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 - 참이슬이 절반 점유■ 수도권 - 처음처럼, 절대강자 참이슬 맹추격■ 부산 - C1 아성 무너지고 좋은데이 역전■ 충북 - 참이슬 vs 처음처럼·시원 연합군

벌써 5년 전 일이다. 바닷바람도 쐴 겸 부산에 내려갔던 기자는 그곳 출신의 대학 동기와 만나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하게 됐다. 소주를 시키면서 "(소주는)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라는 질문을 기다리던 기자는 아무런 말도 없이 'C1소주'를 내놓은 주인아주머니의 손길에 왠지 머쓱해졌다. 친구에게 "여기는 왜 소주 종류를 물어보지도 않고 막 갔다 주냐?"고 물어봤지만 "소주는 당연히 시원(C1소주)이지!"라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소주시장은 맥주, 막걸리, 위스키 등 다른 어떤 주류와도 차별화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바로 지역별 할당제로 인해 자도주(自道酒, 각 지역을 대표하는 술)의 개념이 있는 유일한 주종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소주시장의 과당경쟁과 품질저하를 막는다는 명목 아래 1973년 '1도(道)1사(社)' 원칙을 만들었다. 이어 1976년에는 지방산업 보호를 이유로 주류 도매상들이 소주 구입액의 50% 이상을 자기 지역 소주회사에서 구매하도록 하는 '자도주 의무구입제도'를 마련했다. 이 제도는 1981년부터 서울, 경기, 광주, 전남, 대구, 경북 등에서만 시행되는 등 점차 축소되다 1992년 완전히 폐지됐다.

이후 수도권과 지방 소주업체 간의 갈등으로 1995년 다시 부활한 '자도주 의무구입제도'는 199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다시 사라졌다. 제조면허 또한 1993년 전면 개방됐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들과 지방 소주업체들의 장악력은 지역주민들의 호응과 맞물리며 결국 소주의 자도주화를 이끌었다.

1강 2중 7약의 소주시장

국내 소주시장은 1강 2중 7약 체제로 요약된다. 하이트진로가 전체 시장의 절반 가까운 48.3%의 점유율을 보이며 독주체제를 견고히 하고 있는 한편 롯데주류와 무학이 각각 14.8%, 13.3%의 점유율로 엎치락뒤치락하며 뒤따르고 있다. 금복주, 보해양조, 대선주조, 선양, 충북소주, 한라산 소주, 보배 등은 4분의 1이 채 안 되는 점유율을 사이좋게 나눠가지고 있다.

한국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지역별 점유율은 2008년 9월 이후 더 이상 집계하고 있지 않다. 지역별로 0.1%의 점유율 차이에 민감한 소주업체 간의 미묘한 분위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작성된 통계자료 및 관련 업체들이 따로 취합하고 있는 자료를 종합해보면 대략의 지역별 점유율은 짐작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도주 업체들의 영향력은 여전히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역색이 강한 대구ㆍ경북, 광주ㆍ전남, 제주도 등에서는 자도주 업체가 여전히 80%가 넘는 지배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지역색이 약하거나 대선주조(부산, BN그룹 재인수), 충북소주(충북, 롯데주류 인수) 등 자도주 업체가 대기업에 인수된 곳에서는 여지없이 치열한 소주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 수도권ㆍ부산ㆍ충북지역 등이 대표적인 격전지로 꼽힌다.

