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 인사철 맞아 재계3세들 '꿈틀'임세령 대상 상무 등 '위축' 전망 깨고 줄줄이허세홍-허윤홍 승진에 GS경영권 행보 이목집중조현아-조원태-조현민 한진 3남매도 승진할듯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황폐했던 땅에 할아버지가 심은 씨앗을 아버지가 단단한 거목으로 만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열매를 따 먹는 것뿐이다. 그러나 나무의 성장에 별 보탬이 되지 않았던 자식에게 열매만을 덥석 넘겨주자니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 하루빨리 자식을 키워 열매를 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는 경영권 승계 구상을 하고 있는 재계 총수 대부분의 고민일 것이다. 실제로 경영권을 넘겨주려면 최소한 그에 걸맞은 직함은 지니고 있어야 한다.

또래들처럼 대리, 과장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재계3세들이 머리 희끗거리는 이들과 함께 임원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실적과 능력도 없는 자식을 총수일가라는 명목만으로 초고속 승진시키는 것도 부담이다.

가뜩이나 '신의 아들'이라며 호의적인 눈빛을 보이지 않는 언론과 시민ㆍ사회단체의 비난을 한 몸에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를 넘겨받을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오되 그렇다고 입방아에 오를 만큼 빠르지는 않게. 이것이 연말 인사철 때마다 떠오르는 총수들의 화두다.

올해도 어김없이 인사철이 다가왔다. 인사철을 맞아 가장 주목되는 것은 각 그룹 후계자들의 승진 여부다. 경영전면에 나선 재계3세들 중 차기 후계자에 걸맞은 직함을 달고 경영권 승계에 박차를 가하는 사람이 누가 될지에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임세령 대상 상무
당초 재계 전문가들은 올해 인사에서만큼은 각 그룹의 3세들이 승진을 맛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제18대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이 대부분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등을 주요 공약으로 설정하고 있는 까닭에 그동안 거침없었던 재계 3세 승진행보가 상당부분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러나 을 비롯해 주요 그룹 3세들의 승진소식이 연이어 들려오며 이 같은 예상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건희 회장의 결단에…

지난 5일 열린 삼성 사장단 인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스마트폰ㆍTVㆍ반도체ㆍ디스플레이 사업이 글로벌 1위를 공고히 하는데 크게 기여했고 경영감각과 네트워크를 갖춘 경영자로서 경쟁사와의 경쟁과 협력관계 조정, 고객사와의 유대관계를 강화했다는 것이 이 부회장의 승진이유였다.

이 부회장의 승진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단호한 결단에 혀를 내둘렀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정치권, 시민단체 등에서 재벌개혁 논의가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그 중심에 놓인 삼성이 굳이 총수 아들인 이 부회장의 인사로 주목을 받을 리 없다는 당초의 예상을 완전히 깨뜨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회장은 결국 이 부회장의 승진을 밀어붙였고 재계1위 삼성의 결단은 후계자들의 승진 여부를 놓고 가슴을 졸이던 여타 그룹들의 결정을 이끌 전망이다.

박준경 금호석유화학 상무보
이 부회장의 승진에 앞서 임창욱 대상 회장의 장녀인 임세령씨도 상무로 승진하며 눈길을 끌었다. 임 상무는 식품사업총괄부문 크리에이티브디렉터에 임명, 향후 대상의 식품 브랜드 관리와 마케팅, 디자인 등의 업무를 총괄하게 됐다.

한때 대표적인 재벌가 부부로 꼽혔던 이 부회장과 임 상무의 동반 승진은 재계 호사가들의 입소문을 타기에 충분했다. 대상은 지난 10월 임 상무의 동생인 임상민씨를 전략기획본부 부본부장(부장)으로 임명하며 본격적인 3세 체제의 초석을 다지기도 했다.

GS '젊은 피' 그룹의 쌍두마차인 과 도 올해 승진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에 GS 인사 대상에 포함된 37명 중 허씨 일가는 6명에 달한다. 허동수 GS칼텍스회장의 뒤를 이어 GS칼텍스 대표를 맡게 된 허진수 부회장과 GS리테일 사장에 오른 허연수 사장, 허용수 GS에너지 부사장 등 3세들과 허세홍 부사장, 허윤홍 상무, 허준홍 GS칼텍스 상무 등 4세들이 이에 해당한다.

