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황 한파에 몸집 줄이는 은행권

3분기부터 순익 급감
4분기 이후도 상황 비관
우리금융 '슬림경영'
고강도 긴축 계획

국민, 준정년퇴직제 확대
일부선 각종 휴가 독려
지점 임대료 절약 모색하고
에너지·소모품도 졸라매

주요 은행들이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 3분기부터 순익 규모가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망도 밝지 않다. 국내외 경기침체로 가계와 기업의 연체율이 상승하는 등 향후 수익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주요 은행들은 다방면에 걸친 자구노력을 벌이고 있다. 먼저 일제히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또 구조조정이나 조직 개편을 통한 다이어트에도 나섰다. 이뿐만이 아니다. 보유 부동산을 차례로 매각하고, 지점 통ㆍ폐합을 목전에 두고 있다. 여기에 각종 비용 절약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추운 경제 한파, 이를 무사히 나기 위한 은행권의 노력을 들여다 봤다.

올해 2분기까지 국내 은행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인 5조5,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그러나 3분기부터는 순익의 규모가 가파르게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KBㆍ국민ㆍ신한ㆍ우리ㆍ하나 등 국내 4대 금융지주사의 3분기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나 떨어졌다.

문제는 4분기 이후의 상황이 더 좋지 않다는 점이다. 순이자마진(NIM)의 지속적인 하락, 국제금융시장 불안 등 대내외적인 요인들로 영업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은행들은 지난 8월을 전후해 일제히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악화되는 영업환경 대비

먼저 우리금융지주는 고강도 긴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슬림경영'을 시행했다. 지주사 차원의 대규모 투자계획은 최대한 억제하고 불필요한 비용도 줄이기로 했다. 일정금액 이상을 투자할 때는 수익분석을 철저히 해 신중히 결정하도록 했다.

당시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금융권 최초로 비상상황실을 가동하는 등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바 있다"며 "현재의 위기상황 극복뿐 아니라 금융권의 저성장ㆍ저수익 구조 고착에 대비하기 위해 앞으로도 혁신노력을 통한 수익증대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협은행도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키로 했다. 대손충당금 관리를 통해 재무건전성을 개선해 순익 목표를 달성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연체비율 1.0% 이하, 고정 이하 여신비율 1.7% 이하를 달성하기 위한 '뉴 스타트(New Start) 1017운동'을 추진한다.

이와 관련해 신충식 농협은행장은 "유로존 위기 확산 우려와 가계부채 문제 등으로 하반기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순이익 목표 달성을 위해 강도 높은 긴축에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KB금융지주는 이미 글로벌금융시장 변화 대응위원회를 신설해 상시 가동하고 있다. 비상시를 대비해서다. 이 위원회는 임영록 KB금융지주 사장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 임원 15명 이상이 참여해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과 외화유동성 등 금융관련 주요 이슈를 상시로 살피고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아직 공식적으로 위기경영을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평소 진행해 오던 리스크관리 수준을 한 단계 강화하기로 했다. 하나금융지주 역시 당장은 비상체계를 가동하지 않고 있지만 내년 경영 계획 수립 시 산업ㆍ고객ㆍ상품별 리스크를 점검할 예정이다.

신한, 내년초 추가 감원설

비상경영을 선언한 지주사들의 주요 계열사인 은행들 사이에서는 인력 구조조정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당장 구조조정 계획을 밝힌 은행은 많지 않다. 그러나 금융권 안팎에선 대선 이후 감원바람이 불어 닥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신한은행은 이미 올해 초 희망퇴직으로 238명을 줄였고, 지난해에는 106명을 사내 감사 등 일부 업무만 담당하는 관리전담 직원으로 재취업시키는 방법으로 인원을 감축한 바 있다. 하지만 은행 내부에서는 올 연말이나 내년 초 추가적인 인력 감축이 이루어질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수익성 악화와 인사 적체 심화 등 은행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380명의 인원을 감축한 하나은행과 올해 하나금융지주 자회사로 편입된 외환은행의 경우 영업력 확대 등을 이유로 대규모 인원감축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회사 안팎에선 내년 초 외환은행과 함께 명예퇴직을 실시할 것이라는 소문이 신빙성 있게 회자되고 있어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국민은행의 경우 준정년퇴직제를 확대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고, 우리은행도 임금피크제 대상자를 중심으로 준정년퇴직제를 작년과 같은 조건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농협은행 역시 인사적체 해소 차원에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농협은 각 지주회사와 계열사의 이사회를 열고 임원 감축, 조직 개편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구체적인 명예퇴직 일정이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은행들의 수익성 개선이 쉽지 않은 만큼 대선 이후 어떤 형태로든 구조조정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기존의 인력감축 방식보다는 고임금의 고연령 직원을 내보내고 적은 연봉의 신입사원을 충원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외에 일부 은행은 직원들에게 무급휴가를 독려하는 방법으로 노동비 절감을 계획하고 있다. 회사차원에도 도움이 되는 건 물론 직원들의 자기계발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게 은행들의 판단이다.

