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별 창업열풍 주도 품목은

최근 인터넷에서 한국 자영업의 현실을 담은 사진이 화제다. 사진에는 'PC방' '치킨' '커피' 등 창업붐을 일으킨 사업들이 적혀있다. 사진의 배경엔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삽화가 자리하고 있다. 잘 된다는 얘기가 돌자 너도나도 사업에 뛰어들었음을 풍자하는 것이다.

실제, 사진에 언급된 종목들의 창업 열기는 대단했다. 그야말로 우후죽순, 파죽지세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자고 일어나면 새 가게가 생겨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이쯤 되니 시대를 풍미한 자영업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어떤 시기에, 어떤 사업이, 무슨 이유로 인기를 끌었을까.

시초는 PC방…현재는 '시들'

창업 열풍의 시초는 PC방이다. PC방은 90년대 후반 등장했다. 당시 시간당 이용요금은 1,500~2,000원 선이었다. 그럼에도 PC방은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당시 'PC방 사장님'들은 거의 현금을 쓸어 담다시피 했다. 블리자드에서 출시한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공이 컸다.

2000년대 초부터 PC방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증가세는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그리고 현재 '한집 건너 PC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수가 많아졌다. 그러나 현재 PC방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문제는 과잉 공급에 따른 경쟁 과열이었다. PC방들이 손님의 발길을 사로잡기 위해 무리한 '제 살 깎기'를 거듭한 결과다. 심지어는 1시간 이용요금 400원에 음료까지 제공하는 PC방이 등장하기도 했다. 임대료, 전기세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밑지고 장사하는 셈이다.

여기에 모바일 게임 부상, 카페 문화 확산, 금연법 제정 등 PC방을 둘러싼 환경이 악화일로로 내달리고 있다. 업계에서 '폐업만 있고 창업은 없다', '멋모르고 PC방을 창업하는 건 자살행위'라는 자조 섞인 한숨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 문화관광부 조사 결과, 전국 PC방 수는 2009년 2만1,547개에서 2010년 1만9,014로 2,533개가 줄었다. 열 곳 중 한 군데가 문을 닫은 셈이다. 2000년 이후 10년 동안 2만~2만2,500여개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던 전국 PC방 숫자가 처음으로 2만개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한국인터넷PC방협동조합 관계자는 "PC방이 과잉 공급된 데다 주변 상황도 너무 좋지 않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이익도 내지 못하면서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문을 열고 있는 점포가 상당수"라고 말했다.

IMF 그늘서 자라난 치킨집

치킨도 PC방과 비슷한 시기인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 사이 창업붐이 일었다. BBQ, 페리카나 등 다양한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빠른 속도로 팽창해 나갔다. 그렇다고 치킨집이 일확천금을 노릴만한 사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치킨집의 창업이 줄을 이었던 건 그 이면에 'IMF 사태'라는 그늘이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직장을 그만둬야 했던 퇴직자들이나 무너진 중소 제조업자, 소상공인 등의 창업이 봇물을 이룬 것이다.

취업 준비자들이 다른 사업이 아닌 치킨집에 유독 관심을 보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치킨 사업 대부분이 프랜차이즈기 때문이다. 실제, 2010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치킨집의 75%가 프랜차이즈 가맹점이라고 한다.

직장이나 해당 분야에서 오랜 기간 일해 온 이들이 창업을 생각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는 비교적 창업이 쉽다. 본사가 식재료 제공부터 교육, 인테리어, 홍보까지 책임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기업이 하니 안정적일 거라는 판단도 창업 결정을 내리는 데 한몫했다.

치킨의 꾸준한 소비량도 치킨집의 증가세를 부채질했다.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에 따르면 하루 소비량은 20만 마리다. 매일 250명 중에 1명 꼴로 닭을 먹는다는 얘기다. 끊임없는 수요가 예상되는 상황. '적어도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그러나 실상은 녹록지 않다. 업주의 인건비가 나오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PC방과 같은 과잉 공급이 문제가 됐다. 현재 전국 치킨 전문점 수는 3만여곳에 육박한다. 프랜차이즈 본사만 300여개나 된다. 인구 약 1,600명당, 400가구당 한곳 꼴로 치킨집을 운영하는 셈이다.

