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사정·경찰 조직 장악하고… 지하경제 양성화·국정원 쇄신 '특명'

▲채동욱 검찰총장 내정자
새 정부의 초대 4대 권력기관장 인선이 마무리됐다. 불법ㆍ편법 의혹이 제기됐던 일부 장관 후보자들과 달리 4대 권력기관장 내정자들은 큰 탈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인사청문회 통과는 대체로 무난할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일 남재준(69) 전 육군참모총장을 국가정보원장으로 내정한 데 이어 15일에는 검찰총장, 경찰총장, 국세청장에 채동욱(54)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이성한(56) 부산지방경찰청장, 김덕중(54) 중부지방국세청장을 각각 지명했다.

4대 권력기관장은 실질적인 '파워' 면에서 대통령 다음가는 막강한 권력을 갖는 자리다. 때문에 내각 구성 때보다 국민적 관심이 더 컸다. 특히 MB 정부 때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호남 출신 인사들은 내심 기대를 많이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영호남 출신들은 배제한 채 중부권 인사들로 4대 권력기관장을 채웠다. 출신 지역별로는 서울이 3명(남재준 채동욱 이성한), 대전이 1명(김덕중)이다.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채동욱 검찰총장 내정자는 서울 출생이지만 선산(先山)이 전북 군산에 있어 그 지역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채 내정자 인선은 출신 지역을 고려한 것"이라고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이성한 경찰청장 내정자
윤 대변인은 검찰총장을 비롯해 정부 외청(外廳)장 인선 결과에 대해"이번 인선의 기준과 특징은 전문성 중시에 있다. 주무 부(部)에서 청장으로 내려왔던 것을 최소화하고 내부 차장을 승진ㆍ발령하거나 외부에서 관련 전문가들을 영입했다"며 전문성을 강조했다.

청와대의 적극적인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인사에 대해 다소 아쉽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때 탕평 인사와 함께 정치적 중립성 유지를 이유로 경찰청장의 임기 보장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채동욱 내정자는 윤 대변인의 설명처럼 선산은 군산에 있더라도 사실상 서울 출신이다. 지난해 5월 임명된 김기용 경찰청장의 임기(2년)는 내년 5월까지이지만 결국 1년도 안 돼 낙마하고 말았다.

이와 관련해 관가(官家) 관계자는 "대선 직전 터졌던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에 대해 여야 합의로 국정조사가 예정된 마당에 김 청장이 더 이상 자리를 보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인사를 보면 박 대통령의 의중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검찰총장은 대기업 사정, 경찰총장은 조직 장악, 국세청장은 지하경제 양성화, 국정원장은 내부 인적 쇄신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보인다"고 귀띔했다.

▲김덕중 국세청장 내정자

채동욱, 재계의 저승사자
부드러운 카리스마 특수통… 기업비리 수사 주력할 듯

대검 관계자는 채동욱 검찰총장 내정자 인선에 대해 "검찰 내부적으로는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라며 "검찰은 수사기관인데 수사 전문가가 수장으로 왔으니 검찰이 제 역할을 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황교안 신임 법무부 장관과의 호흡도 채 내정자 발탁 배경 중 하나일 것으로 분석한다.

채 내정자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정평이 나 있다. 검찰 내부적으로 호평이 주를 이루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채 내정자는 지명된 직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검찰의 위기 상황에서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돼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수통'으로 꼽히는 채 내정자의 '검(劍)'에 과거 정계와 재계의 거물들이 줄줄이 나가 떨어졌다.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대기업 개혁과 발맞춰 채 내정자의 검이 날카롭게 돌아갈 것으로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채 내정자는 2003년 서울지검 특수2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 사건을 수사하며 당시 정대철 민주당 대표를 구속했다. 채 내정자는 대검 수사기획관이던 2006년에는 현대자동차 비자금 수사를 벌이며 정몽구 회장을 구속했다.

▲남재준 국정원장 내정자
또 채 내정자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 고발 사건과 관련해서는 허태학씨 등을 기소했고, 2010년에는 '스폰서 검사' 관련 진상규명위원회 위원 및 진상조사단장을 맡았다.

