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수도 사건 국정원 X-파일' 마침내 열린다

법원 '비자금 로비 보고서' 공개명령 가능성 커져

주 "권력기관 청탁 거부로 보복성 보고서 작성" 주장

'권력 표적수사' 세간 추측… JU수사 시발점 된 보고서
국정원 공개여부 예의주시

검찰 수사 허점도 드러나

다단계 판매회사 제이유(JU)그룹의 주수도 회장(57·복역중)에 대해 법원이 잇따라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함에 따라 향후 재판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주 회장이 "비자금으로 로비를 했다고 주장한 보고서를 공개하라"며 국가정보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대법원은 최근 이를 다시 판단하라며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 3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주 회장이 국정원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국정원은 지난 2004년 '제이유 그룹이 사채놀이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부패를 숨기려고 검사와 판사, 경찰관 등에게 뇌물을 뿌렸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주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국정원은 보고서를 청와대와 검찰에 제공했지만 반응이 기대에 못 미치자 보고서를 다시 인터넷 언론에 이를 넘겼다. 국정원 보고서 파일이 보도되면서 사회적 파장이 일었고 검찰은 비로소 이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검찰은 주 회장을 조사한 직후 이를 '단군 이래 최대 다단계 사기사건'이라고 밝혔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JU 사건'이다.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이 사건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지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청와대ㆍ국정원ㆍ검찰 등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사건이며, 주 회장은 괘씸죄에 걸린 희생양"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다른 시대 다른 판단

당시 불법 다단계 회사를 운영한 혐의로 기소돼 12년 형을 선고받은 주 회장은 "정치적 모함으로 사기꾼으로 매도돼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을 지금까지 굽히지 않고 있다.

주 회장은 "국정원은 내가 여러 가지 은밀한 제안을 거부하자 악의적으로 모함을 했으며, 검찰도 JU의 피해자들을 회유해 끼워 맞추기식 수사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 회장이 "보고서와 그 근거, 이를 수집했다는 '부패척결TF팀'의 자료를 공개하라"며 국정원을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1ㆍ2심 재판부는 "금품 수령자의 이름과 직위는 사생활 보호라는 관점에서 공개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내사 자료 등을 주 회장이 요구함에 따라 법원은 이 자료를 국정원이 가지고 있는지를 심리해야 한다"며 "주 회장이 이 자료가 국정원에 있음을 상당히 증명한 경우라면 각 정보에 대해 개별적으로 심리를 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원심은 또 '부패척결 TF팀'의 활동내역도 비공개 정보로 단정했는데 이 역시 주 회장이 요구하는 정보를 구체적으로 특정한 다음 개별적으로 따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 회장은 이 뿐만 아니라 다른 재판을 통해서도 자신에게 씌워진 누명을 하나하나씩 벗어나가고 있다. 앞서 주 회장은 해당 보고서로 인해 명예가 훼손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끝에 지난 2010년 2,000만원의 배상판결을 확정받기도 했다.

또 지난해 12월 초에는 주 회장이 제기한 재심청구에 대해 법원은 고심 끝에 재심청구를 받아들였다. 주 회장에 대한 재판부의 재심 결정은 매우 주목할 만한 사안이다. 재심청구가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과거 재판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위여부를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통상 재심은 기존의 재판을 뒤집을 결정적인 증거나 사건을 전면 재검토할 중대 사유가 없으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주 회장이 재심을 통해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국정원 보고서 탄생 배경

주 회장은 검찰에 의해 희대의 사기꾼이 됐지만 국정원 보고서가 공개될 경우 국정원과 검찰은 경우에 따라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먼저 국정원 보고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보면 보고서의 내용 중 일부는 음해성으로 드러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주 회장은 회사 JU가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인 2004년 청와대와 국정원의 고위인사들로부터 은밀한 청탁을 받았다. 당시 청와대의 한 고위인사는 자신의 측근이 화장품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니 그 회사의 물건을 납품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탁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정원의 고위인사는 모 고급 한정식당에서 비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 때 주 회장은 "나는 사업을 그런 식으로 한 적 없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주 회장 측은 이 청탁을 거절한 것이 국정원 보고서가 작성된 원인일 수 있다고 추측한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언론사 기자가 입수했다는 보고서의 내용을 보면 사실과 다른 내용도 적지 않고 상당부분이 음해성이라는 게 주 회장 측의 주장이다.

