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면위로 모습 드러낸 재계 3세들코오롱회장 장남 첫 출근 신입사원과 실무교육매일유업·농심 등 재벌가 공주님도 약진

임상민
● 대상그룹 차녀
영국 유학마치고 실무 투입 10월부터 전략기획 본부장

● 하이트진로 장남
4월 경영관리 실장 승진… 최근 세대교체 승계 움직임

최근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의 장남 규호씨가 첫 출근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회장님'의 자녀인 만큼 차장직급을 달고 시작했지만, 신입사원들과 다를 바 없는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본격적인 '밑바닥 경영수업'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벌가 황태자들의 경영수업에 새삼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미 다수의 재벌가3ㆍ4세들은 얼굴을 드러내고 경영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반면, 물밑에서 때를 기다리며 경영수업에 열중해온 이들도 다수다. 그런데, 최근 이들이 그간의 침묵을 깨고 속속 경영 일선에 조심스러운 첫발을 내딛고 있다.

대기업 후계자 '밑바닥 수업'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의 장남 규호씨가 지난 5일부터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에 차장 직급을 달고 출근했다. 규호씨는 당분간 신입사원들과 함께 공장직무교육(OJT) 과정을 밟을 예정이라고 한다.

규호씨가 차기 회장 후보 1순위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코오롱 경영권은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고(故) 이원만 창업주에서 이동찬 명예회장을 거쳐 이 회장으로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회장이 아직 50대 젊은 만큼 규호씨의 입사는 바닥부터 실무를 익히게 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4월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의 장남 태영씨도 경영관리실장으로 승진하면서 3세 경영에 시동을 걸었다. 태영씨는 2009년부터 경영컨설팅 업체 엔플렛폼에서 기업체 M&A업무를 주도해온 바 있다.

특히 하이트진로는 최근 이남수 총괄사장이 사퇴하고 하이트진로음료 대표이사로 강영재 부사장이 선임되는 등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다. 이를 두고 회사 안팎에선 태영씨 경영승계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동관씨는 김 회장의 부재로 향후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동관씨는 2010년 한화에 차장 직급으로 입사했다. 그리고 3주간의 신입사원 연수를 마친 뒤 회장실에서 그룹 전반에 관한 업무를 파악하며 경영 수업을 받았다. 이후 동관씨는 지난해 말 한화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꼽히는 한화솔라원에 배치돼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박태영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외아들 선호씨도 3세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지난 7월부터 8월 사이 CJ제일제당에서 각 부서를 돌며 직무체험을 했다. 미국 컬럼비아대에 재학 중인 선호씨는 방학 때마다 회사를 방문해 업무를 익힐 것으로 전해졌다.

재벌가 딸들도 경영수업

재벌가 딸들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먼저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의 차녀 상민씨가 영국 유학을 마치고 지난달 8일부터 전략기획본부 부본부장으로 발령 받아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상민씨는 2007년 그룹 계열사 UTC인베스트먼트에서 현장 경험을 쌓았다. 이후 2009년 1년 반 동안 그룹 혁신 본부에서 조직개편과 문화 등에 관여하며 경영에 참여해왔다. 이후 영국으로 2년 정도 유학을 떠나 올여름 복귀했다.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의 딸 윤지씨도 밑바닥 수업에 돌입했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윤지씨는 현재 그룹 계열사인 유아용품업체 제로투세븐에 대리로 입사해 실무경험을 쌓고 있다. 제로투세븐은 김 회장의 막내 동생 김정민 대표가 운영하는 회사다.

이밖에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의 장녀인 신현주 농심기획 부회장의 두 딸인 혜성씨와 혜정씨도 계열사에 입사해 경영수업에 매진하고 있다.

'글로벌 감각' vs '무임승차'

재벌가 황태자들의 경영 일선 배치에 대해서는 시선이 엇갈린다. 먼저 이들 대부분이 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국제 감각을 익힌 만큼 글로벌 경영에 힘이 될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2세 경영인들 중에도 외국 유학파가 더러 있기는 했지만 학위를 마쳤다기보다 연수를 다녀온 정도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3세 그룹은 정식으로 학위를 마쳤고, 외국 유명대에 다닌 이들이 많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 경영환경은 해외를 낱낱이 파악하고 세계적인 트랜드를 온몸으로 감지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시 되고 있어서다.

이와 관련 재계 관계자는 "창업주와 2세들이 기업가정신으로 그룹을 일구고 키웠다면, 3세들의 중요 임무는 글로벌경쟁력으로 승화, 발전시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CEO 리더십은 배제할 수 없는 요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선대가 이뤄놓은 업적에 무임승차해 개척보다 쉬운 돈벌이에 골몰한다는 비판의 시각도 있다. 재벌 빵집, 수입차 사업 등이 이를 대변하는 이슈다. 이로 인재 일부 재벌가 3ㆍ4세들이 소상공인들의 밥그릇을 빼앗는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한 재계관계자는 "대기업 자녀는 재벌가에서 태어나 부족함이나 고생 없이 자란 만큼 힘겹게 도전하기보다 손쉽게 돈을 벌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며 "기업가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향후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은 만큼 기업경영 역량은 물론 투명경영, 인간 존중경영, 사회공헌 경영에 대한 굳건한 철학이 요구되고 있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