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하고 성찰하며 한국의 미래 설계 중… 선진 복지사회 감탄"4년 뒤 마지막 승부 위한 재기 의지 엿보여

야권의 대선 패배 한 달 뒤 독일로 날아간 손학규(65)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지난 1월15일 손 고문은 "대선 경선 때 저녁이 있는 삶이란 구호를 만들었으나 부족한 게 많았다. 꼭 완성해서 돌아오겠다"며 부인 이윤영씨와 함께 인천공항 출국장을 빠져나갔다.

약 6개월 일정으로 독일로 유학을 떠난 손 고문이 얼마 전 친한 지인들에게 e메일로 안부인사를 건넸다. 편지에서 손 고문은 "조급하지 않으려 한다. 많이 배우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손 고문의 서신과 관련해 민주당 관계자는 "더 많이 노력하고 준비해서 4년 뒤에 마지막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다부진 다짐 아니겠냐"면서 "그렇다고 당장 올해 안에 손 고문이 뭘 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히지는 않는다"고 해석했다.

'안녕하십니까? 손학규입니다'라는 제목의 서신에서 손 고문은 "대통령 선거의 상처가 채 씻기지도 않은 어수선한 국내 사정을 뒤로 하고 저 혼자 한가로운 생활을 찾아가는 것 같아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라고 지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먼저 전했다.

손 고문은 이어 "손학규와 더불어 모든 국민이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저녁이 있는 삶'을 찾고자 했던 전국의 수많은 동지들께서 저의 부족함 때문에 경선에 실패해 실망과 좌절을 안겨드린 데 대해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손 고문은 독일에 온 목적은 자신의 부족함과 과오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라고 강조했다. 또 굳이 독일이 아니더라도 겸허한 자세로 자신을 돌아보고 대한민국의 앞날을 깊이 있게 모색하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손 고문은 덧붙였다.

손 고문은 성찰과 모색의 시간을 독일에서 보내는 이유에 대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리는 데 이 나라에서 배울 것이 많겠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사회복지, 노사관계, 교육, 환경, 에너지 문제, 중소기업 등 독일의 성공사례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많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독일 통일의 선도적 사례는 한반도 통일의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에 좋은 교훈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라고 설명했다.

홀연히 떠났던 손 고문은 "조급하지 않으려 합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손 고문은 많은 것을 배우되 독일 사회 또는 유럽 체제를 맹목적으로 베끼려는 유치함에 빠지지도 않겠다고 다짐했다.

손 고문은 "여기 와서 갖는 첫 느낌은 우선 독일이 안정된 사회라는 것이었습니다. 길거리에서 유모차를 밀고 나온 젊은 엄마들이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쇼핑센터나 식당에 노부부가 여유롭게 물건을 고르거나 식사를 하는 광경은 평화를 느끼게 했습니다"라고 독일 생활에서 느낀 소회를 담담하게 적었다.

"아이 낳고 키우는 것이 행복한 사회, 노후가 편안한 사회, '복지사회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통일 과정의 어려움을 너끈히 극복하고 유럽의 리더로 확고히 자리잡은 통일 독일의 국제적 위상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을 많이 배우기는 하겠지만 무조건 베끼지는 않을 거라고 손 고문은 다시 한 번 힘줘 말했다. 독일에도 복지제도, 교육, 노동문제 등에서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끊임없는 논쟁이 있는 만큼 배울 것은 배우되 문제점은 나름대로 소화하는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는 게 손 고문의 생각이다.

손 고문은 독일 사람들의 검소함도 주목했다. "독일 사람들의 생활도 대체로 수수한 것 같습니다. 자동차도 으리으리한 벤츠나 BMW보다 기아의 모닝 같은 소형차들이 훨씬 더 많이 굴러다니고 그보다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저도 차 없이 버스와 전철을 타고 다니니까 건강에도 좋고 거리 구경도 더 많이 합니다."

독일도 최근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가 계속됐지만 사람들은 집에서도 내복과 스웨터로 버틴다고 손 고문은 전했다. 근검 절약을 몸으로 실천하기 위해 집에서도 내복은 물론 파카까지 둘러쓴 채 책을 본다는 손 고문은 독일의 에너지 정책도 자세히 소개했다.

"에너지 정책의 양대 근간 중 하나는 에너지 생산이고, 또 하나는 에너지 절약입니다. 에너지 생산은 국가가 대체에너지의 적극 개발로 책임지고 에너지 절약은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는 것이었습니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독일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가장 먼저 탈(脫)원전 정책을 선포하고 2022년까지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하겠다고 선언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체에너지의 조속한 개발과 함께 국민의 에너지 절약 실천이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손 고문은 "하나하나 차분히 배우겠습니다. 그리고 되도록 여유를 갖겠습니다. 여러분이 염려해주시는 대로 건강부터 챙기겠습니다. 여기는 숲이 많고 산책길이 좋아 산책을 자주 합니다. 건강에도 좋고 사색하기에도 좋고…"라고 편지를 마무리했다.

한나라당 시절이던 2007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고배를 들었던 손 고문. 4년 뒤 '마지막 승부'를 구상 중인 손 고문이 이역만리 독일에서 '여유'를 배우고 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