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회장 징역 4년 법정구속 판결 이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31일 열린 횡령 등 형사사건에 대한 1심 선고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연합뉴스
재계 "설마했는데 역시"… '글로벌 성장' 등 큰 차질
홀로 남은 최재원 부회장 공백 메우기 어려울듯
그룹측 "영향 적다"

"분위기가 이상하다 했더니 결국 이렇게 됐다."

지난달 31일 열린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횡령 등 형사사건에 대한 1심 선고에서 재판부가 최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것에 대한 재계의 반응이다. 박근혜 제18대 대통령 당선인의 재벌개혁 의지가 만만치 않아 '설마' 했던 마음이 '역시나'로 결론지은 것이다.

지난해 11월 검찰이 최 회장에게 징역 4년을 구형한 이후 형량을 최소화하고자 동분서주해온 SK그룹은 그간의 노력이 빛을 보지 못하게 됐다. 그동안 순차적으로 경영구조를 바꿔왔지만 최 회장의 공백은 SK그룹의 미래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남을 예정이다. 홀로 남겨진 최재원 SK그룹 부회장이 행동반경을 넓혀가겠지만 총수의 부재를 완전히 메꾸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만에 또다시 법정 구속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이원범 부장판사)는 지난달 31일 그룹 계열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 2008년 SK텔레콤과 SK C&C 등 그룹 계열사를 통해 창업투자사 베넥스인베스트먼트(이하 베넥스)에 펀드 출자하도록 지시해 497억원의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 재판부는 "펀드 조성 당시 최태원 회장의 재무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아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계열사 자금으로 거액의 펀드를 조성하는 데도 내부 검토를 하지 않는 등 펀드 조성에 '비정상성'이 보인다"고 판시 이유를 밝혔다.

재판을 담당한 이 부장판사는 "최태원 회장은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SK그룹의 총수로서 기업 경영 합리성과 투명성에 더 앞장서야 한다"며 "그러나 최 회장은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다수 유력 계열사를 범행 수단으로 삼아 회사 자금을 사적으로 활용하는 등 기업 사유화를 극명히 표출해 죄질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최 회장은 재판 중에도 책임의 무거움에 대해 진실하게 성찰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며 "재판부는 관용에 앞서 엄정한 대처의 당위성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재판부는 최 회장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계열사 임원에게 추가 상여금을 지급해 반납받는 방식으로 14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와 최재원 SK그룹 부회장이 최태원 회장, 김준홍 대표와 공모해 회사 자금 460억원을 횡령한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최재원 피고인 본인이 회사 자금을 유출한 것으로 진술하고 있지만, 사건의 객관적 상황을 보면 피고인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되지 않아 공소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재판부가 선고를 마친 이후 발언 기회를 얻은 최 회장은 "제가 무엇을 제대로 증명 못 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이 일(횡령)을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이에 재판부는 "이의가 있다면 일주일 내로 항소하라"고 답변했다. 이에 SK그룹은 "판결문을 송달받는 대로 판결취지를 검토한 뒤 변호인 등과 협의해 항소 등 법적절차를 밟아 무죄를 입증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동생 백업에도 공백 여전해

최태원 회장의 법정 구속으로 SK그룹은 충격에 휩싸였다. 박근혜 제18대 대통령 당선인의 재벌개혁 공약 때문에 불안하긴 했지만 설마 실제로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박 당선인은 대기업 지배주주ㆍ경영자의 횡령 등 기업범죄에 대해 아예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을 강화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최 회장의 구속이 미칠 영향에 대해 SK그룹 측은 "최태원 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되긴 했지만 SK그룹은 총수의 권한을 계열사 최고경영자들에게 대폭 위임하는 경영체제로 전환했기 때문에 당장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적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새로 도입한 '따로 또 같이 3.0' 체제를 바탕으로 그동안 그룹 총수와 지주사가 가지고 있던 경영에 관한 모든 의사결정권을 각 계열사 이사회에 이관한 이상 큰 문제는 없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최 회장은 올해 초 그룹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서 물러났고 그 후임으로 김창근 SK케미칼 부회장을 선임했다. 구속을 염두에 둔 사전포석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수였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최 회장의 부재로 인한 경영 공백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들은 "수펙스추구협의회가 그룹의 주요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최태원 회장이 의장이었기 때문"이라며 "옥상옥 구조를 통한 총수의 지배력이 여전한 상황에서 전문경영인이 그룹경영과 관련한 주요 결정을 신속하기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장기적으로 볼 때 최 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오던 SK그룹의 글로벌 성장과 신성장동력 발굴, 해외네트워킹 등은 큰 차질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올해 신년을 중국에서 맞이할 만큼 해외사업 구상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또한 최근 참석한 다보스포럼에서는 글로벌 정보통신(IT) 거물들과 비즈니스 회동을 갖고 글로벌 협업 등에 대한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반도체 사업과 해외 자원개발 등 새로운 먹거리 확보에도 매진하며 소기의 결과를 내고 있는 상태였다. 대부분 총수의 결단이 필수불가결한 것들이라 최 회장의 부재는 해당 사업들의 전망이 불투명하게 만들 예정이다.

과거의 경험도 최 회장 공백이 가져올 현상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2003년 최 회장이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후 동력을 잃은 SK그룹의 중국 정보기술(IT)사업은 결국 실패로 끝났고 생명과학 신사업 진출 얘기도 자취를 감췄다. 10년 전과 비교해 경영구조적으로 안정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불안요소는 여전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재원 부회장이 무죄로 풀려나왔다는 점이다. 재계에서는 현재 SK E&S 이사회 멤버와 SK네트웍스 이사회 의장직을 맡고 있는 최 부회장이 형의 공백을 메꾸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