끊이지 않는 창업 열기 커피집

이후 한동안은 특정분야에서 이렇다 할 창업붐이 일지 않았다. 그러던 2000년대 후반부터는 커피집이 창업시장의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떠보면 커피집 하나가 늘어있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커피 전문점 창업 열풍의 시발은 1999년 이화여자대학교 앞에 문을 연 스타벅스다. '커피=인스턴트 커피'라는 인식이 주를 이루던 당시 에스프레소 커피 전문점인 스타벅스의 등장은 파격이었다. 셀프 주문, 배달, 뒷정리 등 서비스 시스템도 생소했다.

그러나 다방 문화에 익숙한 기성세대들에게 스타벅스는 불편하게 받아들여졌다. 셀프서비스가 특히 그랬다. 기성세대의 이런 불쾌한 반응에도 커피시장의 규모는 점점 커졌다.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핵가족에서 성장한 세대들이 혼자 있어도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커피전문점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스타벅스는 후속 점포를 오픈했고 그 뒤를 이어 커피빈, 할리스커피, 파스쿠찌 등 대형 매장들이 속속 문을 열기 시작했다. 새로운 브랜드들이 끝없이 만들어졌고, 기존의 브랜드들도 무섭게 성장했다. 그 결과 2009년 전국의 커피전문점이 2,000여곳을 돌파했다.

이후 많은 이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커피 창업 열풍에 합류했다. 그 끝에 현재 커피 가맹점(프랜차이즈)와 소형 점포까지 포함해 전국의 1만5,000개의 커피 전문점이 영업을 하고 있다.

현재 포화상태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증가세는 현재진행형이다. 작은 틈만 있으면 커피 전문점이 비집고 들어올 정도다. 커피전문점들의 '박 터지는' 전쟁이 한창인 이유다.

소자본 창업 가능한 떡볶이

커피전문점과 비슷한 시기인 2009년을 전후해 떡볶이 전문점도 눈에 띄게 늘었다. 실제, 프랜차이즈 떡볶이집은 2009년 1,619곳에서 2011년 2,703곳으로 늘었다. 불과 2년 만에 1,000곳 가량이 새로 문을 연 것. 놀라운 증가세였다.

떡볶이 프랜차이즈의 1세대로 꼽히는 '아딸' 가맹점은 2008년 307곳, 2010년 707곳, 2011년 930곳으로 증가했다. 2010년 등장한 '죠스떡볶이'도 첫해 39곳에서 2011년 196곳으로, 같은 해 창업한 '국대떡볶이'는 33곳에서 83곳으로 늘었다.

이런 가파른 증가세는 다른 사업에 비해 초기 비용이 비교적 적다는 점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PC방이나 치킨집, 커피전문점 등이 망해나가는 걸 지켜보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된 결과다. 소자본을 들인 만큼 실패해도 비교적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떡볶이 사업 열풍은 최근 취업난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젊은층이 취업을 포기하고 떡볶이집을 개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적은 돈으로 특별한 기술 없이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떡볶이 전문점에 '젊은 사장님'이 자주 눈에 띄는 이유다.

현재 떡볶이 프랜차이즈는 소비자들로부터 적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증가세를 보면 과잉 경쟁이 우려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견해다. 한 프랜차이즈 업계 관계자는 "떡볶이 가맹점수의 증가세는 놀라울 정도로 가파르다"며 "과잉경쟁에 따른 수익성 저하나 폐업 등에 대한 걱정을 떨쳐낼 수 없다"고 말했다.

바쁜 현대인 위한 컵푸드

올해 들어 창업시장에선 '컵푸드' 아이템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그 동안 컵에 담긴 음식은 컵라면이나 컵수프 등 인스턴트 식품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매장에서 조리한 음식을 컵에 담아낸 이른바'컵푸드'가 인기다.

