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점 인터뷰- 전직 국정원 직원 김기삼씨 증언국정원 심리정보국은 국민의 정치적 판단에 영향을 주기 위한심리전 전담 부서지만 '인터넷 글' 업무에 없어 정치 개입 아니다

전직 국정원 직원 김기삼씨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원 여직원 댓글은 대국민 심리전 활동의 일환으로 오래전부터 해오던 국정원의 고유 업무라고 밝혔다.
국가정보원 여직원 김모(29)씨가 지난 대선을 앞두고 인터넷 사이트 2곳에 민감한 정치ㆍ사회 이슈 등과 관련해 모두 120개의 글을 올린 것으로 확인돼 대선 개입의혹이 일고 있다.

당초 경찰은 "김씨가 올린 글 중에는 정치적인 내용이 없다. 기존의 일반인들이 올린 글에 찬반표시만 했을 뿐이다"라고 대선 전 밝혔다. 하지만 최근 드러난 내용을 보면 앞선 수사발표와 달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김씨가 올린 글 대부분은 정부ㆍ여당의 입장을 옹호하고 야당에는 비판적인 내용인 것으로 밝혀져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무엇보다 경찰은 이런 글이 있음을 확인하고도 그동안 계속 숨겨와 사건을 축소ㆍ은폐하려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뒤따른다.

파장이 확산되면서 김씨가 몸담고 있는 국정원 심리정보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심리전국'이라고도 불리는 이 부서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그 업무내용에 따라 김씨의 온라인상 활동이 정치 개입인지 아닌지 구별되기 때문이다.

이에 과거 국정원 도청사건과 김대중 정부의 여러 비리 의혹을 폭로하고 미국으로 망명한 전직 국정원 직원 김기삼씨를 통해 '심리전국'의 업무를 들어 봤다.

국정원 업무 일부는 필요악

김기삼씨의 설명에 따르면 국정원 심리전국 업무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심리전국 업무는 '대북 파트'와 '대내 파트'로 나뉘는데 대내 파트는 국내 관련 업무를 소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정치상황에 따라 국민의 정치적인 판단에 영향을 주기 위한 심리전을 전개하는 곳이 심리전국 대내 파트의 주 업무다.

그러나 김기삼씨는 여직원 김씨가 인터넷에 글을 올린 것에 대해 "정치개입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현실적으로 심리전국 여직원이 그런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국정원 성격상"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게 김기삼씨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김기삼씨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또 심리전국이 하는 업무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아봤다. 다음은 김기삼씨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 국내 언론 보도에 의하면, 지난 대선 직전에 국정원 심리정보국 여직원이 인터넷 싸이트에다 문재인 후보를 흠집 내는 댓글을 달았다고 하는데 이게 가능한 얘기인가?

▲ 언론에 보도된 내용으로 볼 때, 심리정보국 담당 여직원이 인터넷에 댓글을 올린 사실 자체를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국정원에서도 이미 어느 정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재인 후보 개인을 음해하기 위해 댓글을 달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국정원 여직원이 유력 대선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마타도어 내지 흑색선전을 했을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국정원이라도 이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요즘 그런 "간 큰" 직원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 국정원에서는 대북 심리전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는데.

▲ 궁색한 변명으로 보인다. 국정원으로서는 그렇게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현재의 국정원 편제에 대해 알 수 있는 위치는 아니지만, 아마도 심리정보국에는 대북심리를 전담하는 팀과 대내 심리전을 전담하는 팀이 따로 있을 것이다. 참고로, 내가 국정원에 근무하던 10여년 전에는 심리전국에 대북방어과와 대내방어과가 있었다.(이 부분에 대해 국정원 측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김기삼씨가 알고 있는 내용과 큰 차이는 없었다.)

- 대북방어과와 대내방어과의 임무는 어떤 것이었나?