'재계의 저승사자'로 통하는 채 내정자의 발탁에 재계는 내심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채 내정자가 공식적으로 취임하고 나면 '전공'을 살려 기업 비리 수사에 주력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는 박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주창했던 경제민주화와도 맥을 같이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엄정한 기업 수사가 이뤄진다면 검찰이 잃어버렸던 국민적 신뢰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에서만 대기업과 관련된 굵직한 수사만 6, 7건 정도 진행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금융조세조사2부에서는 서미갤러리 탈세 의혹, 각종 주가 조작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금융조세조사3부에서는 현대그룹 실세로 거론되는 황두연 ISMG코리아 대표의 비자금 조성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또 특수1부는 삼환기업 오너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형사6부는 신세계그룹의 계열사 부장 지원 의혹을 수사 중이다. 이와 관련,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장남인 정용진 부회장이 지난달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 현대자동차 비자금,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사건 등 굵직한 수사 경험이 있는 채 내정자가 취임 후 기업 수사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낼 것"이라며 "중수부 폐지 결정으로 수사 구조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검찰은 제대로 된 수사를 통해 구겼던 체면을 다시 세우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한, 새 정권의 열쇠
외사·내사·정보 두루 거쳐… 갈라진 조직 추스를 적임자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청와대와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기용 경찰청장이 오래 가기는 힘들 것"이라는 말이 파다했다. 김 전 청장이 MB 정권 때 임명된 데다 지난해 대선 직전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이 터졌을 때 다소 모호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대통령의 신임을 잃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새 정부 첫 경찰청장 후보로는 김용판 서울경찰청장, 강경량 경기경찰청장, 서천호 경찰대학장, 이성한 부산경찰청장 등 4명과 같은 치안총감급인 이강덕 해양경찰청장 등 총 5명으로 압축되는 분위기였다. 이 가운데 김용판 청장은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야당의 집중공세를 받으면서 상대적으로 입지가 좁아졌다.

강경량 청장(호남), 서천호 학장, 이강덕 청장(이상 영남)은 경찰대 1기생들인데 반해 이성한 청장은 간부후보(31기) 출신이다. 강 청장 등은 출신지역이 강점이 될 수도 있지만 되레 약점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반면 서울 태생인 이성한 청장은 출신지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또 이 청장이 다른 후보들에 비해 나이가 많다는 점도 안정감과 경륜 측면에서 후한 점수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고시 합격자 출신들과 경찰대 출신들이 대거 요직에 오르면서 경찰 내부적으로 위화감도 적지 않았다. 조직을 추스르는 데 간부후보생 출신이 상대적으로 낫지 않겠냐는 말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내정자는 외사(外事)뿐 아니라 수사, 정보 등 다른 분야도 두루 거쳤다. 그러나 2005년 경찰청 외사관리실 근무, 2006~2009년 주미대사관 참사관 역임 등 아무래도 외사 업무에 밝다. 외사통이라는 수식어도 괜한 게 아니다.

합리적이고 꼼꼼한 스타일의 이 내정자는 경찰대와 비(非)경찰대 출신으로 갈린 경찰 내부 조직을 추스를 적임자로 꼽힌다. 또 이 내정자는 전임 청장들이 직접 관리했던 인맥들까지도 흡수ㆍ관장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내부적으로는 조직 안정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이 내정자가 정권 차원에서 보면 성패의 '열쇠'라는 주장도 있다. 경찰의 수장인 이 내정자가 청와대의 '행간(行間)'을 잘 읽고 움직여줘야 정권도 순항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정치권 관계자는 "박근혜 정권은 MB 정권의 '미국산 소고기 촛불집회' 때 부적절했던 대응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며 "MB 정권처럼 집권 초기부터 흔들리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내치가 중요하고 그 근간은 경찰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덕중, 국세수입 확보 특명
고액 체납자 징수 활약… 세수 확보 복지 재원 마련

"경제 여건이 어려운 시기에 국세청장 후보자로 내정된 데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새 정부 국정과제인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국세수입을 확보하는 데 힘쓰겠습니다."

