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한'경제 대통령'은 누구?… 박근혜-문재인 경제공약 무엇이 다른가

박근혜 / 연합뉴스
"It's the economy, stupid."(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이 1992년 미국 대선에서 사용했던 유명한 슬로건이다. 이 문장 하나로 빌 클린턴은 당시 현직 대통령으로 재임이 유력했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를 누르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유권자들이 대선 후보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경제정책'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은 비단 미국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인 이명박 대통령도 '경제살리기' 공약으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는 한나라당의 '경제살리기특위 위원장'을 직접 맡으며 '경제대통령' 이미지를 굳혔다. 전과 14범 등 일국의 대통령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던 이 대통령이 결국 승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실용정부', '친서민 정책', '747 공약' 등 경제관련 이슈들을 선점한 영향이 컸다고 정계 관계자들이 입을 모을 정도였다.

안철수 후보 사퇴 이후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펼쳐졌다. 유력 대선주자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모두 다양한 경제공약들을 내세우며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일자리 창출, 재벌개혁 등 두 후보의 대결을 지켜보는 유권자들의 시선도 그 어느 때보다 경제공약들에 집중된 모양새다.

유권자들은 '경제대통령'을 표방했지만 다소 허황된 공약들로 사실상 '경제살리기'에는 실패했던 이 대통령 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이라도 하듯 두 후보의 경제공약들을 더욱 매섭게 살펴보고 있다. 이에 <주간한국>에서도 경제개혁연구소 보고서를 바탕으로 두 후보의 경제공약들을 비교ㆍ분석해봤다.

문재인 / 연합뉴스
흥미로운 점은 두 후보의 경제공약들이 대동소이하다는 점이다. 재벌개혁 정책, 중소기업 활성화 정책 등 두 후보가 내세우는 경제공약 중 상당 부분이 '경제민주화'로 수렴됐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안 후보 사퇴 이후 대선 경쟁이 실질적인 양자대결 구도로 진행되며 '보수층 결집'에 나선 박 후보는 다시 경제성장이라는 카드를 빼든 상태다. 아직 박 후보의 공약 자체가 수정된 것은 아니지만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의 아이콘인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멀리하는 등 방향은 어느 정도 정해진 듯 보인다.

재벌 및 대기업 정책
박근혜, 구조개혁보다 경제력 남용 방지 중점
문재인, 관련 법제부터 구조개혁·행위규제

대선이 진행되면서 떠오른 경제민주화는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만 그 핵심은 우리나라 특유 사회현상인 재벌 및 대기업들에 대한 개혁이라고 볼 수 있다. 박근혜 후보의 재벌 및 대기업 관련 공약은 "시장의 불공정한 거래질서를 바로잡겠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재벌 및 대기업의 경제력 남용 방지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구조 부분에 대한 개혁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상태다. 이에 비해 문재인 후보의 재벌 및 대기업 관련 정책은 관련 법제에 대한 개혁안까지 나아가고 있다. 구조개혁과 행위규제가 적절히 제시됐다는 점에서 박 후보보다는 한 발 나아간 공약으로 볼 수 있다.

각론으로 들어가서 박 후보나 문 후보 모두 재벌의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박 후보가 기존 출자를 인정하자는 입장인데 반해 문 후보는 3년의 유예기간을 둔 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의결권을 제한하고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등 기존 출자 해소에도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재도입할뿐더러 산업과 금융이 융합돼있는 복합금융그룹에 대한 통합감독을 실시하는 등 금산분리 강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대기업 총수들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는 두 후보 모두 강력한 제제 입장을 나타냈다. 박 후보는 회계부정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대기업 지배주주ㆍ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해 사면권 행사를 제한하겠다는 의견이고 문 후보 또한 경제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및 사면 제한을 강조했다. 특히 문 후보는 공정위 전속고발권에 대한 일부 폐지를 주장하고 집단소송제 도입을 공약으로 제시하는 등 재벌 및 대기업과 관련해 강한 압박을 취할 것임을 나타냈다.

중소기업 활성화 정책
박근혜, 집단소송제·납품단가 협상권 부여
문재인, 공동납품·교섭… 이익공유제 시행

국민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토대로 꼽히는 것이 중소기업들의 활성화다. 중소기업 부문은 고용의 86.8%(2010년 말 기준), 국내 총부가가치의 50.7%(2011년말 기준)를 점하고 있다. 또한 중소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통한 고용률 회복은 정부지정 부담을 완화시킬 수 있으며 이는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심도있는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대기업→1차 하도급 기업→2차 하도급 기업 등으로 이뤄지는 구조에서 우월적 지위 남용행위와 불법적인 행위의 금지 및 재발방지를 위한 법제도 도입이 전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또한 하도급 구조에 속하지 않는 중소기업들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두 후보의 중소기업 활성화 정책은 대체적으로 유사한 수준으로 보인다. 박근혜 후보는 중소기업과 관련한 정책기조를 '창조경제' 속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창의력과 과학기술을 중심축으로 하는 중소기업 활성화를 제시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직면하고 있는 불공정ㆍ불합리ㆍ불균형을 해소하는데 역점을 두고 사업조정제도, 전속고발권 폐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을 약속하고 집단소송제도의 도입,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협상권 부여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