또 이 문건이 해당 기자에게 전달되는 과정도 석연치 않다. 주 회장 보고서를 처음 보도한 오모 기자는 주 회장이 제기한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재판에서 패소한 뒤 주 회장을 찾아가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자는 보고서에 대해 "문제가 많은 보고서였다. 국정원에서 보고서가 작성됐다는 사실과 그 보고서의 내용 일부를 보도했지만 나중에서야 추가 확인을 통해 보고서가 불순한 목적에 의해 작성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인지했다"며 "내가 밝힐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지만 여러 정황상 보고서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도의적인 차원에서 주 회장에 사과를 했다"고 말했다.

법원이 이번에 정보공개거부처분을 취소함에 따라 자료가 공개되면 경우에 따라 주 회장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국정원이 곤란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도 공교롭다. 정권교체를 앞두고 국정원 핵심인사들에 대한 물갈이가 예상되고 있는 데다 최근 국정원 여직원 정치개입 의혹으로 국정원이 뒤숭숭한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 연이어 주 회장 보고서 문건이 공개되면 권력의 표적수사에 국정원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보고서 작성에 개입한 국정원 직원들과 검찰 수사 담당자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여지가 크다.

피해자들 피해 더 키운 검찰

최근 당시 검찰 수사의 문제점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주 회장을 수사할 당시 주 회장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과 접촉해 피해사실을 진술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수사 담당 검사는 일부 피해자들에게 "주 회장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진술을 해 주면 주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도록 돕겠다"며 "주 회장을 구속시키지 않으면 절대로 돈을 받아낼 수 없을 것이다. 책임지고 돈을 받도록 해 주겠다"고 설득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검찰 수사에 협조한 한 A씨는 <주간한국>과의 전화통화에서 "검찰이 집요하게 주 회장에 불리한 진술을 하도록 유도했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 회장이 돈을 갚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그대로 믿었다. 하지만 그 검사는 수사가 끝나자 약속을 하나도 지키지 않고 나몰라라 했다. 자기는 공적을 세웠으니 그만이라는 태도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이 피해자는 "주 회장의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검찰에 구속되지 않아야 우리가 돈을 받을 수 있었다"며 "주 회장은 사업확장으로 자금이 부족했지만 '향후 추가 사업을 통해 수입이 발생하면 우선적으로 채무를 변제하겠다'고 우리에게 약속한 상황이었다. 그가 사업체를 계속 운영했다면 지금까지 십원짜리 하나 못 받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검찰 수사 때문에 주 회장의 사업이 주저앉았고 그 때문에 돈을 받기가 더 어렵게 된 것이다. 바꿔 말하면 검찰이 수사를 위해 피해자들의 피해가 장기화 되는 것을 개의치 않은 셈이다.

현재 피해자들은 법원과 청와대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주 회장 구명운동에 적극 뛰고 있다. 일단 주 회장이 나오지 않으면 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주 회장이 사업을 다시 시작해 수입을 창출하도록 하는 것이 돈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채권자들은 생각하고 있다.

당시 수사를 담당한 이는 이모 검사다. 이 검사는 조희팔 사건을 수사한 인물로 현재 조희팔 사건의 피해자 단체인 '바른가정경제실천을위한시민연대(바실련)'의 원성을 사고 있기도 하다. 사건 수사를 초기에 제대로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이 검사의 잘못된 조치로 조희팔이 밀항에 성공했다는 것이 바실련 측의 주장이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