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문사 사건의 희생자인 김훈 중위의 부친인 김척 예비역 육군 중장은 15년 전 발생한 아들의 총기사망 사건과 관련, "끝까지 진상규명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 ‘군 의문사’ 김훈 중위 아버지 김척 장군의 분노

국회ㆍ권익위 등 4대 국가기관 ‘타살 또는 진상규명불능’

국방부선 부정, 책임 회피만 … “끝까지 진실 밝힐 것”

“자살로 결론짓고, 순직처리 하겠다는 건 김훈 중위를 두 번 죽이는 것입니다.”

국방부가 5일 원인 불명 의문사 장병들에 대한 순직 처리 가능성을 밝힌 것에 대해 지난 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의문사한 김훈 중위(당시 25세, 육사52기)의 아버지 김척(70, 육사21기) 예비역 중장은 격앙된 모습으로 분노했다. 군의 대표적 의문사인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국방부가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국방부는 5일 “공무를 수행하던 중 사망했지만 원인이 불명확한 의문사 장병들에 대한 순직 처리가 가능토록 ‘전공사상자 처리훈령’을 개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서는 “지난해 7월 훈령 개정으로 이미 순직 처리가 됐는데 가족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족 측은 “개정된 국방부훈령에 따라 육군은 심사를 해야 하나 5개월간 심사 자체를 하지 않았다”면서 “육군에서 순직처리 심사도 하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언론에 공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황당해 했다. 국방부가 김훈 중위 사건이 ‘이미 순직 처리 됐다’는 설명은 사실과 다르다.

유족 측은 “국회, 대법원,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권익위 등 국가 4대 기관이 군에서 주장하는 ‘자살’과 달리 ‘타살(추정)’, 또는 ‘진상규명불능’이라고 했음에도 국방부가 이를 부정하는 것은 이들 국가기관을 무시하는 것이고, 자살자인데 원인 불명으로 해서 순직처리를 하겠다는 건 매우 부도덕한 행태”라고 주장했다.

고(故) 김훈 중위는 제15대 대통령(김대중) 취임식 하루 전인 1998년 2월24일 JSA 인근 241GP(감시초소)에서 의문의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국방부는 당일 현장 검시도 하기 전에 ‘자살’로 발표했고, 1~3차 수사 및 최근에 이르기까지 김 중위가 자신의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자살의 물증은 제시하지 못했고, 군생활 부적응과 이에 따른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로 귀결지었다. 하지만 김 중위의 일기, 메모 등에는 군생활에 대한 기대와 포부가 기록돼 있고, 육사 출신 지인들은 한결같이 김 중위를 ‘강한 군인’으로 증언하고 있다.

국방부 스스로 1998년 3월 1차 조사에서 “김 중위가 우울했다는 어떠한 확고한 증거가 없다”며 김 중위의 정신질환 가능성을 배제했고, 지난해 11월26일 유족에게 보낸 공문에서도 ‘정신질환 또는 정신병력은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오히려 ‘타살’의 정황이 더 많다. 김 중위 부대의 김모 하사관 및 병사들이 북한군과 접촉한 엄청난 사건을 김 중위가 인식하고 보고할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 김 중위 사망 한달 전 북한 군 장교의 JSA 귀순에 따른 북한군의 보복 경고, 사건 현장의 다툰 흔적과 시신의 여러 의문점, 무엇보다 자신의 총을 격발했다는 김훈 중위의 오른 손에 당연히 나타나야 할 뇌관화약이 검출되지 않은 점 등은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하기에 충분했다.

때문에 국회(국방위원회), 대법원,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 3개 최고 국가기관은 국방부의 자살 결론을 수용하지 않았다. 국회 국방위원회는 1999년 5월 ‘김훈 중위가 타살됐을 수 있다’는 취지의 의정활동보고서를 펴냈고, 대법원은 2006년 12월 “초동수사가 잘못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라고 판시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9년 11월 ‘진상규명 불능’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국방부가 ‘자살’ 입장을 고수하자 유족은 2011년 9월 권익위에 사건 재조사후 순직 인정을 받게 해달라는 내용의 민원을 제기했고, 이에 권익위는 국방부와 합의해 지난해 3월22일 총기 격발실험 등 쟁점 사안들에 대해 재조사를 진행한 후 김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이어 권익위는 8월6일 김 중위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 불능 결정에 따른 순직처리 권고안’을 육군본부에 보냈다.

