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늦은 은퇴, 자식 일자리 뺏는다?

한국은행 조사국에 따르면 정년연장으로 고령층 취업자 수가 늘어나도 청년층 일자리는 줄어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취업박람회에 참석한 취업준비생. 연합뉴스
한은 조사국 분석 결과
청년층-고령층 간 고용 경쟁 아닌 '상호보완 관계'

출산율·노동인구 감소 대비 고용 연장정책 정비해야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의 절반을 정규직으로 바꾸겠다. 정리해고 요건을 엄격히 하는 동시에 정년을 연장해서 좋은 일자리를 지키고 고용을 안정화시키겠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체로 지난 10일 열린 '18대 대선후보자 제2차 토론회'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한 발언이다. 문 후보는 "좋은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고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기반"이라며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소득을 늘려야 내수가 확대되고 경제성장의 동력이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문 후보는 정년연장을 통한 고용 안정화를 언급하며 눈길을 끌기도 했다.

토론을 본 일부 보수적인 유권자들은 "기업이 고령사원들의 정년을 늘려주려면 그만큼 신규 채용을 줄여야 할 텐데 이는 필연적으로 청년실업 가속화로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우려하기도 했다. 한정된 일자리를 청년층과 고령층이 나눠 가져야 하는 상황에서 고용연장 등 한쪽만을 위한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청년층의 고용증대를 위해서는 고령층의 고용안정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이러한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이에 대해 한국은행 조사국 측은 지난달 30일 발표한 '청년층과 고령층 간 고용대체 관계 분석'보고서(이하 보고서)를 통해 두 연령층 간 고용은 경쟁관계가 아닌 상호보완관계의 형태라고 주장했다.

고령층 늘고 청년층 줄고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산업화의 진전으로 출산율이 하락하고 의술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2000년대 들어 고령화사회로 진입했다. 고령화는 노동인구 감소에 따른 잠재성장률 하락, 사회복지비용 증가에 따른 재정수지 악화 등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고용은 노동력의 공급과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 국내 고용여건을 살펴보면 고령화 진전에 따라 생산가구인구(15~64세)의 증가폭이 축소되고 있고 산업구조가 노동을 절약하는 방향으로 변하면서 소위 '고용 없는 성장'이 이뤄져 왔다.

일반적으로 노동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15세 이상 인구는 1990년대 이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 증가 속도는 점차 완만해져 2000년대 들어서는 1%대 초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중 청년층 인구가 1990년대 이후 감소하고 있는 반면 고령층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경제활동인구도 인구구조와 비슷한 추이를 보이고 있다. 즉 전체 경제활동인구가 서서히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청년층 경제활동인구는 줄어들고 고령층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취업자 수 추이도 인구구조 및 경제활동인구와 비슷한 궤적을 보이고 있다. 전체 취업자 수를 보면 외환위기 때 일시적으로 감소했다가 그 이후 꾸준히 증가했다. 그 중 청년층 취업자 수는 1990년대 이후 감소를 지속했고 고령층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취업자 수를 산업별로 살펴보면 청년층의 경우 소비재산업, 도ㆍ소매업, 건설업 등을 중심으로 빠르게 감소하고 있는 반면 고령층은 모든 업종에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취업자 수를 종사자 지위별로 살펴봐도 임금근로자와 자영업자 모두 청년층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는 반면 고령층은 완만하게 증가하고 있다.

청년 일자리 뺏지 않아

인구구조, 경제활동인구, 취업자 수 등을 살펴봤을 때 청년층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반면 고령층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고령층이 청년층의 일자리를 점차 빼앗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보고서에서는 고령층의 고용증가가 청년층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에 대해 미시ㆍ거시자료를 이용해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우선 두 집단 간 경합의 정도를 나타내 격리지수의 대표격인 대수선형연관지수를 통해 청년층과 고령층 간 직종경합 정도를 살펴본 결과 일부 업종에서는 어느 정도 진행된 바 있으나 전산업 및 대부분의 업종에서는 그 정도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미시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 양 세대 간에 고용대체가 진행됐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고용률과 실업률 등 고용상황 지표와 GDP 성장률 등 거시자료를 이용해 세대 간 고용대체 여부를 분석한 결과, 1990년대에는 대체로 고령층의 고용이 늘어날 때 청년층 고용이 증가하는 세대 간 고용보완 관계가 뚜렷이 나타났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이러한 관계가 다소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미시ㆍ거시자료를 통한 분석 결과 모두 청년층과 고령층 고용은 경쟁적이라기보다는 상호 보완적 관계로 인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이다.

이에 보고서를 작성한 한국은행 조사국 측은 "청년층과 고령층 간 고용대체 여부에 관한 논쟁을 진행하는 것 보다는 고령자의 고용연장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 수준을 높이고 이에 대한 각종 법령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사국은 이어 "최근 들어 고령화가 빠르게 진전되는 가운데 1955~1963년생들인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있는 터라 이에 대한 조속한 대책 마련을 통해 노동인구 감소에 따른 잠재성장률 하락, 재정수지 악화 등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