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기이사 사퇴 속사정"책임경영 강화 위해" 불구 재계, 이마트 압수수색 등 위기상황 국면 전환 해석내수 위주 사업 특성상 경제민주화와 맞닿아 '코드 맞추기'희생양 시선도

서울시 중구 충무로에 위치한 신세계 본점 전경. 작은 사진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주간한국 자료사진
문제 있는 내수 위주 유통기업 사정 1순위…칼바람 피해 숨었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신세계와 이마트 등기이사에서 사퇴한다. 계열사별 전문경영인의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신세계의 설명이다. 그러나 재계는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정 부회장이 검찰조사를 받고 이마트가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국면전환을 위해 '사퇴 카드'를 꺼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사퇴는 위기 탈출 전략?

신세계와 이마트는 지난 20일 정 부회장이 사내이사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공시했다. 정 부회장은 2010년 3월 신세계, 2011년 5월 이마트 사내이사로 각각 선임됐다. 신세계는 정 부회장과 함께 기존 사내이사 3명을 모두 교체하기로 하고 김해성 경영전략실 사장, 장재영 대표, 김군선 지원본부장을 신규 사내이사 후보로 올렸다.

이마트도 김해성 사장과 박주형 경영지원본부장을 신규 등기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허인철 이마트 대표는 사내이사직을 유지하고 신세계 등기이사에선 물러난다. 이에 따라 이마트와 신세계는 각각 허인철·장재영 단독 대표 체제로 개편된다. 이사진 개편은 다음달 15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확정될 예정이다.

재계의 이목은 정 부회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배경에 집중됐다. 이에 신세계는 예전부터 계획됐던 조치라고 밝혔다. 신세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의 사내이사 사임은 2011년 기업 인적 분할 당시부터 논의해 왔던 것"이라며 "각 계열사 경영진의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에선 정 부회장의 등기이사 사임을 신세계가 처한 위기상황에서 내린 고강도 조치로 해석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신세계는 검찰의 조사와 압수수색 등으로 고초를 겪고 있다. 일각에선 '창사 이후 최대 위기'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실제, 정 부회장은 계열사인 신세계SVN 등 베이커리에 부당지원한 것이 문제가 돼 배임혐의로 검찰에 고발돼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또 동생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과 함께 국회 국정감사와 청문회에 불응했다가 법원으로부터 정식 재판을 받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마트는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직원들을 사찰한 혐의에 대해서도 검찰 수사를 받는 중이다.

재계에선 정 부회장이 사내이사에서 물러남으로써 검찰 수사 등 일련의 사태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려 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더불어 경제민주화 바람과 맞물려 회사 경영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는 움직임이라는 견해도 함께 나오고 있다.

실제, 등기이사는 인수합병, 신규투자 등 사내의 모든 의사 결정을 하는 이사회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반면 책임도 막중하다. 기업이 민형사상 또는 상법상의 법률적 판단을 받아야 할 경우 1차적 책임은 등기이사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신세계는 정 부회장의 사내이사 사임은 검찰 조사 등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정 부회장이 경영 일선을 떠나는 것도 아닐뿐더러 신성장동력 사업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책임경영을 강화한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재계 신세계에 측은한 눈길

재계는 이런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신세계가 총선 직후부터 사정기관 안팎에서 주요 타깃으로 거론돼 왔기 때문이다. 내수 위주의 유통사업 특성상 주요사업 대부분이 골목상권 논란과 맞닿아 있다. 결국 신세계를 압박하게 되면 정부의 경제민주화 기조를 국민들에게 제대로 '어필'할 수 있다는 셈법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검찰, 심지어 경찰까지 대기업 수사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여기에 최근 사법부의 성향도 단호해졌다. 최악의 경우 정 부회장이 사법처리까지 받게 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 정 부회장으로선 간담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에 재계는 정 부회장이 정권 교체기 전후로 불어오는 칼바람을 피하기 위해 사퇴를 결정한 것 아니냐는 견해가 많다.

일각에선 정 부회장의 사퇴 결정을 '꼼수'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재계는 대체적으로 측은한 눈길을 보내는 분위기다. 한 재계 관계자는 "신세계가 새 정부 출범 이전에 사정기관 '코드 맞추기'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시선이 많다"며 "최근 사정기관들이 경제민주화에 편승해 대기업을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롯데 SPC 희생양 될 수도

신세계를 바라보는 재계의 시선엔 불안이 가득하다. 언제 다음 차례가 될지 알 수 없어서다. 롯데그룹이 특히 그렇다. 롯데그룹 역시 내수 위주의 유통을 주 사업목적으로 하고 있어 신세계와 나란히 사정기관의 '제물'로 거론돼왔다. 특히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정 부회장과 함께 국회 불출석으로 정식 재판에 회부된 바 있어 불안은 더하다.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그룹도 이런 기류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SPC그룹은 그 동안 동반성장위원회가 제과점업을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한 권고안에 반발해 왔다. 그러나 지난 20일 권고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로 인해 SPC그룹은 신규 출점 자체가 사실상 금지됐다.

이와 관련해 한 재계 관계자는 "상생이라는 명분 때문에 이미 유통 대기업 '목 조르기'가 시작된 것 같다"며 "일부 대기업들이 경기불황과 사정기관의 압박 등 이중고를 겪고 있어 위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