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 '알뜰 회장님'은 누구

왼쪽부터 허창수 GS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어릴적부터 엄격한 돈교육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녀
'뚜벅이 회장님' 별명 경영구상 시간 건강은 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그룹 총수 오른 뒤 미국여행 때도 모텔서 숙박
유학시 얻은 교훈 바탕 작은것 하나도 허투루 안써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근검절약 인생철학 접견실 가구 대부분 대물림
사옥도 폐교된 초등교 안팎만 뜯어 고쳐 사용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출장땐 숙박비 아끼려 비서와 한방서 생활하기도
일선 떠나서도 절약맨 낚시터 허름한 여관에 묵어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
해외 출장시도 비행기 좌석은 이코노미만 고집
M&A시장선 과감한 투자 '코치넬리' 인수 큰손

리카싱 청콩그룹 회장
으리으리한 저택에 럭셔리한 외제 승용차, 초호화 여행에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수행원들…. '재벌 총수'라고 하면 흔히 연상되는 장면이다. 그러나 모든 재계 총수들이 이처럼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건 아니다. 일반적인 통념을 뒤집고 검소한 생활을 실천하는 대기업 회장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서민보다 더 서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알뜰한 회장님'엔 누가 있을까.

박성수, M&A선 왕성 식욕

재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알뜰맨'은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이다. 박 회장은 승합차인 '카니발'을 직접 몰고 출퇴근한다. 점심은 대부분 집에서 싸온 도시락으로 챙긴다. 해외출장 때도 비행기는 늘 이코노미석만 고집한다. 출장 시 동반하는 수행비서 조차 두지 않는다.

숙박도 1박에 10만원 이하인 모텔에서 해결한다. 대기업 회장이 모텔방에 몸을 누이는 모습은 쉽게 상상되지 않는 게 사실. 그러나 실제 박 회장은 2011년 패션 브랜드와 해외 리조트를 연이어 인수할 당시에도 10만원 짜리 모텔에서 잤다. 지난해 코치넬리 인수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매사에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는 박 회장이지만 '쓸 때는 확실히 쓰는' 과감한 면모도 있다. 특히 인수합병(M&A) 시장에서 그렇다. 박 회장은 지난 몇 년간 M&A를 통해 몸집을 크게 불렸다.

당장 2010년에만 유통업체 2곳, 해외 패션 브랜드 3개, 레저업체 1곳을 사들였다. 이어 2011년 만다리나덕을 비롯한 해외 패션과 PIC사이판 등 레저업체를 인수했고 지난해는 명품 브랜드인 코치넬리를 손에 넣었다.

기업 인수에서만 큰 씀씀이를 자랑하는 건 아니다. 수년 전부터는 경매시장을 드나들며 귀중품에 적게는 수억원에서 백억원대에 이르는 거액을 쏟아 붇고 있다. 마돈나가 꼈던 장갑, 롤링스톤즈의 친필사인, 재클린 케네디의 진주목걸이, 영국 왕 에드워드 7세의 직위봉,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다이아몬드, 시민케인 각본상 오스카 트로피 등이 박 회장의 소장품들이다.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계획 중인 레저ㆍ테마파크의 콘텐츠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는 게 이랜드 측의 설명이다.

허창수, '뚜벅이' 회장님

허창수 GS그룹 회장도 검소함이 몸에 배어 있다. 어려서부터 돈 쓰는 법에 대해 엄격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허 회장의 조부인 고(故) 허만정 GS그룹 창업주는 자식들이 돈을 달라고 하면 묻지 않고 무조건 보내주는 대신 용처를 엄중하게 따졌다고 한다. 돈을 제대로 썼는지를 중시하는 '돈교육'이었던 셈이다.

허 회장은 특히 '뚜벅이 회장님'으로 통한다. 평소 웬만한 거리는 차를 타지 않고 걸어 다녀서 붙은 별명이다. 수행비서과 동행하지도 않고 혼자 다닌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허 회장은 여의도 전경련 사무실에서 회의를 마치고 63빌딩까지 걸어서 이동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기도 한다.

대기업 총수가 최고급 전용차를 두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걸어 다니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허 회장에게 걷는 것은 또 다른 경영구상의 시간이라고 한다. 바쁜 일정 속에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도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점은 '덤'이다.

여가 생활도 소박하다. 집에서 홈씨어터를 통해 오페라 DVD를 보는 것으로 망중한의 여가를 즐긴다고 한다. 같은 오페라를 여러 버전으로 감상하면서 업무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한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조양호, 모텔 전전하며 여행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알뜰살뜰한 총수 중 하나다. 작은 것 하나에도 허투루 돈을 쓰는 법이 없다고 한다. 이는 미국 유학생활에서 얻은 교훈이 바탕이 됐다. 조 회장은 미국의 상류층만 다닌다는 '쿠싱 아카데미 고등학교'를 다녔다. 이곳에서 부자나라 미국의 상류층 자녀들이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벌고 아껴 쓰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봤다.

선대의 영향도 컸다. 실제, 조 회장의 부친인 고(故) 조중훈 회장의 검소함과 절약 정신은 주변 사람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해외 출장을 가서도 절대 호텔에서 묵지 않고 대한항공 현지 지사 숙소에서 지냈다. 심지어 1965년 고등학생이던 조 회장의 미국 유학을 위해 동행할 당시 여비를 아끼기 위해 사업상 전세를 냈던 화물기를 이용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조 회장은 자연스레 젊은 시절부터 절약을 생활화 했다. 조 회장은 젊은 시절부터 혼자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배낭을 메고 기차를 타고 다니며 1∼2달러 하는 값싼 여인숙에서 잠을 자면서 비용을 아꼈다. 다른 재벌가 자제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조 회장의 검소함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 미국 횡단 길에 나섰을 당시에도 일부러 미국의 중소 도시만을 여행했다. 그것도 고속도로가 아닌 시골길만을 골라 다녔다. 이때도 숙소는 싸구려 모텔이었다고 한다.