▲ 나도 심리전국에 근무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리전국의 업무에 대해 자세히는 모른다. 듣기로는 대북방어과는 대북방송 등 주로 북한 동포들에 대한 심리전 활동을 전개하고 대내방어과는 국내의 정치상황에 따라 우리 국민들의 정치적인 판단에 영향을 주기 위한 심리전을 전개했다고 한다. 좀 우스운 얘기지만, 내가 국정원에 근무하던 당시 대내방어과의 가장 대표적인 심리전 활동이 각 신문사에다 독자투고하는 일이었다. 물론 당연히 주소라든가 신원 사항은 모두 위장이든지 가짜였다. 당시에 독자투고란에 실리던 심리전 자료가 10여년이 지나 이제는 사이버 공간에서 댓글이라는 형태로 진화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 당시 심리정보국의 활동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 내가 근무하던 당시에는 북한에 대북 심리물자를 살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이른바 대북 "풍선"사업이다. 대형 풍선에 치약 치솔 라면 등 생활필수품 등과 함께 남한의 발전상을 선전하는 글이나 북한의 폭압체제에 대한 비판을 담은 팜플렛을 넣어서 북한으로 날려 보내는 것이었다. 당시 심리전국에는 풍향 풍속에 따라 고도를 얼마로 하면 북한의 어느 지점에 심리전 물자가 떨어지는 지 등에 관해 전문가들이 많이 있었다. 그 후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러한 대북 심리전이 전면 금지되면서 "풍선전문가"들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어 버렸다. 내가 전략국에 잠시 있을 때 나의 직속상관도 '풍선전문가'였다가 할일이 없어져서 전출되어 온 분이었다.

- 국정원에서 심리정보국의 위상이랄까 중요도는 어느 정도인가?

▲ 심리정보국은 국정원 내에서 비교적 한직으로 인식되는 부서다. 찬밥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장 비인기 부서 중의 하나다. 이런 심리전 활동을 무슨 대단한 일인 양 부풀려서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 야당도 한심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인다. (국정원 측은 심리전국에 김기삼씨와 조금 다르게 설명했다. 국정원 내에서 심리전국은 한직이 아니라 중요부서로 인식되고 있으며 여러 핵심업무를 담당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다른 국정원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심리전국의 비중은 MB정부 들어 강화된 측면이 없지 않다.)

- 심리전 활동이 필요하다고 보나?

▲ 물론이다. 대북 심리전이든 대내 심리전이든 심리전 활동은 정보기관의 필수 활동이다. 세계 어느 나라도 심리전 활동을 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당연히 정보기관이 심리전 활동의 주력이다. 물론 전시에는 군대가 주력이 되겠지만 말이다. 대외 심리전뿐만 아니라 대내 심리전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활동내용이 들켜서는 곤란한 일이다.

- 대북 심리전은 몰라도 대내 심리전은 불법적인 활동이 아닌가?

▲ 정보기관이란 원래 불법적인 활동을 전재로 하고 존재하는 기관이다.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면 정보기관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 경찰이나 검찰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정보기관이 나설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지난 2005년 국정원의 불법 도청을 세상에 알렸을 때에도, 국정원의 도청활동은 반드시 필요한 활동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강화되어야 할 활동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린 적이 있다. 단지 국내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을 도청할 게 아니라, 간첩 잡는 일에, 우리의 헌법과 체제를 수호하는 일을 위해, 도청이든 감청이든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내 심리전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암약하고 있는 간첩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합법이든 불법이든 대내든 대북이든 심리전 활동이 지금보터 훨씬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합법, 불법을 따지기에는 우리의 안보 현실이 너무 급박하고 위험해 보인다. 안보적인 측면에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취약해져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 대내 심리전이 강화되어야 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 이제까지의 대내 심리전이란 것이, 고작 언론사에 투고하거나 전화를 걸어 항의하는 수준, 또는 이번에 보듯이 댓글이나 다는 수준이다. 귀순자나 탈북자의 강연회를 주선하는 수준 정도에 머물렀다. 이런 정도로는 남한에서 다양한 심리전을 펴는 북한의 간첩 고첩들을 당해낼 수 없다. 체제수호를 위해 심리전 전사들을 양성하고 지원해 주어야 한다. 돈을 써서라도 언론, 출판, 문화계 인사들을 우군으로 만들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정원이 가장 출판사나 언론사도 차려야 한다. 영국이나 이스라엘 등 최고의 정보기관을 운용하고 있는 나라들은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해오고 있다.

- 마지막으로, 이번에 국정원 여직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 여직원 개인으로 볼 때, 사회적 비난을 한 몸에 감당해야 할 처지라 참 딱해 보인다. 억울한 마음이 클 것으로 생각된다. 국가를 위해 자기 한 몸 희생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위안을 삼기를 바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결국 혼자 덮어 써야 하는 것, 국정원 직원의 운명이란 게 그런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한편 진보정권의 정치적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미국인이 된 김기삼씨는 최근 국정원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담은 책을 미국에 영문으로 펴낼 계획이다.

그가<회칠한 가면, 악마의 초상>이라는 제목으로 김대중의 노벨상 공작과 대북 뒷거래 실태를 폭로하는 양심증언을 한지 10주년이 되었다. 그는 2003년 1월 30일 이 책을 세상에 공개해 주목을 끈 바 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그의 책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