참이슬-처음처럼 양분한 수도권

전국 소주시장에서 수도권이 지니는 의미는 적지 않다. 인구밀집도가 높은 만큼 소주 소비량 또한 전체 시장의 35%를 차지하는데다 해당 지역을 차지하는 곳이 이른바 '전국구' 업체라는 이름까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처럼’ 모델 현아
수도권지역의 자도주 업체로는 소주업계 1위인 하이트진로가 꼽힌다. 하이트진로는 국내 대표 소주 브랜드인 '참이슬'로 수도권 및 전국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참이슬은 지난해 9월 한 달 동안 489만1,000상자가 출고되며 전국 소주시장 점유율 50.5%를 탈환한 바 있다. 수도권에서는 60%가 넘는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이트진로의 전신은 1924년 평안남도 용강군에 설립된 '진천(眞泉)양조상회'다. 진로라는 이름도 생산지인 진지(眞池)의 '진(眞)'자와 소주를 증류할 때 술방울이 이슬처럼 맺힌다는 뜻의 '로(露)'자를 결합해 만들었다. 1965년부터 싼값으로 공급할 수 있는 희석방식으로 소주를 만들며 서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하이트진로는 색다른 판촉기법으로 선두업체였던 삼학을 제쳤고 1998년 '참이슬'을 내놓으며 1위 자리를 굳혔다.

수도권지역에서 하이트진로와 '참이슬'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는 곳은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이 유일하다. 무학, 보해양조 등 지방 소주들이 수도권 진출을 선언한 지는 꽤 됐지만 점유율 면에서는 미미한 수준이다. 2006년 두산주류BG가 선보였던 '처음처럼'은 알칼리 환원수를 사용해 부드러운 맛을 내면서도 숙취를 줄여준다는 점을 강조하며 주당들의 사랑을 받았다. '산소주' 시절 5%에 불과한 점유율로 소주업계 6위에 올라있었던 두산주류BG는 '처음처럼'의 성공 이후 1년 만에 시장 점유율을 2배로 끌어올리며 하이트진로의 유력한 도전자로 부상할 수 있었다.

2009년 두산주류BG가 국내 최대 유통망을 갖춘 롯데그룹에 편입되면서 '처음처럼'은 날개를 달았다. '처음처럼'은 소주시장 침체 속에서도 2009년과 2010년 연속 10% 이상의 판매 증가를 기록했고 출시 7년 만에 국내 누적 판매량 28억병을 넘어섰다. 올해 1~2월 누적 기준으로 전국 점유율 18%를 차지하는 등 '처음처럼'의 판매 호조는 계속되고 있다. '처음처럼'의 약진으로 롯데주류는 적어도 수도권지역에서만큼은 하이트진로와 엇비슷한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수도권지역의 경쟁자인 하이트진로-롯데주류는 판매전 이외에도 치열한 법정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3월 한 인터넷 방송사에서 알칼리 환원수에 대한 부정적인 방송을 내보냈고 이를 이용해 하이트진로가 '처음처럼'의 비방 행위에 나섰던 것이 발단이 됐다. 큰 타격을 입은 롯데주류는 지난해 5월 하이트진로를 고소했고 지난 1월 서울중앙지검에서는 하이트진로 임원 4명을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롯데주류는 지난 5일 또다시 하이트진로에 100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며 법정전쟁을 강화하고 있는 상태다.

‘참이슬’ 모델 이민정
부산의 패자 대선주조 누른 무학

수도권지역만큼이나 치열한 소주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부산이다. 터줏대감인 대선주조가 경영권 분쟁으로 휘청하는 틈을 타서 경남의 강자 무학이 치고 들어온 것이다.

대선주조의 'C1소주'는 한때 부산에서 99%의 점유율을 기록할 정도로 막강한 시장지배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푸르밀, 코너스톤에쿼티파트너스(사모펀드) 등으로 주인이 계속 바뀌면서 점유율이 대폭 떨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푸르밀 측과 코너스톤에쿼티파트너스가 경영권을 놓고 법적분쟁까지 벌어지면서 누구보다도 충성도가 높았던 부산 시민들마저 등을 돌렸다.

경영권 분쟁과 실적 악화에 시달리던 대성주조의 구원투수로 부산기업인 BN그룹이 등장했다. BN그룹이 인수한 2011년 이후 대선주조는 신제품 '즐거워예'를 출시하고 적자 폭도 점차 줄여가는 등 기업 정상화에 매진하고 있다.