김덕중 국세청장 내정자는 지난 15일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조심스럽지만 소신있게 답변했다. 김 내정자의 발언은 앞으로 국세청이 지하경제 양성화에 전력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김 내정자는 지난해 징세법무국장 시절부터 고액 체납자의 숨긴 재산 추적을 위해 금융정보분석원(FIU) 정보의 접근 확대 필요성을 꾸준히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면서도 김 내정자는 지하경제 양성화 과정에서 중소기업, 서민 등에게 미칠 수 있는 부작용은 경계했다. 적어도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愚)는 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박 대통령의 핵심 추진 과제다. 박 대통령은 매년 27조원씩 임기 5년 동안 총 135조원의 국민행복 재원을 마련해 복지정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현실성이 결여된다는 지적에 대해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금 누수, 경비 절감, 간접 증세 등으로 복지 확충을 달성하겠다고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지하경제 양성화는 박 대통령 복지 정책의 성패를 결정지을 핵심 요소로 꼽힌다.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은 국내 지하경제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약 20%인 180조원 이상으로 추정했다. 한국조세연구원이 발표한 '지하경제 규모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지하경제 규모는 2011년 250조원(GDP의 17.1%)에 이른 것으로 추산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 같은 국내 지하경제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8개국(아이슬란드, 룩셈부르크 제외) 가운데 터키(33.2%), 멕시코(31.7%) 등과 함께 최상위권에 속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당초 조현관 서울청장이 국세청장으로 발탁될 것으로 전망됐으나 예상을 깨고 김 내정자가 수장에 오르게 됐다"며 "박 대통령이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동력으로 김 내정자를 발탁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남재준, 조직 재건 과제
대선때 국방·안보 특보… 무너진 대북정보라인 재건

남재준 국정원장 내정자는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군 출신이다. 군 출신이 국정원장에 발탁된 것은 국민의 정부 시절 임동원 전 원장 이후 12년 만이다.

인사 전 국정원장 하마평에 올랐던 인사로는 남 내정자를 비롯해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권영세 전 새누리당 의원, 김회선 새누리당 의원, 차문희 국정원 2차장, 민병환 전 국정원 2차장 등이 있었다.

남 내정자 발탁과 관련, 육사 25기 동기이자 박 대통령 자문그룹인 7인회 멤버 강창희 국회의장의 역할론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남 내정자가 오랜 기간 박 대통령 캠프에서 안보 관련 조언을 해온 군 출신 인사그룹의 맏형이란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박 대통령이 2007년 대선 경선을 앞두고 자신의 캠프 사무실에서 국방안보 특보단과 자문단을 발표했을 때 예비역 장성들의 단장 격으로 자리한 사람이 바로 남 내정자다. 당시 남 내정자는 박근혜 캠프의 국방, 외교, 안보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지난해 대선 때는 국방ㆍ안보 특보를 맡았다.

아울러 박 대통령이 막판에 남재준 국정원장 카드를 꺼낸 데는 외교안보 라인의 역학관계도 고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즉, 인수위 간사를 거쳐 박근혜정부의 권력 중심에 선 김장수 외교안보실장의 독주체제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김 실장으로선 육사 2년 선배인 데다 박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온 남 내정자를 무시할 수 없다. 청와대와 국정원이란 두 권력기관의 책임자가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유지하도록 투톱 시스템이 갖춰진 셈이다.

새 정부는 국내와 해외로 이원화된 국정원 현 체제에서 국내 부문을 축소하는 대신 대북 정보 수집ㆍ분석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원세훈 원장이 취임한 뒤로 국정원의 대북 정보가 무뎌진 것으로 파악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남 내정자는 조직뿐 아니라 인적 쇄신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박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약화된 대북 휴민트(HUMINTㆍ인적 정보)가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 붕괴 직전에 이른 것으로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대북 문제에서만은 확실한 강경파이자 보수파로 통하는 육군참모총장 출신의 남 내정자가 국정원장에 발탁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분석된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 등이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도 남 내정자 발탁의 배경으로 꼽힌다.

정치권 관계자는 "차분한 성격의 원칙주의자라는 점에서도 남 내정자는 박 대통령과 코드가 맞을 것"이라며 "업무 추진력이 뛰어난 남 내정자가 국정원을 무난하게 이끌지 않겠냐"고 말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