국민은행은 유급휴가 5일에 무급휴가 5일이 더해진 형식의 의무휴가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급여를 줄이되 휴가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물론 규정상 없던 휴가를 신설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에 있던 무급휴가 5일을 사용하도록 독려하는 차원이다.

신한은행도 연속 열흘을 휴가로 쓰는 '10일 웰프로 휴가제'를 빠짐없이 사용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하나은행 역시 5영업일 특별휴가까지 더 얹은 '15일 리프레시 휴가제'를 직원들에 적극 추천한다는 방침이다.

부동산 팔아 유동성 확보

이에 더해 주요 은행들은 보유 부동산 축소를 통한 유동성 확보에도 나서고 있다. 은행들 대부분은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을 매각하고 임대로 입점하고 있는 추세다. 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부동산을 쥐고 있을 바에야 이를 유동화해 다른 투자처를 찾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임대료가 비싼 지역에서도 속속 빠져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하나은행 압구정 중앙지점도 비싼 임대료에 밀려 인근 지역으로 이전했다. 또 신한은행도 압구정금융센터 1층을 2층으로 옮겼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도 30% 수준인 부동산 보유 지점을 계속 줄여나간다는 계획이다.

또 은행들은 지점을 통ㆍ폐합하며 몸집 줄이기에 나서기도 했다. 우리은행은 내년 초에 적자를 보거나 수익성이 좋지 않은 지점 20곳 정도를 통ㆍ폐합할 예정이다. 국민은행은 현재 통ㆍ폐합할 지점을 가리기 위한 현장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 내년 1월에는 통ㆍ폐합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하나은행도 내년에는 신규와 통ㆍ폐합 영업점 숫자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기로 했다. 외환은행 역시 영업점 수를 늘리기보다는 영업점 배치의 효율화를 추구할 방침이다. 신한은행은 이미 2008년부터 지점 100여곳을 통ㆍ폐합했다. 따라서 신한은행은 점포 통ㆍ폐합 대신 각종 건립 사업을 재검토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유 부동산을 매각하고 임대로 입점하는 건 세계 금융의 트랜드"라며 "부동산 경기 하락에 경제 한파가 겹치면서 이런 추세에 우리 은행권도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은행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비용 절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먼저 우리금융은 임원들 주유비를 월 100만원 한도 내에서 쓰도록 했다. 100만원이 넘을 수도 있지만 확인을 받게 해 절약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외환은행은 '아껴쓰기 3ㆍ3ㆍ9 운동'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이 운동은 물자ㆍ에너지ㆍ시간 3가지를 아끼는 각각 3가지 방법으로 모두 9가지를 실천하자는 게 골자다. 외환은행은 또 최근 중구 을지로 본점 대형 환율 전광판의 가동 시간을 축소하기도 했다.

외환은행과 함께 하나금융지주 계열인 하나은행도 기름 값과 소모품 등을 절약할 수 있는 수십 가지 방법들을 마련했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과의 시너지 창출을 통한 경비 절감을 노리고 있기도 하다.

KB국민은행 역시 지난 연말부터 실내 적정온도를 유지하며 홍보물의 과다발송 제한, 종이절감을 위한 사내 엑셀 표준화 등 경비절감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각종 아껴 쓰기 운동을 통한 절감액은 아주 미미한 수준이지만 절약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이런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향후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대출 증가가 더디고 금리인하와 수수료 조정 등으로 인해 이익을 낼 여력은 더 줄고 있어서다. 여기에 실물경기 침체로 부실자산도 증가하고 있다. 순이익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권 안팎에선 은행들의 수익 감소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은행들의 '허리띠 졸라매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경영 초점은…


우리, 해외영업에 중점
국민, 가계대출 엄격히
신한. 연체율 집중관리


주요 시중은행들은 현재 4분기를 앞두고 내년 경영전략 수립에 착수했다. 경기 불황 장기화로 연체율이 올라가고 대출자산의 부실화 위험이 커지면서 리스크 관리와 내실 다지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먼저 우리은행은 '감량경영'과 '건전경영'을 내년 화두로 제시했다.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면서 위험성에 크게 노출된 만큼 가계영업을 늘리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우리은행은 우량 중소기업과 해외 영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내실을 다져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시중은행 중 가계대출 규모가 가장 큰 국민은행은 신규 가계대출 심사기준을 강화하는 등 가계 부문 건전성 제고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특히 자산구조조정을 통해 위험자산은 줄이고 안전자산 비중을 높이는 작업에 역점을 둘 계획이다.

신한은행도 성장보다는 내실 다지기와 리스크 관리에 무게를 두기로 했다. 이를 위해 철저한 가계ㆍ기업대출 연체율 관리에 나서 자산 건전성 관리를 하는 등 내실을 다지는 동시에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해 낼 계획이다.

하나은행은 지금보다 부채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데 주력한다는 입장이다. 가계신용 부문과 중소기업 대출 등이 중점 관리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대내외적인 악재로 영업환경이 갈수록 안 좋아지면서 내실다지기 등 보수경영으로 방향을 굳히고 있다"고 말했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