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흔들릴까 '안도 속 긴장'친재벌 후보 당선에 일단 안심… 진보성향 의견 포용 범위에 촉각금산분리 공약은 여전히 유효… 50대 기업중 10개사는 영향 받을듯

친재벌 행보를 보여온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되며 재계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사진은 박근혜 당선자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연합뉴스/주간한국 자료사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재계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친재벌 행보를 벌여온 박 당선자의 특성상 재계가 엄청난 후폭풍에 휩싸이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경제살리기'만큼이나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거센데다 박 당선자 또한 원칙과 약속을 중시하는 이미지가 강한 까닭에 해당 공약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기업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양새다.

약화된 경제민주화 공약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본 내용이 담긴 헌법 제119조 2항이 1987년 탄생한 이후, 경제민주화 담론은 때로는 표퓰리즘을 위한 좌클릭이라는 비판을 받고 다른 한편에서는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서민정책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진보진영의 무기였던 경제민주화 카드를 박근혜 당선자가 뽑아든 것은 지난 4.11 총선을 앞두고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영입하면서부터다. 박 당선자를 비롯한 당시 한나라당이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세운 것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꾼 것 이상으로 획기적인 변화였다.

집권여당의 유력대선후보였던 박 당선자가 경제민주화를 내세웠을 때 재계는 발칵 뒤집혔다. 박 당선자는 7월 10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경제민주화를 정책의 핵심축으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대선이 다가오며 문재인, 안철수 후보와 본격적인 대결구도가 형성될수록 박 당선자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더욱 날카로워지는 듯했고 재계의 불안감도 커져갔다.

재계가 한숨을 내쉴 수 있었던 것은 11월 8일 박 당선자와 경제5단체장과의 만남 때부터였다. 박 당선자는 "요즘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서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고 이 부분에 대해 걱정이 많을 것으로 안다"며 "이에 대해 잘못 알려진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특정 대기업 때리기나 국민 편가르기가 아닌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라 덧붙이며 한층 완화된 입장을 표명했다. 이후 박 당선자는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거리를 두는 등 경제민주화 공약 수위를 대폭 낮췄다.

삼성, 현대차, 롯데 등 여전히 불안

그럼에도 재계에서는 박근혜 당선자의 경제민주화 공약 중 완화되고 남은 부분들이 어느 수준까지 정책으로 이어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원칙과 약속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진 박 당선자인데다 자신을 뽑지 않은 진보성향의 국민들마저 포용하기 위해서는 경제민주화 정책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가장 긴장을 하고 있는 곳은 총수들이 법의 심판을 앞둔 한화그룹과 SK그룹이다. 박 당선자는 대기업 지배주주ㆍ경영자의 중대범죄에 대해서는 사면권 행사를 엄격히 제한하고 횡령 등에 대해서는 아예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존 순환출자를 인정하고 출자총액제한제를 내려놓은 이후에도 여전히 박 당선자가 강조하고 있는 금산분리도 민감히 여겨지는 사안이다. 박 당선자는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현행 9%에서 4%로 축소하고 금융ㆍ보험계열사가 행사할 수 있는 비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상한을 단독금융회사 기준으로 향후 5년간 단계적으로 5%까지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금산분리 공약이 정책으로 이어지면 국내 50대 기업 중 10여개사는 지배구조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재계 1, 2위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그룹의 주력계열사인 삼성전자는 금융 계열사 지분율이 8.8%(삼성생명 7.5%+삼성화재 1.3%)나 된다. 삼성생명 7.7%를 비롯해 삼성증권과 삼성카드도 각각 3.1%와 1.3%를 소유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현대자동차가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의 지분을 각각 31.5%, 56.5% 보유하고 있다. 금산분리 정책 실행 이후에도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양사 모두 수조원의 자금을 투입해야만 한다.

대표적인 유통업체인 롯데그룹, 신세계그룹, 홈플러스 등도 박 당선자의 눈치를 보게 됐다. 박 당선자는 대형유통업체의 납품ㆍ입점업체에 대한 불공정 행위, 가맹점에 대한 불공정 행위 근절에 나섰다. 또한 중소도시 대형마트의 신규입점을 지역 협의체에서 합의된 경우에 한해 허용하는 등 골목상권ㆍ중소기업 보호에 무게를 두고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