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박병석 잇단 낙마… 비대위 추대 과정 진통486 그룹 등 주류 '당혹'결국 전당대회 룰이 '관건' … 모바일 투표 등 갈등 예고

문희상/연합뉴스
대선 패배 후 표류하던 민주통합당이 간신히 난파 위기를 면했다. 민주당은 오랜 진통 끝에 지난 9일 5선 중진의 문희상(68ㆍ경기 의정부갑) 의원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때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시작한 문 위원장은 민주당 최고위원, 국회 정보위원장, 참여정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역임한 야권의 대표적인 중진ㆍ원로 그룹에 속하는 인물이다.

문 위원장이 당 전면에 나선 것은 열린우리당 시절이던 2005년 당 의장을 지낸 후 8년 만이다. 온건하면서도 합리적인 성향의 문 위원장은 친노(친 노무현)를 비롯한 범주류는 물론이고 비주류, 중진 그룹 등에서 두루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참여정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 열린우리당 시절 당 의장 경력 등을 들어 문 위원장을 범친노 그룹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문 위원장은 친노와는 거리가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대선 패배 후유증 극복과 당 쇄신이라는 중책을 안게 된 문 위원장은 "더 깊이 국민 속으로 들어가 더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 오직 국민만 바라보면서 국민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문 위원장은 참여정부에서 요직을 거치긴 했으나 전형적으로 중립 성향의 인물"이라고 전제한 뒤 "문 위원장의 등극이 친노, 비노(비 노무현) 어느 한 쪽에 유리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문 위원장이 관리형이라는 점과 전당대회는 이를수록 좋다는 입장을 비쳤다는 측면에서는 비주류의 판정승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은 룰 싸움

지난 7일 민주당 전직 원내대표들의 모임에서는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3월 말 또는 4월 초쯤 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문 위원장도 지난 9일 추대 직후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추대 후 기자회견에서 문 위원장은 "대선 패배의 책임이 후보에게 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책임이 결정적인지 아닌지, 당의 책임이 없었는지는 대선 평가에서 나올 것"이라며 향후 꾸려질 대선평가위원회에서 냉정한 평가를 예고했다.

중립 성향의 문 위원장이 당의 전면에 나섬에 따라 주류와 비주류는 차기 전당대회를 앞두고 셈법이 복잡해졌다. 문 위원장과 전직 원내대표들이 전당대회 개최 시기를 "이를수록 좋다"고 한 만큼 양 진영은 조만간 내부적으로 '대표선수' 선발에 나서야 한다.

'대표선수' 선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당대회 룰이다. 지난해 1ㆍ15 전당대회, 6ㆍ9 전당대회, 대선후보 선출 3차례 중요한 이벤트에서 민주당은 모바일투표를 도입했다.

그 결과 친노 진영에서는 한명숙 이해찬 전 대표를 배출한 데 이어 문재인 대선후보까지 탄생시킴으로써 당내 주류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반면 비주류에서는 당원투표 등에서는 앞서고도 모바일투표에서 밀리는 바람에 잇달아 눈물을 훔쳐야 했다.

따라서 차기 당권의 향배는 모바일투표 존속 여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노 진영에서는 당연히 모바일투표를 존속시키려 하겠지만 비주류에서는 폐지 또는 축소를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관계자는 "2월에는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주요 인사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예정돼 있고 4월 하순에는 재ㆍ보궐선거가 있기 때문에 전당대회는 그 사이인 3월 말 또는 4월 초가 유력할 것"이라며 "모바일투표 존속 여부가 차기 당권의 향배를 가를 최대 변수"라고 전망했다.

박영선·박병석 낙마 왜?

중진인 문희상 의원이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되긴 했지만 그 전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일부 486 그룹과 초ㆍ재선 의원들은 비대위원장으로 3선의 박영선 전 상임선거대책본부장을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GT(김근태)계인 민주평화국민연대 소속의 이인영 의원은 지난 8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서 박 의원의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선거대책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지만 박영선 의원은 최선을 다했다. 도의적 책임을 질 수는 있겠지만 정치적 과오를 범한 것은 아니다"고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이를 두고 당 일각에서는 486 그룹과 박 의원 간에 이심전심 마음이 통한 결과라고 해석하고 있다.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노릴 것으로 보이는 486 그룹으로서는 유력 후보인 박 의원이 출마하지 않는 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비대위원장은 전당대회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출마할 수 없다.

박 의원으로서도 '불확실한' 당권 도전보다는 '혁신형' 비대위원장을 맡는 것이 향후 정치적 역량을 키워나가는 데 더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당초 박 의원은 비대위원장보다 차기 당권 도전 쪽에 무게가 실렸으나 486 그룹 등의 지원 후 급히 방향을 틀었다.

4선 중진으로 중립 성향의 박병석 국회부의장도 비대위원장 유력 후보로 거론됐으나 비주류의 반발로 결국 낙마하고 말았다. 박 부의장은 소속 의원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일부 비주류 의원들은 박 부의장이 정세균 전 상임고문과 가깝다는 점을 들어 반대의사를 표했다. 정 고문은 대선 과정에서 사실상 원 톱(One Top) 체제를 구축하며 신주류로 자리매김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주류에서 추천한 인사는 비주류가 반대하고, 비주류가 내세우는 인사는 주류가 손사래를 치는 바람에 비대위원장 추대에 진통이 컸다"면서 "문 위원장이 향후 대선평가위원회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살펴보면 차기 당권의 윤곽을 미리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당선인과 '새끼손가락 건 사이'


여·야 정치권 훈풍 부나


8년 만에 당 전면에 나서게 된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도 각별한 인연으로도 유명하다. 따라서 새 정부 초기 여야를 떠나 정치권에 훈풍이 불 거라는 다소 성급한 기대도 나오고 있다.

문 위원장이 열린우리당 당 의장을 맡고 있던 2005년 박 당선인은 한나라당 대표였다. 문 위원장이 4월 취임 인사 때 "신뢰 정치를 하자"며 박 당선인과 새끼손가락을 걸었고 이 사진은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문 위원장은 "우리는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국방위원회 등에서 같이 일했고 의원회관 사무실도 바로 옆에 있었다"면서 "외국에 함께 다녀 보니 어쩌면 그리 외국어를 잘하시냐"고 박 당선인을 치켜세웠다. 이에 박 당선인도 "상임위원회 활동 같이 하면서 인간적인 면 많이 발견했다"고 화답했다.

또한 문 위원장은 2005년 4월 초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박근혜 의원은 대북 특사 자격이 있다"고 추천하기도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온건하면서도 합리적인 성향의 문 위원장이기에 여야 관계도 현명하게 풀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