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경련 회장 연임 허창수 GS 회장깔끔한 매너 온화한 인품 '재계 신사' "2년간 경제계 구심점"만장일치 재추대동반성장 위한 '기업경영헌장' 채택 등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에 앞장

연합뉴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회장직은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얼굴로 '재계대통령'이라고까지 불리는 명예로운 자리다. 그러나 막중한 책임에 비해 별다른 실권이 주어지지 않는 데다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기 쉬워 재계 총수들의 기피대상 1순위이기도 하다.

허창수 GS 회장이 전경련 회장 연임에 성공했다. 사실 성공했다는 표현을 쓰기도 모호하다. 사표를 제출하고 연임 요청을 수차례 반려한 허 회장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결국 회원들의 만장일치로 재추대된 끝에 다시 회장을 맡게 된 까닭이다. 지닌 바 위상이 예전만 못한 데다 새롭게 들어선 박근혜 정부의 재계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전경련호의 키를 다시 잡은 허 회장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고사했지만 결국 연임

제33대 전경련 회장직을 역임한 허창수 회장은 제34대 회장에 재선임됐다. 전경련은 지난 2월 21일 오전 서울 소공동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제52회 전경련 정기총회'에서 회원 만장일치로 허 회장을 다시 뽑았다.

앞서 허 회장은 연임수락에 많은 고심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2월 7일 소집된 전경련 이사회에서도 "내 임기는 끝났다"며 사표를 제출, 연임을 고사했다. 그러나 전경련 회장단은 "허 회장이 지난 2년간 경제계의 구심점 역할을 잘 해왔다"며 재추대를 결의했다.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내세운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전경련 회장을 맡겠다고 나선 인사가 없는 점도 이를 뒷받침했다.

허창수(가운데) 회장이 지난달 13일 청와대에서 세계경제위기 극복 유공자 훈장을 받고 있다. 고영권기자
전경련 부회장에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을 새로 선임하고 상근부회장에는 이승철 전경련 전무를 새로 뽑았다. 고려대 출신으로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전경련 경제조사본부장(상무)을 거쳐 2007년부터 전경련 전무를 맡고 있는 이 부회장은 재계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할 수 있는 인사로 꼽힌다.

LG에서 성장해 GS 이끌어

1948년에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허창수 회장은 고 구인회 LG 창업주와 함께 사업을 시작한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구씨와 허씨 가문이 60여 년간 동업체제를 형성했던 LG에서 GS가 분할해 나올 때까지 구본무 LG 회장과 함께 그룹을 이끌었다.

경남고를 거쳐 고려대 경영학과를 마친 허 회장은 미국으로 건너가 세인트루이스대 경영학 석사과정(MBA)을 1977년 이수했다. 졸업 직후 허 회장은 LG 기획조정실로 입사, 2004년까지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특히 1979년부터 1988년까지 LG상사에 근무했던 허 회장은 홍콩, 도쿄 등 해외지사를 거치며 국제감각을 키웠다.

한국으로 돌아오면서부터는 계열사들을 돌며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았다. 1988년 LG상사 관리본부 전무, 1989년 LG화학 부사장, 1992년 LG산전(현 LS산전) 부사장을 거친 허 회장은 1995년 마침내 LG전선 회장(현 LS전선)을 맡으며 최고경영자의 길을 걷게 된다. 구본무 회장이 LG 회장으로 취임한 것과 보폭을 맞춘 셈이다. 2002년부터 LG건설(현 GS건설)의 회장을 맡고 있던 허 회장은 2004년 LG에서 분리, 공식 출범한 GS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아오고 있다.

LG에서 분할할 당시만 해도 16개 계열사, 자산 18조7,000억원에 불과했던 GS는 2011년 사업보고서 기준 73개 계열사, 51조4,000억원의 규모로 대폭 성장했다. 특히 글로벌 경영 위기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도 매출 80조원, 투자 2조7,000억원의 경영계획을 확정하며 미래를 밝게 했다.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재계의 신사'

