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평 A콘도 도난사건중견기업 고위직 신모씨 거실에 있던 지갑·차키 등 감쪽같이 사라져… 범인 오리무중콘도에 신형 보안장치 보완 요구했지만 연락 없고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 VIP 고객 불만 커져

평창 '버치힐 콘도' 도난사건의 사후처리 문제와 관련해 손님과 콘도 측 간에 감정대립이 발생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평창 용평 지역의 주가가 올라가고 있는 시점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해 주목을 받고 있다.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최고급 콘도미니엄 A콘도에 지난해 7월 4일 도난사건이 발생했다. 시선을 끄는 것은 이 콘도가 최고급 보안시설을 자랑함에도 뚫렸다는 것과 도난 사건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 사건이 우려스러운 것은 A콘도 측의 사후 대응이다.

콘도 내 절도 처음 아니다

중견기업의 고위인사인 신모씨는 지난 여름을 생각하면 아직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평소 건강이 그리 좋지 못했던 신씨는 무더운 여름 휴식을 위해 가족들과 함께 A 콘도를 찾았다. 도착 당일 저녁 신씨는 다음날 있을 골프를 위해 비교적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숙면을 취하기 위해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든 신씨는 오랜만에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신씨의 휴식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날 생각지도 못한 끔찍한 사건이 터진 것이다.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골프장에 나갈 준비를 하던 신씨는 마루에 놓아둔 지갑과 자동차 열쇠 그리고 여행가방이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다른 곳에 놓아둔 줄 알고 여기저기 찾아 헤맸으나 찾다 보니 없어진 게 하나 둘이 아니었다. 순간 신씨의 뇌리에서는 "도둑이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소름이 끼치면서 다리에 힘이 빠졌다.

신씨는 "도둑은 내 차키를 비롯해 값나가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거의 모두 가져갔다"며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도둑이 대체 어떻게 집안으로 들어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씨는 도둑이 든 사실을 콘도관리사무소에 알리고 경찰에도 신고했다. 신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즉시 조사에 착수했다. 경찰이 콘도 곳곳을 살펴보는 동안 이상한 일이 하나 발생했다. 신씨는 경찰과 이야기하면서 콘도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리고 입구에 다시 돌아왔을 때 계단 부근에서 익숙한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도둑맞았던 자신의 자동차 열쇠였다. 조금 전 나갈 때는 분명 없었는데 한번 돌아보고 오니 열쇠가 계단에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는 누군가 조금 전에 이 자리에 놓고 갔다는 의미다. 열쇠를 본 경찰은 재빨리 콘도 주변을 다시 이 잡듯 뒤졌다. 신씨도 도둑이 멀리 가지 못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러나 도둑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도둑이 경찰과 움직이는 자신을 보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신씨는 또 한 번 소름이 쭉 끼쳤다. 신씨는 "도둑은 내가 경찰과 콘도를 나서는 것을 보고 일부러 열쇠를 계단에 놔둔 것 같았다"며 "보통 일반 좀도둑이라면 잡힐까봐 겁이 나서 그렇게 대담한 짓을 못했을 것인데 이 도둑은 그렇지 않았다. 매우 대담하고 주변 지형에 밝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신씨의 설명에 따르면 도둑은 내부자이거나 내부자였던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CCTV엔 흐릿한 형체만

경찰은 도둑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콘도의 CCTV 기록을 살폈다. 화면에는 도둑이 들어오고 나가는 장면이 포착됐다. 도둑은 훔친 차키로 신씨의 차를 찾아 차 안에 있는 물건도 손댔다. 하지만 문제는 이 도둑의 얼굴이 판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CCTV가 고화질이 아니었기 때문에 흐릿한 형체만 잡힐 뿐 도둑의 정확한 얼굴 생김새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경찰에 따르면 사건 발생지역 주변에서 여러 차례 도난사건이 있었다. A콘도에서의 도난사건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둑이 들자 신씨는 A콘도 측에 보안장치를 보완해 달라고 요구했다. 동시에 연간 관리비 사용내역 등을 열람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마찰이 생겼다. A콘도 측이 만족할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탓이라는 게 신씨의 주장이다.

신씨는 "도난방지 장치 등을 최신형으로 교체하고 내부에 수상한 사람이 있는지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A콘도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관계자와 만나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말로만 알겠다고 해놓고 나중에 연락 한 통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무성의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한 신씨는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 달라고 내용증명도 보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만나서 항의하면 A콘도 측은 '조치를 취하고 연락주겠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아무 연락이 없었다"며 "고객을 우롱하는 것도 정도가 있는 것 아닌가.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보증금 등을 반환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줄 수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신씨에 따르면 신씨는 내용증명을 통해 ▦A콘도 운영위원 명부 및 회원 명부 ▦연간 관리비 사용내역 ▦재발 방지를 위한 보안조치 강화 등을 요구했다.

신씨가 이용하는 A콘도 분양가는 10억원 정도다. 관리비는 연간 1,700만원에서 2,000만원에 이른다. 신씨는 막대한 관리비를 내고 집보다 비싼 분양가를 내고 이용하는 콘도인데 보안이라는 기본적인 부분에서조차 제대로 운용되는 게 없다고 주장한다. 신씨가 관리비 사용 내역을 요구한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또한 신씨는 자신의 친구가 경험한 사건도 이야기했다.

신씨는 "A콘도 회원인 친구가 있다. 내가 도둑맞았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그 친구가 '도둑을 맞은 것은 아니지만 나도 콘도에 침입한 도둑을 발견하고 기겁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며 "그 친구는 골프를 치고 저녁에 들어왔더니 발코니에 사람이 서 있다가 황급히 도망가더라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휴식을 취할 수 있나"고 말했다.

신씨는 "이제는 A콘도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고객이 도둑을 맞고 보안시설을 보강해 달라고 해도 아무런 조치도 없다"며 "A콘도는 내가 환불을 요구했더니 규정상 기간 내 환불을 하게 되면 계약 위반 수수료를 내야 한다며 전체 분양대금 중 2억원을 빼고 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A콘도 측의 문제로 도둑이 들었는데 문제 시정도 안 할 뿐 아니라 손해배상과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에게 규정을 내세워 거액의 위약금을 물겠다는 것은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신씨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A콘도 측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A콘도 측 관계자는 "도둑이 든 부분에 대해서는 고객님께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그리고 도난당한 금품에 대한 보상도 해 주겠다고 했다"며 "하지만 보증금 반환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는 상호 계약에 의해 오간 돈이고 계약서에 명시된 규정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해당 고객에게 전액 환불해 줄 경우 다른 고객의 요구에도 그렇게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고객이 요구한 보안시설 강화는 지금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