육군본부는 권익위의 순직처리 권고안에 대해 30일 이내에 권익위에 그 사유를 서면으로 답변하거나 이의신청을 하게 돼 있지만 30일이 훨씬 지나도록 아무런 답변도, 이의신청도 하지 않았다. 대신 8월20일 국방부(조사본부)에 김훈 중위 사망과 ‘업무 관련성’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의뢰했다.

이는 육군본부가 권익위의 순직처리 권고안에 대해 자체 심사를 해온 전례를 깨고 김 중위 사건만 국방부에 의뢰한 것으로, 지난해 10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방부가 민주통합당 김광진ㆍ진성준 의원에게 제출한 ‘육군 중위 김훈 사망 건 재조사 추진경과’보고자료 및 대면보고에서 김 중위의 사인을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로 결론지으려는 의도가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이후 국방부는 지난해 11월26일 유족에게 김 중위 사건을 타살로 결론지을 수 없다고 통보를 하는 한편, 올해 2월7일 공문에서는 지난해 5월 권익위와 전공사상 분류기준표 2-1항 (공무수행중 사망)에 의거한 진상규명불능에 따른 순직처리를 하기로 한 사전 협의를 부인하였다.

유족 측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지난 2월 육군 윗선에서는 순직 처리를 기각하고 다시 국방부 훈령을 개정해서 순직 처리 심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이에 권익위가 육군본부를 방문해 순직 심사를 보류시켰지만 언제 국방부가 그런 의도를 관철시킬 지는 알 수 없다.

국방부가 지난 5일 원인이 불명확한 의문사 장병들에 대한 순직 처리가 가능토록 ‘전공사상자 처리훈령’을 개정할 방침을 밝힌 것은 앞서의 의도를 드러내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척 장군은 “국방부가 4대 국가기관의 조사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파렴치한 행동으로 군의 명예를 훼손하고 국민의 신뢰도 잃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제2, 제3의 김훈 중위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진실’을 위해 싸워나갈 것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김 장군은 “군 통수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대통합’을 강조했는데 군과 민의 신뢰에 바탕한 통합은 매우 중요한 현안으로 그간 국방부가 보인 행태는 국민대통합에 역행하는 것으로 군은 이제부터라도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김훈 중위 父 김척 예비역 중장

“‘자살 순직’은 명예회복 아닌 두 번 죽이는 일”

고(故) 김훈 중위의 부친 김척 예비역 중장은 육사21기로 1965년에 임관한 뒤 97년 말 1군단장을 끝으로 전역하기까지 군생활 대부분을 야전군으로 지낸 전형적인 무골이다. 아들이 육사 52기로 아버지의 뒤를 이었으나 갑작스런 죽음을 맞으면서 김 장군은 15년째 '진실'을 밝히는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다.

- 국방부가 원인 불명 자살 사건에 대해서도 공무하고 연관되면 순직 처리하기로 훈령을 개정한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입장은

“국방부의 의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제 김훈 중위 사건이 해결되는 것 아니냐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지난 14년 동안 국회, 대법원,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군의 수사를 재조사한 결과, 군에서 주장하는 자살 주장은 근거가 없고 타살의 증거가 있지만 범인을 지목할 수 없기 때문에 진상 규명 불능이라고 했다. 그래서 지난해 8월 6일 국민권익위원회에서는 진상 규명 불능으로 순직처리를 해 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국방부는 4대 국가 위원회 조사 결론을 인정할 수 없다, 자살이다, 자살로 순직처리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4대 국가 기관의 조사 결론을 부정하고 무시하는 것으로 김훈 중위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두 번 죽이는 것과 다름없다. 국방부가 자신들의 수사 잘못한 것을 순직한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고 무슨 큰 특혜나 베풀어주는 것처럼 언론에 발표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것이다."

