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개혁연구소 '사외이사 독립성 분석'51개 기업집단 사외이사 808명 분석28.7% 이해관계 깊어계열사 출신 전략적 제휴 등 직접 이해관계 16.1% 학연 12.6% 차지

정기주주총회(이하 정기주총) 시즌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 시기 재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 중 하나가 '거수기(擧手機)'이다. 회의에서 손을 들어 가부를 결정할 때, 주관 없이 남이 시키는 대로 손을 드는 사람을 낮잡아 일컫는 이 단어는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경영진에 뜻에 동조하는 '사외이사'들의 행태를 지적할 때 주로 사용된다.

올해 정기주총 때도 임원 선임, 사업목적 변경, 주식분할 및 주식병합 등 굵직한 이슈들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외이사들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은 사실상 전무하다. 이는 그동안 사외이사들이 보여온 거수기로서의 모습 때문이다.

주총안건 대부분 원안 통과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11년 5월~2012년 4월까지 46개 기업집단의 238개 상장사 이사회에 상정된 5,692개 안건 중 99.37%인 5,656개 안건이 원안대로 통과됐다. 사외이사의 반대로 부결된 안건은 0.23%(13건)에 불과했다.

이처럼 사외이사들이 독립성을 잃고 경영진의 거수기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개혁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사외이사 및 감사의 실질적 독립성 분석 - 대규모기업집단소속 상장회사를 중심으로'보고서(이하 보고서)에서 "회사ㆍ지배주주ㆍ경영진 등과 이해관계가 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연구소는 2012년 4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중 상장사를 포함하고 있는 51개 기업집단 상장사 250개사에 있는 사외이사 808명의 독립성을 분석했다. 회사ㆍ지배주주ㆍ경영진과 맺고 있는 이해관계를 분석, 사외이사의 실질적 독립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이해관계의 범주로는 ▦계열사 또는 해당 회사 출신, ▦전략적 제휴, ▦소송대리, 회계감사인 또는 법률자문회사 출신, ▦정부 또는 채권단 출신 등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와 '학연'으로 나눠 살펴봤다.

분석 결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외이사의 비중은 232명으로 전체의 28.71% 수준이었다.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사외이사는 130명으로 16.09%를, 학연관계의 사외이사는 102명을 12.62%를 차지했다.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사외이사 중에서는 계열사 출신이 68명으로 가장 많았고 소송대리가 30명, 정부 및 채권단 출신이 17명, 전략적 제휴가 9명 등이었다.

한화·두산 가장 많이 선임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사외이사를 가장 많이 선임한 기업집단은 한화와 두산으로 각각 10명, 8명의 독립성 잃은 사외이사가 재직 중이다. 현대자동차와 STX, LS가 6명씩으로 SK, 롯데, KCC, 포스코, 대한전선, 한국전력공사 등이 5명씩으로 뒤를 이었다. 전체 사외이사 대비 직접 이해관계 사외이사의 비중이 가장 높은 기업집단은 KCC였다. KCC는 전체 9명의 사외이사 중 55.56%(5명)가 이해관계 사외이사였다. 하이트진로와 S-OIL이 50.00%(4/8명, 3/6명)로 뒤따랐다.

직접 이해관계 중 계열사 및 해당 회사 임직원 출신이 가장 많은 곳은 한화와 LS로 각각 9명, 6명이었다. KCC의 경우 9명의 사외이사 중 5명을 해당 회사 임원 출신으로 선임했으며 농협은 계열사 남해화학의 사외이사 5명 중 4명을 단위농협 조합장 출신으로 선임했다.

그룹 내 계열사 혹은 지배주주 일가와 관련된 소송을 대리하거나 법률자문을 제공하는 법무법인 소속 또는 회계감사인 소속 출신 사외이사를 가장 많이 선임한 기업집단은 두산이었다. 두산과 현대차는 모두 지배주주의 불법행위와 관련된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김앤장, 태평양 소속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현행법상 해당 회사에 직접 법률자문이나 소송대리를 하는 경우 사외이사 결격사유에 해당된다. 동일 대기업 집단의 다른 계열사라고 하지만 이 또한 기업 송사의 로비용이라는 의혹을 피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지배주주 소유 대학교수 다수

민영화된 공기업 또는 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는 기업집단 중 정부나 채권금융기관 출신 사외이사를 가장 많이 선임한 곳은 한국전력공사이다. 또한 재무구조개선 약정이나 계열사 워크아웃 중인 금호아시아나, STX, 대한전선, 한진, 대림 등은 모두 1명 이상 채권금융기관 출신 사외이사를 선임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STX는 주채권은행(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의 전직 고위 임원 출신을 사외이사로 선임,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지배주주 일가가 소유한 대학에서 재직 중인 교수가 사외이사로 임명된 경우도 있었다. 인하대 교수가 한진 계열사의, 성균관대 교수가 삼성 계열사의, 포스텍 교수가 포스코 계열사의 사외이사로 재직 중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현행 상법은 최대주주가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체의 이사를 사외이사가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어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학연관계 있는 사외이사가 가장 많은 기업집단은 GS(9명), 동양(8명), 삼성(6명) 등이었다. 학연관계 사외이사 비중이 높은 한국타이어의 경우 8명 중 5명이 조양래 회장 또는 해당 회사 사내이사와 같은 고교 동문이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