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회장 구속 40일, 판결 놓고 여전히 뒷말 무성재계·법조계 일각… "최 회장 경영방식·재정상태 감안 횡령 주도는 비상식적 판결""경제민주화의 희생양" 의견도…SK측 "재판서 다뤄야 할 사항"… 신중한 태도 일관

최태원 SK 회장 법정구속 이후 40일이 지났지만 재계·법조계에서는 여전히 해당 판결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일각에서는 "상식적이지 않은 판결"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리기까지 한다. /배우한기자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1월31일 법정 구속 판결을 맞은 최태원 회장이 영어(囹圄)의 몸이 된 지도 40일이 넘었다. SK 측은 "최태원 회장이 법정 구속의 충격 이후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지만 여전히 인고의 시간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것은 이미 판결이 끝난 최 회장 선고결과를 놓고 재계와 법조계 안팎에서 여전히 뒷말이 무성하다는 점이다. 이 같은 분위기에 대해 SK그룹은 일체 말을 아끼고 있다. SK 측은 "재판을 통해서 다뤄야 할 사항이지 언론이나 여론이 재판이 부당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답변만 하고 있다.

검찰 수사까지 뒤집은 판결

최 회장 판결에 대해 재계와 법조계 일각에서는 "상식적이지 않은 판결"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우선 재판부가 사건 전말을 새롭게 재구성한 뒤 최 회장에게 모든 책임을 지웠는데 최 회장의 경영 스타일과 재정 상태 등을 감안하면 이런 접근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법원은 최 회장이 펀드 출자 및 횡령 과정 전반을 주도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최재원 부회장이 관여해 펀드 출자 및 자금 유출이 진행됐다는 검찰의 수사 내용과 배치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법원이 검찰의 수사 내용을 뒤집어 판단한 것도 이상하지만 최 회장이 동생인 최 부회장에게 사건의 책임을 미뤘다고 간주한 것이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검찰은 최 회장과 최 부회장에게 각각 징역 4년과 5년을 구형했다. 법원의 결정대로라면 개인의 인생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최 회장은 본인 구명을 위해 동생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동생은 그런 부담을 수용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또한 법정에서 오간 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상황에서 사전 각본에 따라 움직인다고 세간의 눈을 속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실제 재판에서는 책임 전가와 배치되는 애틋한 모습들이 펼쳐져 이 같은 의구심을 가중시켰다.

최 회장은 지난해 11월23일 최종변론 공판에서 "동생의 마음을 더욱 잘 헤아리지 못한 불찰이 컸다"며 도의적 책임을 강조했다.

최 회장은 이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동생이 누를 끼칠지 알았다면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제 동생은 항상 신뢰를 줬으며 그 점은 제가 제 동생을 믿고 있다"고 최 부회장을 두둔했다.

최 부회장에게 선물투자금을 빌려줄 수밖에 없었던 사유에 대해 최 회장은 "유산 상속과정에서 지분을 포기하며 그룹의 위기를 함께 극복한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며 개인사를 언급하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최 회장이 책임 전가? 글쎄…

또한 재계 인사들은 평소 정면돌파를 강조하던 최 회장의 마지막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최 회장은 법정 구속되면서 "재판장님이 많은 검토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저로서는 제가 무엇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며 "사건 자체를 2010년에야 알았고 이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억울함을 피력했다.

이를 두고 한 10대 그룹 임원은 "최 회장은 평소에도 없는 말을 하지 않고 선이 굵은 경영 스타일로 유명하다"며 "유죄선고 이후에 나온 최 회장의 발언에는 본인의 진짜 심경이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유ㆍ불리함을 고려하지 않고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특유의 경영스타일로 재판 내내 임했다. 본인이 책임질 것은 책임지겠다는 자세였다.

실제로 성과급을 과다 지급해 부외자금을 조성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 최 회장은 "방법론적으로 틀렸고 부적절했다"며 "정상적이고 투명한 방법으로 비용이 만들어지고 운영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최 회장의 재산을 관리하던 재무담당자가 자신의 개인 비용 8,000여만원을 부외자금과 섞어서 집행한 것이 드러나자 "공적자금과 개인자금이 섞여 나가면서 오해를 불러일으킨 점은 반성한다"고 담담히 실토했다.

재계 관계자는 "문제회피보다 정면돌파를 선택해 왔던 최 회장 돌직구 스타일을 감안할 때 본인이 연루됐다면 예전처럼 책임을 인정하고도 남을 사람인데 남에게 책임을 돌렸다는 법원 판단은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자금동원능력 충분

일각에서는 단기간 사용할 선물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삿돈에 손을 댔다는 법원의 판단도 최 회장의 재력을 감안하면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2008년 당시 비상장이긴 했지만 상장 가능성이 높았던 SK C&C의 지분 44.5%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시가로는 1조원대로 담보가치는 충분했다. 이를 감안하면 "선물투자금을 만들기 위해 회삿돈 465억원을 횡령했다"는 검찰과 법원 판단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자금 조성 및 횡령 과정도 상식적이지 않았다. 회삿돈을 횡령하려 했다면 은밀하게 소수의 사람들만 관여하는 구도를 형성해야 하는데 재판과정에서 밝혀진 방식은 다수의 개인이 개입하면서 사실상 반공개적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이에 법조계 관계자는 "최 회장 정도의 재력을 가진 회장이 이 정도 액수를 마련하기 위해 들킬 가능성이 높고 제3자의 이목을 끄는 방식으로 회삿돈을 횡령하려 했다는 것은 이상하다"라고 평가했다.

경제민주화 칼날?

재계는 이처럼 비상식적인 정황들이 많은데도 인신구속까지 강행, 최태원 회장을 마치 죄인처럼 취급한 법원 판단에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항소심 과정에서 다퉈야 할 쟁점들이 산적해 있는데도 구속으로 인해 방어권 마저 보장받지 못하게 된 것은 과하다는 지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사법부가 대기업 범죄는 무조건 엄벌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요구를 수용한 신종 여론재판"이라며 "죄의 경중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가진 자는 무조건 엄벌해야 한다는 사법부의 강박관념이 만들어낸 비극"이라고 꼬집었다.

1심 판결로 SK그룹을 비롯한 국가 경제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최 회장은 올해 SK그룹의 경영체제를 개편하면서 글로벌 경제 영역 확장을 위해 모든 것을 걸겠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최 회장의 손발이 묶여 버리게 돼 국가 경제에도 손실이 불가피하게 됐다는 게 재계의 안타까운 시선이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