허창수 회장은 '재계의 신사', '영국 신사'로 통할만큼 깔끔한 매너와 함께 소탈하고 온화한 인품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다. 상대방을 세심하게 배려하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는 매우 엄격한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의 성격이기도 하다. 신의를 중요시해 약속이 있을 경우 언제나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중요한 약속일 경우 정해진 시간보다 아예 5~10분 일찍 도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LG상사 재직 시절 해외지사 근무 경험 때문인지 영어와 일어 등 외국어에 능통한 편이며 국제경제 흐름에도 정통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이나 비즈니스위크 등 해외 유수의 경제전문지를 즐겨 읽으며 필요한 기사는 스크랩해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걷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고도 알려져 있다. 틈이 날 때마다 역삼동 GS타워 주변을 산책하며 경영구상을 하고 해외 출장을 갈 때에는 걷기 편한 신발부터 챙길 정도다. 운동량이 부족한 임원들에게 직접 만보기를 선물한 적도 있다. 스포츠 중 축구에 대한 관심이 많은 허 회장은 프로구단인 FC서울의 구단주를 1998년부터 맡아오고 있다. FC서울이 해외 전지훈련을 갈 때마다 직접 찾아 선수단에 힘을 실어준다고 한다.

허 회장을 잘 설명하는 또 하나의 수식어는 '은둔의 경영자'라는 별명이다. 구씨일가와 함께 LG를 이끌어가던 시절부터 허 회장은 주로 재무와 회계 등 안살림에 주력해 기업을 키웠고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뒷전에서 묵묵히 일하는 허 회장의 경영스타일은 부친인 고 허준구 명예회장을 꼭 닮았다는 평이다. LG에서 분가해 나온 GS를 대표하게 되면서 공식석상에 가끔씩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래도 여타 그룹 총수들과 비교하면 얼굴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경영자임에는 분명하다.

은둔의 경영자에서 재계 얼굴로

그룹을 이끌고 있음에도 여전히 '은둔의 경영자'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었던 허창수 회장이 바깥나들이를 시작한 것은 2009년 전경련 회장단에 합류하면서부터다. 이듬해 허 회장은 강덕수 STX 회장과 함께 전경련 부회장에 이름을 올리며 전경련의 주요 인사로 떠올랐고 2011년에는 마침내 재계의 얼굴이라는 전경련 회장으로 선임됐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허 회장이었지만 급박한 상황이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이다.

2010년 조석래 효성 회장이 건강 문제로 전경련 회장직을 그만두고 나서 후임 회장으로 가장 먼저 지목된 인사들은 4대 그룹의 총수들이었다. 특히 재계 서열 1위인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이 회장은 전경련 수뇌부의 거듭된 요청에도 지속적으로 고사의 뜻을 밝혔고 이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구본무 LG 회장은 오래 전부터 전경련과 소원한 상태였고 최태원 SK 회장은 회장직을 맡기에는 너무 젊다는 부담이 있었다.

적임자가 없던 상황에서 전경련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왔던 허 회장은 단번에 주요후보로 떠올랐다. 한때 '전혀 출마를 고려해본 적이 없다'고 말해왔던 허 회장은 재계 원로들과 회장단의 강력한 설득으로 결국 제33대 전경련 회장이 됐다.

새로운 전경련 만들까

제24~25대 전경련 회장을 역임한 김우중 전 대우 회장 이후 오랜만의 10대그룹 총수 출신 회장으로 관심을 모았던 허창수 회장이지만 그 평이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우선 전경련은 골목상권 논란으로 촉발된 재벌개혁 바람에 맞서 대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지도, 그렇다고 따끔하게 충고하지도 못했다. 동반성장위원회와 계속 엇박자를 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총선과 대선을 거치며 더욱 심화됐다.

급기야 2011년 전경련 내부에서 기업별 정치인 로비문건이 공개되며 전경련의 존립 자체가 흔들렸다. 이는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전경련의 해체를 거세게 요구하는 시발점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4대 그룹 총수들을 비롯한 회장단의 출석률은 40%대 아래로 떨어지며 더욱 기운을 뺐다. 허 회장으로서는 예전 같지 않은 전경련의 회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한 번 전경련 회장을 맡게 된 이상 허 회장이 느끼는 부담감은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박근혜 제18대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큰 화두로 제시하고 나선 터라 더욱 그렇다.

사회적 분위기를 의식해서일까. 전경련은 허 회장을 재선임하며 경제민주화와 사회통합을 위한 7가지 원칙을 담은 '기업경영헌장'을 채택했다. 기업경영헌장에는 투명경영ㆍ윤리경영 강화, 협력사ㆍ중소기업 등과 상호신뢰관계 구축, 소비자권익 증진 구축, 기업 사회적 책임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대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해온 전경련이 중소기업과의 상생 등을 명문화한 헌장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허 회장이 더 넓은 품으로 중소ㆍ대 기업을 포괄한 재계 전체를 아우를 전경련을 만들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