 관련 특별감사를 진행할 예정인 데다 파키스탄 측 사업 당사자인 NLC(national logistic cell: 국가물류협회) 측에서도 해외 리베이트와 관련한 자체 조사를 시작했다.

‘코레일의 해외사업 파트너 선정’ 관련 반론보도


본지는 10월 29일자 및 11월 12일 자로 코레일의 파키스탄 중고철도차량 수출과 관련한 협력사 선정에 의혹이 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코레일은, “동 사업은 파키스탄에서 중고기관차 10량 구매를 위해 국제입찰로 진행한 사업으로 국내 민간 기업들이 공동으로 참여한 협업관계에 기초하여 응찰 수주하였는바 이와 같은 협업관계 및 수의계약은 관례와 ‘공기업·준정부기관 계약사무규칙’에 의거한 것이다”라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