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반성장위 '골목빵집 보호' 결정프랜차이즈 제과점업 중기적합업종 포함파리바게뜨·뚜레쥬르 등 "500m거리 제한… 사실상 출점금지" 거센 반발권고안 강제성 없지만 사회적 공감대 등 큰 부담

파리바게뜨
얼마 전 종영한 SBS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에서는 주인공인 한세경(문근영 분)의 어려운 처지를 묘사하는 장면들을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아 눈길을 끌었다. 그 중 하나가 프랜차이즈 제과점의 저가 공세에 밀려 폐업한 동네 빵집 주인 한득기(정인기 분)의 분노 섞인 외침 장면이었다.

극중 프랜차이즈 제과점의 모회사인 로열그룹 차일남 회장(한진희 분)을 만난 한득기는 "라이트급이랑 헤비급이랑 싸우는 것도 경쟁입니까? 어린애를 어른이 막 패는데"라며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같이 좀 살게 해주면 안 됩니까!"라고 울분을 토한다. 이 장면은 지난해부터 계속된 동네 빵집 논란과 맞물리며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드라마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받았을까? 앞으로는 동네빵집들이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점들의 무차별 공세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전망이다. 프랜차이즈 제과점업이 동반성장위원회(이하 동반위)가 지정한 중소기업적합업종(이하 중기적합업종) 목록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SPC그룹), (CJ그룹) 등 그동안 재벌가 빵집 논란에서 한 발 비켜나 있던 프랜차이즈 제과점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나 골목빵집 보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큰 데다 박근혜 제18대 대통령 당선인의 골목상권 보호 의지 또한 만만치 않아 동반위의 이번 결정이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작년말 점포수 2%내만 신설

동반위는 5일 오전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열린 제21차 정례위원회에서 14개 서비스업과 2개 제조업을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동반위는 플라스틱봉투, 기타곡물가루 등 제조업 2개 업종과 제과점업, 음식점업, 자동판매기 운영업 등 서비스업 9개 업종에 대해 확장자제ㆍ진입자제ㆍ사업축소 권고안을 제시했다.

뚜레쥬르
이날 가장 관심을 모았던 것은 그동안 대ㆍ중소기업 상생과 골목상권 보호 등을 놓고 첨예한 갈등을 벌였던 제과점업이었다. 동반위는 제과점업에 대해 확장및 진입자제를 권고했다. 적용 범위는 프랜차이즈형과 인스토어형 제과점이며 권고 기간은 내달 1일부터 2016년 2월 29일까지다.

이번 권고로 와 등 프랜차이즈 제과점은 매년 전년도 말 점포 수의 2% 이내 범위에서 가맹점 신설만 허용되고 새 점포를 열 때는 인근 동네빵집과 도보 500m 이상의 거리를 두게 됐다. 단, 상가 임대차 재계약 불가, 재건축 또는 리모델링, 임차료의 과다 상승, 건물주의 상가 직접 운영 등 불가피한 경우에는 근접 출점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동네빵집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대한제과업체는 제과점업을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하고 프랜차이즈 제과점들이 신규 점포를 내지 못하게 해줄 것을 2011년 9월 동반위에 신청한 바 있다. 이에 동반위는 수차례 이해당사자들과 협상을 해왔지만 CJ그룹, SPC그룹 등 프랜차이즈 제과점을 운영하는 대기업들의 반발로 번번이 실패했다.

지난해 12월에도 동반위는 제과점업에 대한 중기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발표하려 했지만 이해당사자들의 입장 차를 결국 좁히지 못하며 발표가 미뤄졌다. 이번 결정은 대한제과업체의 중기적합업종 지정 신청 1년 5개월 만의 결과다. 일반 제조업이 신청부터 최종 확정까지 길어야 8개월 정도 걸리는 점을 감안한다면 관련 사안을 둘러싼 양측의 갈등이 얼마나 첨예하게 전개됐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중규제로 사업축소 우려?

동반위의 제과점업 중기적합업종 지정 발표에 해당 업체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를 운영 중인 SPC그룹은 "국가 경제성장률 3%에 준하는 최소한의 성장을 배려해 달라는 제빵 전문 중견기업의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유감스럽다"며 "전국에 1만여 개가 있는 개인제과점과 역시 소상공인인 가맹점과의 500m 거리 제한은 사실상 출점 금지와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운영사인 CJ푸드빌 또한 "앞서 건전한 베이커리 생태계 복원을 위해 확장 자제를 스스로 선언한 바 있으므로 앞으로도 베이커리 산업 발전과 상호 성장을 위해 지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며 "다만 이번 500m 거리 제한 결정은 기존 공정거래위원회의 거리제한에 이은 이중규제로 사업 축소의 우려가 있다"고 반발했다.

양사의 이 같은 반응은 사실상 동반위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라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까지 중기적합업종 지정 대상 가운데 권고안을 거부하겠다고 나선 경우는 없었다.

새정부도 골목상권 보호 나서

동반위의 중기적합업종 지정과 권고안은 강제력이 없다. 동반위의 결정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SPC그룹, CJ그룹이 해당 권고를 거부하고 나선다 할지라도 이에 대한 제제방법이 없는 것이다. 물론 동반위가 권고를 불이행한 기업에 대해 중소기업청에 사업조정을 신청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이 길게는 1년 정도 걸린다. 사실상 법적 구속력을 지니고 있지 못한 셈이다.

이에 대해 동반위 관계자는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합의한 내용을 동반위가 발표한 것이니만큼 따르지 않을 경우 도덕적 비난과 지탄을 면할 수 없다"며 "이를 감수하면서까지 권고안을 어길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골목빵집 공세가 오랫동안 사회문제로 세간의 관심을 끌어온 이상, 강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프랜차이즈 제과점들이 막 나갈 수는 없다는 내용이다.

권고사항에 불과하다고 무시하고 사업을 진행하기에는 곧 출범할 새 정부의 눈치도 적잖이 보인다. 박근혜 당선인은 대선 공약으로 '중소기업적합업종제도의 실효성 제고로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을 보호하겠다'는 내용을 공표한 바 있다.

박 당선인은 지난달 25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국정과제 토론회에서 "동네에서 한 30년 이상 빵집을 운영했던 분이 대기업은 대량생산을 하기 때문에 도저히 경쟁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며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점을 겨냥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관련 기업들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치권에서는 이번 발표를 계기로 동반위 결정에 법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문제가 쟁점화되고 있다. 동반위 권고사항에 대한 법적 구속력 논의는 대선과정에서 공약사항으로 거론되기도 했던 문제로 점차 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