가장 대표적인 게 닭강정 전문점이다. 닭강정 전문 프랜차이즈 '달콤한닭강정'은 현재 200호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또 다른 브랜드인 '줄줄이꿀닭'은 지난 3월 가맹사업을 시작해 3개월 만에 가맹점 100개를 돌파했다. 이 밖에도 컵국수와 컵밥, 컵해물떡찜 등 컵푸드도 창업 준비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컵푸드 사업은 떡볶이 사업과 마찬가지로 초기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다. 또 테이크아웃 판매 특성상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여기에 컵푸드가 소비자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컵푸드의 인기 비결은 '착한' 가격이다.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최저 1,000원대의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소비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또 바쁜 현대인이 간편하게 들고 먹을 수 있다는 점과 일인가구가 증가한 것도 컵푸드가 주목을 받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와 관련 한 프렌차이즈 업계 관계자는 "불황을 맞아 소비자의 저가 품목에 대한 수요와 창업희망자의 소자본 창업에 대한 선호도를 두루 충족시키는 컵푸드 창업 열풍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창업 열풍별 간략 연대기

PC방 : 90년대 후반에 등장해 '스타크래프트'의 인기와 더불어 급성장. 2000년부터 2만~2만2,500여개 점포 유지. 그러나 과잉 경쟁에 주변 상황 악화가 겹치면서 2010년 2만곳 아래로 떨어지는 등 사양길 접어들어.

치킨 : IMF 사태 이후 실직자들이 창업에 나서면서 인기. 대부분 프렌차이즈로 비교적 창업이 쉬워 가파른 증가세 보임. 그러나 점포수 증가에 따른 과잉 경쟁 등으로 녹록지 않은 상황.

커피 : 1999년 에스프레소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가 처음으로 오픈. 핵가족에서 자란 세대의 인기를 받으며 시장 팽창. 현재 전국 커피점은 1만5,000여곳으로 사실상 포화상태지만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음.

떡볶이 : 2009년을 전후해 급증세.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 취업난과 맞물려 젊은 층이 창업하는 경우도 많아. 가파른 점포수 증가세에 과잉경쟁 우려 나오고 있음.

컵푸드 : 올해 들어 주목 받고 있음. 적은 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한 데다 테이크아웃 특성상 자리 회전율 높다는 게 장점. 저렴한 가격과 일인가구의 증가 등이 맞물려 소비자들에 인기.

자영업자 '3고' 부담에 전전긍긍
고밀도화 - 고연령화 - 고부채

경기침체로 창업을 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자영업이 고밀도화ㆍ고연령화ㆍ고부채 등 '3고(高)' 부담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자영업이 특정 업종에 집중된 데다 연령대는 높아지고 부채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 그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자영업의 3고(高) 현상과 완화 방안' 보고서를 통해 "'3고' 현상이 자영업 부문의 취약성을 더 악화할 수 있는 만큼 자영업 종사자 비중 확대의 문제점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자영업 종사자의 증가 추세가 주로 도소매나 음식ㆍ숙박, 운수업 같은 전통 서비스업에 집중됐다. 이들 업종이 자영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는다. 자영업자의 최다 연령대도 2000년 40~45세(17.0%)에서 2011년에는 51~55세(16.7%)로 바뀌었다. 2011년 기준 자영업자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59.2%로 상용근로자(78.9%)의 두 배에 달한다.

김 연구원은 자영업의 '3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 ▦협동조합 설립 등 자영업종 다변화 지원 ▦장년층 재취업 경로 다양화 ▦자영업 종사자 대상 '자영업 금융닥터제'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 연구원은 "자영업 종사자 증가가 자영업자의 고밀도화ㆍ고연령화ㆍ고부채 등 '3고'현상을 동반하며 경제사회적 부담을 만든다"며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는 내수경기를 고려하면 자영업은 만성적 생활불안에 시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9월 말 기준 국내 자영업자는 580만3,000명이다. 여기에 무급가족종사자 133만8,000명을 더하면 전체 자영업 부문 종사자는 714만1,000명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20만1,000명이 늘어난 규모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