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로 장수기업] ②동화약품올해 창립 116주년 기업역사 만큼 오래된 '활명수' 국내 최초 등록상품에 올라정도경영 철학 바탕 아래 변화와 혁신으로 재도약 준비중

동화약품 충주 cGMP공장
사람들은 만으로 예순 살이 되는 해에 환갑잔치를 치른다. 평균수명이 길어진 요즘에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됐지만 여전히 인생의 한 주기를 잘 마친 것을 축하한다는 의미에서 환갑잔치를 벌이고 앞으로도 오래도록 무병장수하기를 기원한다.

기업들의 평균수명은 사람들보다도 짧다. 30년 이상 무사히 생존하면 장수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특히 자본주의 도입이 늦은 데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됐었던 우리나라에서는 무사히 환갑잔치를 하는 기업이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만큼 1953년 이전에 창립, 지금까지도 위세가 당당한 기업들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환갑을 넘긴 진정한 '장수기업'들은 어떻게 생존의 위기를 극복하며 지금까지 왔을까? 도전과 혁신(두산), 효자상품(동화약품), 안정적 재무구조(한국도자기), 끊임없는 연구개발(한국타이어), 윤리경영(유한양행) 등 장수비결은 제각각이지만 저마다 자신만의 '기업철학'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국내 최초' 타이틀 4개

1987년 태어나 올해로 116세가 된 동화약품은 국내 최고령 기업으로 꼽히는 두산 다음으로 나이가 많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현재 두산이 창업 당시 '박승직 상점'이 주력했던 포목 중개업을 하지 않고 있는 점을 감안, 예나 지금이나 '제약'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동화약품을 국내 최장수 기업으로 꼽기도 한다.

윤도준회장
실제로 동화약품은 가장 오래된 제조회사 및 제약회사(1897년), 최초의 등록상품 '활명수' 및 등록상표 '부채표'(1910년) 명목으로 한국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동화약품의 시초는 한말 궁중의 선전관이었던 노천 민병호 선생이 만든 '활명수'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ㆍ서양의학에 대한 지식을 두루 지닌 민 선생은 선전관직을 사임한 뒤 궁중 비방과 서양의학의 장점만을 살려 국내 최초의 양약인 활명수를 세상에 선보였다.

부친인 민 선생과 함께 활명수를 만들었던 민강 사장은 동화약방을 창업했다. 사명인 동화(同和)에는 '민족이 합심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민족화합의 정신이 담겨있다고 전해진다.

1910년 통감부에 '부채표' 및 '활명수'를 상표등록한 동화약방은 1913년 90여 종의 제품을 내놓고 전국에 186개소의 특약판매소를 설치하는 등 본격적인 제약회사의 면모를 갖춰갔다.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던 동화약방은 1919년 3.1 만세사건을 전후해서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한 민 사장이 대동단 활동 등을 통해 수차례 체포, 옥고를 치르다 마침내 세상을 떠나면서 사세가 급격히 악화된 것이다.

민 사장 타계 이후 민영덕, 이효민, 민인복 등 친인척들이 차례로 사장에 취임했지만 모두 경영에는 문외한이었기에 경영악화를 개선하지 못했다.

풍전등화 처지의 동화약방을 인수한 것이 민족 기업인으로 유명했던 보당 윤창식 사장이었다. 1937년 국내 최초로 성사된 인수ㆍ합병으로 동화약방 5대 사장에 취임한 윤 사장은 가내수공업 수준에 머물러있었던 회사를 현대적인 대량생산체제로 바꿔나갔다. 윤 사장 체제 하에서 동화약방은 만주국에 진출하는 등 본격적인 황금기를 맞기도 했다.

동화약방이 또 한 번의 큰 위기를 겪은 것은 1950년 한국전쟁 때였다. 전쟁으로 순화동 공장이 완전히 파괴되는 등 시련을 겪었던 동화약방은 ICA(국제협력단)의 지원을 받아 쓰러진 공장을 복구하고 재기에 나섰다.

결국 옛 명성을 되찾은 동화약방은 1962년 동화약품공업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한 뒤 발전을 거듭하며 굴지의 제약기업으로 성장했다.

장수비결은 최고의 효자상품

동화약품이 국내 최고령을 다투는 장수기업이 된 데는 회사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 효자상품 '활명수' 덕이 컸다. 1897년생으로 서양의 대표 장수 의약품인 아스피린보다도 두 살이나 많은 활명수는 탄생 이후 병의 모양과 상표가 조금씩 달라졌을 뿐 '생명을 살리는 물'로써의 뛰어난 약효를 지켜가며 소비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120년 가까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만큼 활명수의 유사품들도 많았다. 1910년대에만 활명회생수, 활명액, 생명수 등 60여 종이나 난립했고 근래에 들어서도 비슷한 모양의 병과 이름으로 팔리는 소화제가 많아 진짜 활명수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에 동화약품에서는 1990년 중반부터 10년 이상이나 '부채표가 없는 것은 활명수가 아닙니다'라는 광고를 내보내며 차별화를 꾀하기도 했다.

효자상품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기 위한 노력도 계속됐다. 경쟁업체가 탄산을 주입한 발포성 소화제로 시장을 뒤흔들자 동화약품은 '까스활명수'를 내놓으며 이에 대응했고, 1965년 세계적으로 클로로폼 유해논란이 벌어졌을 때는 이미 정부 기준치보다 낮은 수준으로 사용하고 있었음에도 아예 사용을 배제하는 등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동화약품에 있어서 활명수 못지않은 효자상품이 있다. 바로 후시딘이다. 1980년 처음으로 선보인 후시딘은 당시 '이명래 고약'과 '머큐로크롬액'(일명 빨간약) 등이 주도하던 상처 치료제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후 후시딘은 1994년 서울을 소개하는 상징물 중 가정상비약을 대표하는 제품으로 선정, 타임캡슐에 보관되는 등 현재까지도 전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정도경영 바탕으로 '비전 120' 완성할까

동화약품의 기업철학은 간단하다. 윤창식 사장 때부터 내려오던 '정도경영'이 그것이다. 좋은 약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봉사하고 그 효험을 본 정당한 대가로 경영된다는 원칙이 동화약품의 지금을 만들었다. 좋은 약을 만들기 위한 연구ㆍ개발 관련 투자도 많고 사회적 환원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화약품의 미래는 어떨까? 제약업계에서는 2008년 취임 후 회사를 이끌고 있는 윤도준 회장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노력이 동화약품의 미래를 밝힐 것이라 입을 모은다. 글로벌 신약 발매, 해외의 신규사업 확대 및 일반ㆍ전문 의약품의 균형성장을 통해 창립 120주년이 되는 2017년까지 매출 7,5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비전 120'이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