GS 인사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허세홍 부사장과 허윤홍 상무의 동반승진이었다. 4세중 가장 연장자인 데다 (주)GS의 지분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 허 부사장과 현 총수인 허창수 GS 회장의 아들로 GS의 적통성을 이어받은 허 상무가 향후 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벌일 행보가 기대되는 까닭이다.

특히 허 회장이 총수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지분이 사촌들에게 골고루 나뉘어 있는 이른바 '집단경영체제'를 취하고 있는 GS의 특성상 두 사람의 향후 승진 대결이 볼 만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
구자은 LS전선 사장은 직급이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보직을 확대했다. LS의 2세 경영진 중 가장 젊은 구 사장이 LS전선의 대표이사를 맡게 된 것이다.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구평회 E1 명예회장, 고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이 LG에서 2003년 분가해 나와 만든 LS는 현재 2세들이 사촌경영 형태로 이끌고 있다. 구자열 LS전선 회장이 구자홍 LS 회장의 뒤를 이어 내년부터 그룹 회장직을 맡게 되며 생긴 공석은 구자엽 LS산전 회장이 채울 예정이다. 구자엽 회장이 LS전선과 LS엠트론 사업부문 전체를 총괄하고 구자은 사장은 LS전선의 현안을 책임질 계획이다.

박찬구-박삼구 회장 아들은

재계3세들의 승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아직 인사발표를 하지 않은 그룹 후계자들의 향후 거취에도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그룹 내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승진경쟁을 벌이고 있는 형제들의 경우 누가 승진하느냐가 향후 그룹의 경영권을 점칠 수 있는 가장 큰 단초가 되는 까닭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3세들의 승진경쟁 중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리는 곳은 오랫동안 지켜왔던 '형제경영' 전통을 깨고 계열분리 수순을 밟고 있는 금호가의 후계자들이다. 박삼구 금호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 모두 계열분리 이후 장남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강화에 고심인 상황이라 올해 후계자들의 승진경쟁 여부가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허세홍 GS칼텍스 부사장
박찬구 회장의 아들인 박준경 금호석화 상무보는 2010년 4월 승진인사를 통해 상무보에 올랐다가 그 해 7월 부장으로 강등됐다. 강등배경에는 "일선에서 좀 더 실무경험을 쌓으라"는 부친의 의중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1년 5개월 동안 부장으로 근무하던 박 상무보는 지난해 말 다시 상무보로 승진하며 임원 대열에 진입했다. 박삼구 회장의 장남인 은 지난해 1월 금호타이어 전무에 오른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승진이 빠르다는 여타 재계3세들과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다.

지난해 말 박 부사장과 박 상무보의 승진이 있었을 때 재계는 계열분리를 앞둔 경쟁사 후계자들 간의 승진경쟁에 주목했다. 아버지들 간의 자존심 싸움이 아들들의 승진대결을 부추긴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두 사람의 승진일자가 불과 5일 간격을 두고 이뤄진 것도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했다.

회사의 실적만을 놓고 보면 박 상무보가 승진대결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상태다. 금호석화는 올해 호성적을 달성하고 재무개선에도 성공하며 워크아웃 조기졸업에 청신호가 켜진 상태다.

그에 반해 금호는 주력 계열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건설업 불황과 해외법인 부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승진연한을 따져봐도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온 박세창 부사장보다 한번 강등됐다가 이제 다시 올라가고 있는 박준경 상무보가 유리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허윤홍 GS건설 상무
한진·효성가 형제대결 중

조현아, 조원태 전무, 조현민 상무보 등 대한항공에서 선의의 대결을 펼치고 있는 한진가의 3남매도 승진이 예상된다. 조양호 한진 회장이 회사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터라 아직 승계 얘기를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이지만 경영수업 차원에서 올해 사장단 인사명단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은 높다. 특히 2010년 말 '나홀로' 승진한 조현민 상무보에 비해 전무로 승진한 지 오래된 조현아, 조원태 전무는 승진가능성이 지속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비해 3분기부터 나아지고 있는 대한항공의 실적도 두 사람의 승진 예상을 뒷받침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올해 3분기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실적을 거뒀다. 매출액은 3조3,127억원으로 전년 대비 2.6%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3,132억원으로 30.5% 늘어나는 등 상반기 부진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효성가의 장ㆍ차남인 조현준 사장과 조현문 부사장도 승진 대상자로 거론되고 있다. 효성은 조현준 사장, 조현문, 조현상 부사장이 각각 그룹의 무역ㆍ섬유, 중공업, 산업자재 부문장을 맡아 활약 중이다.

