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김중경 전사장 취임고강도 비리 근절 대책 불구

임직원 전기사용량 조작, 폐전선 절취 후 고물상 판매
자회사 성과급 조작, 직원간 간통·성폭행 등 총체적 난국 형상 보여

누적적자만 8조원대… 불량부품 납품 의혹
뇌물수수 무더기 적발 '방만경영' 도마에

4년 연속 적자다. 부채비율은 높아만 간다. 증가하는 순차입금은 이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한국전기공사(한전)가 위기다. 한전이 매번 "요금을 인상시켜 달라"고 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하는 이유다.

한전은 팔수록 손해인 낮은 원가회수율이 문제라고 항변한다.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한전의 요금 인상 요구는 그다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방만한 경영에 있다. 새나가는 돈을 감안하면 인상 요구는 '우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전의 방만경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나름의 자구 노력에도 뿌리 깊은 방만경영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 김중겸 전 사장마저 사임한 상태. 속전속결로 후임 사장을 내정하긴 했지만 현재로선 한전의 근본적인 변화가 난망해 보인다.

조환익
강력 비리 근절책 무색

대규모 정전 사태로 대혼란에 빠진 지난해 9월, 한전은 숨을 죽였다. 초유의 정전사태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도시에서는 신호등이 갑자기 꺼져 교통혼잡이 빚어졌다.

사무실의 냉방장치가 갑자기 멈추고, 은행 등 금융기관 업무는 사실상 마비되다시피 했다. 엘리베이터 가동이 중단돼 구조요청이 속출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국민들은 사태를 초래한 한전을 성토했다. 설상가상으로 하청업체로부터 접대를 받은 사실이 폭로됐다. 더하여 국감에서 한전의 각종 방만경영과 비리가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그야말로 벼랑 끝에 내몰린 형국이었다.

이처럼 어수선한 가운데 김중겸 전 한전 사장이 지휘봉을 잡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이자 현대건설 사장을 역임한 점을 두고 '낙하산' 논란이 불거졌다. 그러나 국민들은 크게 괘념치 않았다. 김 사장이 한전의 구원투수가 되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여기에 화답하듯 김 사장과 한전은 고강도 비리근절 대책을 내놨다. 먼저 금품과 향응수수, 횡령과 배임행위 등 고질적인 부조리 행위자와 관련 업체에 대해 징계 수위를 강화해 금액과 관계없이 가중 책임을 묻기로 했다. 동일 유형 3회 징계 시 해임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징계는 당사자에 그치지 않는다. 소속 상급자에 관리 책임을 물어 인사 조치하는 등 엄중 문책하기로 했다.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한 업체에 대해선 계약해지나 입찰제한 등 강력한 제재를 병행하겠다고 했다.

'고위험군'에 대한 관리에도 들어갔다. 과거 부조리 발생 사례가 있었거나 장기간 보직 시 부조리 발생 개연성이 높은 자리는 순환 기간을 기존 3년에서 2년으로 단축했다. 기강 확립을 위한 상시 예방감찰 활동도 더욱 강화했다.

그러나 한전은 달라지지 않았다. 방만경영의 뿌리가 너무 깊어서다. 누적 적자만 8조원에 달해 전기료 인상을 요구하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한전 직원들은 거액의 성과급을 챙겼다. 금품수수, 향응, 횡령 등 각종 비리도 끊이지 않았다. 이는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우선 한전 임직원과 검침원의 '전기 도둑질'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 2년 반 동안 전기사용량 등을 조작해 전기요금을 면탈한 사례가 총 13건에 적발됐다. 업무상 배임과 횡령이다. 민간 기업에서는 즉각 고발조치 했을 사건이다. 그러나 한전은 동료 검침원들의 불법 사용을 내부적으로만 통보하고 어떠한 시정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직업의 특성상 직원들의 전선 절취 후 폐전선을 고물상에 판매 하는 사건도 있었다. 또 수량 및 수취 확인도 안하고 인수증을 작성해 검사필증 없는 맨홀뚜껑 160개가 발생하는 일도 있었다. 직무관련 금품 수수료 징계를 받은 경우는 30여건이나 됐다.

자회사의 성과급 조작도 지적됐다. 한전의 발전 자회사인 동서발전은 지난 2011년 경영실적 보고서와 임금 협약서를 조작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고 거짓 보고하는 방법으로 성과급 420%를 챙겼다. 이길구 동서발전 사장과 김용진 노동조합장이 두 개의 임금협약서를 작성한 것이다.

과도한 직원 챙기기도 눈총을 받았다. 한전은 복지를 이유로 564구좌에 184억원에 달하는 콘도회원권을 보유하고 있다. 지경부 산하 공기관 71곳 가운데 가장 많은 규모다. 71곳 전체 회원권 금액이 555억원 정도다.

직원들의 기강해이 문제도 지적됐다. 간통 및 성폭행 등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사건만 20여건이 넘었다. 한 직원은 만취상태에서 여자화장실에 침입해 피해자를 성폭행하고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또 다른 유부남 직원은 동료 미혼 직원과의 불륜행위가 적발돼 간통죄로 고소되기도 했다.

자구노력 물거품

한전의 '방만경영'은 매년 국감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할 정도로 심각한상황이다. 그러나 수많은 지적과 경영진의 자구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올해에도 한전의 부정과 부패는 줄을 이었다.