- 국방부가 왜 그런 발표를 했다고 보는지

“언론과 시민단체, 국회 등에서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한 군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지적하고, 지난달 24일 ‘김훈 중위 총기사망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된 것을 계기로 국방부가 갑자기 훈령 개정을 들고 나왔는데 이는 ‘자살’이라는 자신들의 수사 잘못을 덮고 책임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국방부는 지난해 5월 훈령 개정을 논의하면서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불능’에 의한 순직처리를 하기로 사전 협의를 하였는데 얼마전부터 이를 부인하고 있다.”

- 국방부(군)의 수사, 재조사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대법원에서도 밝혔지만 최초에 자살로 예단을 했다는 것이다. 현지 부대에서 수사관이 오기도 전에 자살로 보고했고, 국방부는 연합뉴스 기자를 포함해 10명의 기자들을 모아 놓고 자살로 브리핑했다. 위에서 자살이라고 그러는데 수사관이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겠나. 사건 현장 훼손부터, 부실한 수사, 유력한 증거 인멸까지… 그리고는 '자살'로 결론냈다. 국방부의 세차례에 걸친 수사, 재조사에서도 같은 결과를 낸 것은 군 명예가 걸려 있고 책임추궁을 면하려는 측면도 작용했다고 본다.”

- 김훈 중위 사건을 비롯해 군 의문사 사건 수사, 재조사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군의‘시스템’이다. 초동수사 잘못으로 민원을 제기하면 자살로 결론을 내린 국방부 조사본부로 다시 가는데 거기서는 무조건 자살로 결론이 난다. 군 의문사 사건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다룰 수 있는 민,군,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제3의 독립기관 설립이 필요하다."

- 15년 동안 진상규명을 해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일부에선 군 출신이 군의 진상조사 결과를 믿지 않고 떼를 쓴다고 하거나 몇몇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말리기도 했지만 아버지를 이어 군인의 길을 가고자 했던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그대로 묻어둘 수 없었다. 이것은 내 개인의 문제 뿐만 아니고 국방의 의무를 지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의 문제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군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대한민국 군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군이 군 출신인 나에게 이렇게 잔인하게 대할 정도면 다른 일반인 유족들에겐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진상규명을 해오면서 가장 힘들고 화가 난 것은 군의 책임회피적인 태도다. 4대 국가기관이, 국내외 전문가들이 군의 자살 주장에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도 군은 끝까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욱이 극히 예외적인 경우나 사실과 다른 자료를 활용해 억지 주장을 펴면서 책임을 피해가려고 할 때는 “이것이 내가 평생을 바친 군인가”하는 회의감과 분노가 일었다.”

- ‘김훈 중위 총기사망사건’의 공소시효가 지난달 2월24일자로 만료돼 설령 살인범이 잡힌다 해도 처벌이 불가능하게 됐는데

“공소시효 만료와 상관없이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다른 군 의문사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이 사건의 진상규명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 진상규명을 위한 앞으로의 계획과 군에 제언할 것이 있다면

“김훈 중위 사건을 포함해 군 의문사 조사와 관련된 시스템 개선을 군에 촉구하면서 이를 위한 개선 방안을 국회와 국민권익위원회에 꾸준히 제기해 나갈 것이다. 누구나 국방의 의무를 지고 군대에 가야 하는 시스템에서 억울한 죽음이 발생해도 해결되지 못한다면 누가 마음 놓고 자기 자식들을 군에 보내려 하겠나. 김훈 중위 사건이 어떻게 귀결되느냐 하는 것은 다른 군 의문사 사건에, 그리고 매년 군 사망자가 100명이 넘는 우리 현실에서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군이 ‘국민의 군대’로 인정받고,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국민대통합’에 부합하려면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한 4대 국가기관의 결론을 존중해 처리하고, 다른 군 의문사 사건에 대해서도 군보다 국민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