이중 지난 1월 승진한 막내 조현상 부사장을 제외한 조현준 사장, 조현문 부사장의 승진 여부가 관심거리다. 두 사람은 2007년을 마지막으로 승진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어 이번 인사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조현준 사장은 맡고 있는 섬유부문 실적 급상승으로 승진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효성이 25%의 점유율로 글로벌 1위 경쟁력을 갖춘 스판덱스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부진으로 수익성이 저조했다. 그러나 2분기부터 지난해 중국과 터키 공장을 증설한 효과가 나타나며 이익이 급증했다. 지난해 3분기 68억원에 불과했던 섬유부문 영업이익은 올해 3분기 417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조현문 부사장이 이끄는 중공업부문도 올해 3분기 흑자전환하며 승진 전망을 밝히고 있다.

한화 3세 승진 가능성도

연말 인사철을 앞두고 이재용 부회장만큼이나 관심을 모았던 후계자는 김동관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차장)이었다.

2010년 초 한화에 공식적으로 입사한 김 차장은 현재 한화솔라원에서 그룹의 미래먹거리로 불리는 태양광사업을 이끌고 있다. 직급은 차장에 불과하지만 한화솔라원의 경영전략과 집행을 아우르며 한화의 태양광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지난 8월 김승연 회장 구속 이후에도 한화의 태양광사업은 좌초되지 않고 오히려 성장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김 회장의 2심 공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한화 입장에서도 섣불리 김 차장의 승진을 확정 짓기 어렵다는 점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승진도 기대하는 모양새다. 유통업계 빅3인 롯데와 현대백화점 모두 창업주의 2세가 회장직을 맡고 있는 것에 반해 신세계의 장자만 부회장에 머물러있는 까닭이다.

전문경영인인 구학서 회장이 3년의 임기를 채운데다 오래전부터 사임 의사를 밝힌 터라 정 부회장의 승진설이 더욱 힘을 받고 있다. 정 부회장이 승진할 경우 이재현 CJ 회장과 함께 범삼성가의 젊은 회장 대열에 오르게 될 예정이다.

현재현 동양 회장의 장녀인 현정담 동양매직 상무도 전무로의 승진이 예상된다. 현 상무는 지난 7월 (주)동양의 사내이사로 선임된 데 이어 조직개편을 통해 마케팅실장에서 마케팅전략본부장으로 격상됐다. 남은 것은 전무로의 승진뿐인 셈이다. 현 상무의 동생인 현승담 동양시멘트 상무보는 지난해 말 승진한 바 있다.

숨어있던 후계자들 부상?

연말 인사철을 맞아 그룹의 후계자였지만 그동안 직급이 낮았던 재계3세들의 임원 승진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신원 SKC 회장의 장남인 최성환 SKC 부장은 젊은 SK에서 유일하게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3세다. 2009년 초 SK에 처음 발을 들인 최 부장은 과장에서 차장으로 다시 부장으로 매년 승진해왔다. 이번에 임원으로 승진할 것이 예상되는 이유다.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도 승진 대상자로 거론되고 있다. 사실 올해 초 부장으로 승진한 바 있는 김 부장이 또다시 인사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경영수업을 착실히 받아온 데다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동부CNI의 지분율도 부친인 김준기 동부 회장보다 높은 터라 임원승진은 언제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윤석금 웅진 회장의 아들 윤형덕 웅진코웨이 경영기획실장(부장)도 당초 승진예상자 명단에 있었다. 그러나 웅진코웨이 매각과 웅진홀딩스 법정관리 등으로 승진에 차질을 빚게 됐다. 윤 부장은 2009년 웅진코웨이에 입사해 같은 해 과장, 이듬해 경영전략팀장(차장)을 거쳐 2011년 부장으로 승진했다.

매년 승진한 윤 부장이 올해 임원에 오를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다. 웅진코웨이 매각 결정 이후 웅진씽크빅으로의 이동이 결정된 윤 부장이지만 그룹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임원으로 기용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