당장 지난달 말 자회사인 한전KDN을 상대로 입찰방해를 벌여 논란이 일었다. 올해 초 한전은 각종 사업을 전산화하는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과정에서다. 당시 한전은 한전KDN과 상의도 없이 특정 업체에 컨설팅 업무를 맡겼다. 그리고 급기야는 한전KDN에 이 업체와 계약을 맺도록 지시까지 했다. 명백히 입찰방해 행위다.

특히 이 업체는 컨설팅을 끝내지도 못하고 떠났다. 한전KDN은 시스템 구축비용 21억원 중 컨설팅 비용으로 1억6,000만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제대로 진행된 건 없는 상황. 결국 돈만 떼인 셈이다. 경찰은 현재 이런 사실을 파악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한전은 비슷한 시기에 불량부품 납품 의혹도 받았다. 의혹은 스마트그리드의 핵심 부품인 전력선통신(PCL)칩 생산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규격에 미달한 부품을 제출한 업체에 합격 통보를 한 것이다. 스마트그리드는 정부가 신성장동력으로 선정해 1조4,000억원을 투자하는 차세대 전력망 사업이다.

감사원은 현재 이와 관련한 조사를 하고 있다. 한전이 문제점을 알고도 특정 업체를 밀어주기 위해 결함이 있는 부품을 합격시켰는지 여부가 대상이다. 한전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이 최근 원자력발전소에 위조부품을 사용해 가동중단 사태를 빚은 바 있다.

앞서 5월엔 고질병인 뇌물수수도 사건도 터졌다. 각종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수천만원씩을 받아 챙기다 검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들은 매달 150만∼200만원씩을 뇌물로 받았고, 한전 내부정보를 알려준 대가로 외상 술값과 명절 선물비를 대납시키기도 했다.

사장 공석 "바쁘다 바빠"

상황은 심각하다. 그런데 이를 바로 잡기가 마땅치 않다. 김 전 사장이 지난달 6일 사임하면서 사장석이 빈자리가 돼서다. 지난해 9월 취임한 김 사장의 임기는 2014년 9월까지다.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갑작스레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다.

이유는 불명이다. 자신의 거취에 대한 일말의 언질도 없었다. 심지어는 측근들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한전 안팎에선 전기요금 인상을 두고 벌어진 정부와의 갈등에 검찰의 4대강 비자금 의혹 수사 압박이 더해지면서 사임했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어찌됐건 당장 사장은 공석이다. 한전이 고삐가 풀릴 수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해 후임자를 물색했다. 당초 사장선임에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과 대선을 앞두고 있다는 이유에서 후임 선임이 녹록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선임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전 코트라 사장을 차기 한전 사장 단수 후보로 낙점했다. 경영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황에서 사령탑을 오랫동안 공석으로 비워둘 수 없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데 한전은 지난 4년간 적자를 이어왔다. 그 사이 누적적자만 8조원에 달한다. 그 고리를 끊기 위해 한전은 지난 1년간 2차례나 요금을 인상했다. 낮은 원가 회수율 때문이라는 게 한전의 항변이다.

한전의 말이 아예 틀린 건 아니다. 전기 원가 회수율이 87.4%에 머물러 팔수록 손해인 구조다. 그러나 방만경영으로 새나가는 돈을 감안하면 한전의 '우는 소리'는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방만경영으로 인한 적자의 책임을 국민들에게 돌린다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오는 이유다.

한전이 불편한 꼬리표를 떼기 위해선 DNA 자체를 바꾸는 강력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따라서 조 사장 내정자의 향후 행보에 세간의 이목이 주목되고 있다. 그는 과연 한전의 깊은 방만경영을 뿌리 뽑을 수 있을까.

'한전 새 사령탑 내정' 전 코트라 사장은?


6대 산자부 차관 출신 경제통

전 코트라 사장이 한국전력 새 사장에 내정됐다. 지난달 26일 기획재정부와 한전 관계자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산하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조 전 코트라 사장을 차기 한전 사장 단수 후보로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은 다음달 17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조 전 코트라 사장을 신임 사장으로 선임할 예정이다. 이후 지식경제부 장관이 후보자를 제청하고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임명하면 조 사장은 공식 업무에 들어가게 된다. 조 사장의 임기는 대통령 임명 후 3년이다.

조 신임 한전사장은 1950년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행시 14회로 공직에 첫발을 들였다. 이후 상공부 미주통상과장, 주미 한국대사관 상무관보, 대통령경제비서실 부이사관, 통상산업부 산업정책국장,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무역투자실장을 거쳐 6대 산자부 차관을 역임했다. 공직을 떠난 이후에는 한국수출보험공사(현 무역보험공사) 사장과 코트라 사장을 거쳤다.

당초 한전 안팎에선 차기 사장이 지경부 고위관리 출신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민간 대기업 CEO 출신인 전임 김쌍수ㆍ김중겸 전 사장이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놓고 정부와 파열음을 빚다 불명예 퇴진한 점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업계에서는 노무현 정부 시절 차관을 지냈고, 이명박 정부에서 KOTRA 사장을 거친데다 서울 출신으로 지역색에 편중되지 않은 조 전 코트라 사장을 신임 사장 1순위로 꼽아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