문재인 후보는 '공평과 정의'를 기반으로 공정경쟁을 보장함으로써 중소기업의 경제 활력과 일자리 확충을 제시했다. 중소기업들이 대기업과의 협상에 있어서 협동조합으로 하여금 공동구매, 공동납품, 공동교섭 등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익공유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10배로 강화ㆍ도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골목상권 보호 정책
박근혜, 대형 유통업체 진입규제
문재인, 소상공인 적합업종 지정

골목상권으로 대표되는 소상공인들은 유통구조의 최종소비 단계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형마트, 기업형슈퍼마켓 등과의 경쟁이 가장 큰 쟁점이다. 이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로서는 고비용구조의 핵심인 상가임대료 및 운영자금 지원, 사회보험료 및 복지측면의 정책 등 다양하다.

박근혜 후보는 대형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진입을 규제, 영세사업자의 생존권을 보호하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대형유통업체의 납품 및 입점업체에 대한 불공정 행위, 가맹사업자의 가맹점에 대한 불공정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문재인 후보는 중소기업 적합업종과 유사하게 소상공인 적합업종을 지정, 대기업의 진출을 통제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또한 대형유통업체의 신규입점과 영업시간 제한,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의 권익보호 등을 주요 정책으로 밝혔다.

조세 및 재정 정책
박근혜, 감세·규제 풀기 등 기본틀 유지
문재인, 부자감세 및 법인세감세 환원

국가를 꾸려감에 있어서 수입구조인 조세 개혁과 지출구조로서의 재정 정책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기반을 위해서, 나아가 복지국가 달성을 위해서 반드시 염두해야 하는 정책이다. 납세자 대부분이 낮은 세율은 원하는 한편 높은 수준의 복지혜택을 바라는 이중적인 생각을 바라는 터라 적절한 조세 및 재정 정책이 필수적이다. 두 후보는 복지 시스템과 조세 형평성을 동시에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각론에서는 차이를 보였다.

박근혜 후보는 사실상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세출구조 개혁과 조세제도 개혁 등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지만 구체성이 크게 떨어진다. 5년 전의 줄푸세(세금 줄이기, 규제 풀기, 법치 세우기) 수준에서 별반 나아진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 후보는 부자감세 기조의 전환을 추구하고 세정개혁과 적정한 조세부담, 재정개혁을 통한 낭비성ㆍ중복성 예산 낭비의 최소화 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문 후보 또한 부자감세 및 법인세 감세의 환원 수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못하고 세제 및 재정개혁이라는 원칙적인 말만 되풀이한다는 점에서는 박 후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보편적 복지를 달성하기 위해 증세가 필요함에도 '적정한 조세부담'이라는 표현으로 피해가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주택 및 부동산 정책
박근혜,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 마련
문재인, 임대주택 등록제·전세기간 연장

최근 들어 주택가격 하락과 전셋값 급등, 하우스푸어 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며 대선후보들의 주택 및 부동산 정책에 유권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의 정부정책이 사후약방문에 그치며 문제를 확산시켰던 터라 획기적이면서도 일관성 있는 부동산 정책이 필요해진 상태다.

박근혜 후보는 전세 문제와 하우스푸어 해결을 위한 대책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는 집주인이 전세금에 해당하는 자금을 금융기관에서 저리의 융자를 받고 그 이자를 세입자가 부담하는 방식이다. 만약 세입자가 이자를 납부하지 않는 경우 금융기관이 주택을 경매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집주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책이다.

하우스푸어를 위한 지분매각제도는 구매자의 무리한 선택과 금융기관의 과도한 대출로 벌어진 사태를 결국 정부가 처리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문제가 남게 된다. 이처럼 박 후보의 주택 및 부동산 정책들은 대부분 단기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는데다 근본적인 대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하우스푸어 문제는 주택담보대출 구조를 현재 '변동금리-일시상환'에서 '고정금리-장기분할상환'으로 전환시키는 한편 개인회생제도 개선안을 제시했다. 전세 문제와 관련해서는 주택ㆍ지역별 임대료와 계약기간을 공시하는 '임대주택등록제'와 전세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임대차계약갱신청구권' 도입, '전월세인상 상한제' 등을 제시했다. 이러한 대책들은 박 후보의 주택 및 부동산 정책들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문제 지적을 피할 수 없을 예정이다. 다만 문 후보의 주거복지기본법 등은 이전에 찾아볼 수 없는 정책으로 주거기준의 대폭적인 질적 향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