장세주, 대물림 된 절약 가풍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역시 근검과 절약이 인생철학이다. 이는 장 회장의 접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장 회장의 접견실은 놀랍도록 소박하다. 책상 등 가구들도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게 대부분이다. 접견실을 화려하게 꾸며 세를 과시하고 체면치레를 하는 일반적인 대기업 회장들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이는 부친인 고(故) 장상태 전 회장이 유언으로 검소를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 서울 수하동 사옥도 73년 폐교된 청계초등학교 건물을 안팎만 뜯어 고친 건물이다. 동국제강이 재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비해 상당히 초라한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장 회장은 전혀 괘념치 않았다.

이 역시 부친이 입버릇처럼 되뇌이던 "사옥 지을 돈 있으면 설비 투자나 하라"는 말의 영향을 받은 결과다. 따라서 당초 장 회장은 동국제강의 기술수준이 세계 톱 클래스로 올라선 이후로 사옥신축을 미루기로 했다. 그러나 2007년 본사 일대가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면서 2010년 같은 자리의 페럼타워로 입주한 상태다.

사실 동국제강 오너가의 검소한 문화는 장 회장의 조부모 때부터 대물림 된 가풍 때문이다. 장 회장의 조부인 고(故) 장경호 동국제강 창업주는 근면과 절약을 몸으로 실천하던 인물이었다. 장 창업주는 경영일선에서 활동할 당시 공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땅에 떨어진 못이나 쇳조각이 눈에 띄면 책임자를 불러 공장이 떠나갈 정도로 야단을 쳤다고 한다.

조모인 고 추선화씨도 검소한 집안 분위기 형성에 일조했다. 1965년 동국제강 부산제강소 건설 당시 공장 근로자들에게 새참으로 나눠준 국수를 일꾼들이 함부로 버리자 추씨가 이를 주워 담아 다시 끊여 직접 먹어 보이던 일화는 유명하다.

이동찬, 일선 떠나서도 절약맨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도 소탈하고 검소하기로 유명하다. 이 명예회장은 경영일선에 있을 때부터 검소한 생활을 했다. 국내외 출장 시에도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비서와 한방에서 잠을 잤을 정도다. 이 명예회장은 당시 "1달러가 아쉬운 나라에서 잠자는 곳에 돈 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는 말로 당황해 하는 비서들을 달랬다고 한다.

이 명예회장의 근검절약 정신은 일선에서 물러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명예회장은 지인들과 낚시를 즐긴다. 이를 위해 며칠씩 외박을 하는 동안에도 고급호텔 등에서 묵는 법이 없다. 낚시터 주변의 허름한 여관에서 머무는 게 대부분이다. 차량도 승합차인 카니발을 주로 이용한다.

주변의 수근거림도 있지만 이 명예회장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비즈니스를 하는 것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 여관에 묵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정도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보다 소박하고 검소한 일상을 선호하는 인품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런 절약 정신은 10대부터 고(故) 이원만 창업주를 도와 회사 내실을 다지면서부터 자연스레 형성됐다고 한다. 이 창업주가 사업뿐 아니라 정치인으로 폭넓게 활동하는 동안 회사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10년된 양복 입고 출근 '소박한 CEO'



● '아시아 최고 갑부' 검소한 생활
개인재산만 255억달러 세계 9위 홍콩 슈퍼맨

은 '홍콩 슈퍼맨'으로 통한다. 개인 재산만 255억달러에 달한다.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9위이자, 아시아 최고의 갑부에 오른 바 있다. 리카싱 회장은 홍콩 전체주식의 1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워낙 홍콩 내에서 벌이고 있는 사업이 많아 "홍콩에서 1달러를 쓰면 그 중 5센트는 리 회장에게로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의 영향력은 홍콩에만 한정된 게 아니다. 끊임없이 세를 확장한 끝에 전세계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청콩실업과 허치슨 왐포아라는 지주회사를 통해 세계 55개국에 500여개의 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직원 수도 26만여 명에 달한다.

그는 홍콩에서 가장 부자인 동시에 가장 존경 받는 인물로도 꼽힌다. 검소한 생활방식 때문이다. 실제, 리카싱 회장은 10년 된 양복을 입고 3만원짜리 손목시계를 착용한다. 밥상에는 국 한 그릇과 반찬 네 가지가 전부다. 그가 스스로 책정한 월급이 65만원에 불과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탁월한 감각과 하루 16시간 이상 일하는 성실함은 기업가 정신의 표상으로 불리기도 하다. 리카싱 재단을 설립해 자선사업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그는 총재산의 3분의 1(약 6조원)를 사회에 환원키로 했다.

한편 1928년 중국 광둥성 산토우에서 태어난 리카싱 회장은 1940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자 부모와 같이 홍콩으로 이주한 뒤, 아버지가 사망한 15세부터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22세에 청콩실업의 모태가 된 청콩 플라스틱공장을 설립하고 1979년 허치슨 왐포아를 인수하면서 거대 재벌로 도약했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