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FTA 1주년… 끝나지 않은 문제는박근혜 정부 여론 약속이행 요구 부담미국 쇠고기 수입 확대 등 논란의 소지 여전2011년보다 수출액 늘어 지표상으론 우리나라 유리관세 사라진 차부품업계 호황 소비자 체감온도 차 못느껴

한미FTA가 15일로 발효 1주년을 맞았다. 대미수출액 증가 등 통계상으로는 성공적인 1년이었지만 ISD 재협상,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확대 등 논란의 소지는 여전하다. 사진은 2011년 11월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미FTA 국회비준을 바라는 지식인 300인 선언’ 기자회견에서 ISD에 대해 설명하는 이헌 변호사. 연합뉴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15일로 발효 1주년을 맞았다. 2006년 2월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에서 한미FTA 협상 개시를 선언한 때로부터 따지면 벌써 7년이 훌쩍 넘었다.

한미FTA의 효력을 체험하기에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수출ㆍ입 기업과 농업종사자,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각각 다르다. 일부 수출기업이 한미FTA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반면 농민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에 반해 소비자들은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이는 단순히 수치상으로 드러나는 효과와 상당한 온도 차가 있어 더욱 주목된다.

지표상으로는 우리나라에 유리

단순 지표상으로만 보면 한미FTA는 미국보다는 우리나라 경제에 더욱 도움이 됐다. 지난해 3월 15일 0시를 기해 우리나라 7,218개 품목(85.6%), 미국 6,175개 품목(87.6%)의 관세가 사라지며 양국 간 수출입의 문이 넓게 개방된 것이 다른 수준의 영향을 미친 까닭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우리나라의 대미수출액과 수입액은 각각 538억달러(약 58조6,000억원), 391억달러(약 45조6,000억원)를 기록했다. 2011년 3월~2012년 1월과 비교하면 수출은 2.67% 늘었지만 수입은 7.35% 줄어들었다. 무역수지 흑자 규모도 같은 기간 102억달러에서 147억달러로 44% 급증했다.

또한 대미무역 통계를 집계하고 있는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이후 약 9개월 동안 전체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2.7% 감소한 데 반해 대미 수출은 1.2% 증가했다.

자동차부품ㆍ석유제품ㆍ고무제품 등 한미FTA 혜택품목군의 수출이 8.1% 증가한 반면 무선통신기기ㆍ반도체 등 비혜택품목군의 수출은 2.8% 감소했다. 수입 시장에서는 한미FTA 혜택 품목의 수입은 2.2% 증가했지만 비혜택품목은 16.7%나 감소해 전체 대미 수입이 8.1% 감소했다.

자동차 업계↑ 국산 과일 농가↓

한미FTA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은 곳은 국내 자동차업계로 나타났다. 특히 단계적으로 관세가 철폐되는 완성차와 달리 발효 즉시 모든 관세가 없어진 자동차부품업계는 큰 호황을 맞았다. 지난해 3월부터 지난 1월까지 대미 자동차부품 수출액은 52억3,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2.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완성차업계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도 102억2,000만 달러를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1%나 늘어났다. 다만 자동차 수입액이 7억2,000만 달러로 92.2% 급증해 아쉬움을 더했다. 이는 미국에 공장을 둔 도요타, 폴크스바겐, 혼다 등 일본과 독일 자동차업체들이 관세혜택을 등에 업고 우리나라에 상륙한 데 따른 현상이었다.

그밖에 휘발유·경유 등의 석유제품(18.4%), 고무제품(8.3%), 기계류(8.1%), 농림수산식품(7.6%), 섬유류(5.6%) 등도 비교적 탄탄한 대미 수출 증가세를 나타냈다. 한미FTA 효과를 기대했던 항공, 해운업계 등은 경기침체의 여파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우려가 컸던 농축산물 분야는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미FTA로 인해 매출액에서 실제로 큰 변화가 있던 부문은 과일과 과일주스, 와인 등 일부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까지 미국산 오렌지 수입액은 1억4,800만 달러로 전년 동기에 비해 33.4% 늘어났다. 미국산 체리 또한 같은 기간 8,000만 달러의 수입액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78%나 급증했다.

체리, 오렌지 등 일부 미국산 과일의 가격이 내린 것을 제외하면 소비자들이 한미FTA를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미국산 오렌지와 체리 구매를 늘리면서 감귤, 한라봉 등 국산 과일 소비를 줄인 까닭에 국내 과일 농가는 어려움을 겪었다.

끝나지 않은 한미FTA 문제

한미FTA 발효 1주년을 향해 가지만 여전히 양국간 민감한 문제들이 남아있다. 대표적인 것이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재협상 논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1년 직접 재협상을 약속했던 ISD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다. 2011년 11월 국회를 방문한 이 전 대통령은 한미 FTA 발효 후 3개월 안에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고 재협상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이 ISD를 독소조항으로 규정하고 폐기해야 한다며 한미FTA의 국회 비준을 반대한 데 따른 미봉책이었던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의 약속으로 국회는 같은 달 한미FTA 비준안을 통과시켰고 12월 재협상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ISD 재협상 불가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미FTA ISD 조항이 국내 공공정책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와 관련한 최종 결정을 내릴 경우 이 전 대통령의 재협상 약속 이행을 요구하는 여론이 다시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진행 중인 론스타 소송 등으로 달궈진 여론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이 쇠고기 수입확대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큰 점도 부담이다. 웬디 커틀러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보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가 조만간 우리나라를 상대로 쇠고기 시장개방 확대를 요구하는 협의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미국이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을 요청할 경우 박근혜 정부는 큰 부담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같은 문제로 대국민 저항에 직면한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절대 불가론을 펼 계획이지만 미국이 지속적으로 압박할 경우 이후 상황은 쉽게 예단하기 어렵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