대선주조가 흔들린 최근 몇 년 동안 무학이 부산 소주시장의 패자로 떠올랐다. 무학은 도수가 낮은 소주 '좋은데이' 출시 이후 2009년 17%대에 불과했던 부산지역 점유율을 2011년 63%대로 대폭 늘렸다. 전문가들은 현재 무학 '좋은데이'의 부산 점유율이 70%가 넘으리라 예상하고 있다. 경남에 이어 부산까지 아우르게 된 무학은 전국 점유율에서도 2위 롯데주류를 1.5%p 차이로 바짝 쫓게 됐다.

대선주조 '즐거워예'와 무학 '좋은데이'의 경쟁도 '물싸움' 양상으로 진행되는듯하다. 실제로 대선주조는 기장 삼방산의 천연암반수를 100% 사용하는 '즐거워예'가 지리산 산청 암반수가 30% 들어가는 '좋은데이'와 차별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밖에 향토기업의 품으로 돌아온 대선주조를 지역애가 강한 부산 시민들이 다시 받아들일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자도주 이름 잃었지만 투트랙 전략으로 승부

충북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주전쟁도 수도권ㆍ부산지역 못지않게 치열하다. 선두를 달리는 하이트진로 '참이슬'과 충북소주(2011년 롯데주류 인수) '시원한 청풍', 롯데주류 '처음처럼' 연합군의 대결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사실 충북지역 자도주 격인 충북소주 '시원한 청풍'의 점유율만을 따지면 하이트진로 '참이슬'에 한참 못 미친다. 충북지역에서 하이트진로의 우세가 굳어진 것은 충북소주가 롯데주류에 인수된 2011년부터다. 가뜩이나 지역색이 약한 데다 최근 몇 년간 하이트진로가 영업망과 유통조직을 정비하며 강하게 치고 들어오면서 떨어진 충북소주의 점유율은 롯데주류의 인수 이후 더욱 떨어졌다. 대기업에 자도주를 잃었다고 여긴 충북도민들의 외면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충북소주가 충북도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7년 대선주조가 충북지역 향토소주인 백학소주를 인수하면서 하이트소주로 사명을 바꿨을 때부터 '진정한 의미의 자도주가 아니게 됐다'는 지적을 받아온 것이다. 충북 출신인 장덕수 전 충북소주 사장이 2004년 인수하면서 되살아나던 충북도민들의 관심은 롯데주류의 개입으로 사실상 완전히 사라진 상태다.

이에 롯데주류는 하이트진로에 뺏긴 충북지역 점유율을 회복하기 위해 투트랙 전략으로 나서고 있다. 인수한 충북소주 공장에서 '처음처럼'을 생산, 기존의 '시원한 청풍'과 함께 충북지역을 동시에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들은 '처음처럼'과 '시원한 청풍'의 점유율을 합하면 하이트진로 '참이슬'을 충분히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라 보고 있다.

여배우 vs 여가수… 소주광고, 또 하나의 전쟁



소주 광고는 화장품 광고와 함께 여성 연예인들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광고 분야로 꼽힌다. 여성 연예인 최초로 소주 광고를 찍은 사람은 1999년 하이트진로 '참이슬'의 모델이었던 이영애다. 깨끗하고 순수한 이미지의 이영애를 기용한 '참이슬'이 소위 대박을 기록하자 다른 소주업체들도 저마다 여성 연예인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후 김태희, 하지원, 이민정 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이영애에 이어 '참이슬' 광고 모델로 발탁되며 눈길을 끌었다.

하이트진로가 여배우들로 재미를 봤다면 경쟁사인 롯데주류는 여가수들을 선호해왔다. 대표적인 사람이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무려 5년 동안 '처음처럼' 광고 모델로 활동한 이효리다. 대표적인 섹시가수로 꼽히던 이효리는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털털하면서도 술을 즐기는 이미지까지 겹치며 최고의 소주 모델로 활약했다.

애프터스쿨의 유이는 순한 소주 열풍이 불었던 2009년 '처음처럼 COOL'의 광고모델로 발탁됐다. 당시 '꿀벅지'라는 별명을 지닌 유이는 "내가 진짜 처음이야? 쿨하게 생각해"라는 자극적인 문구로 시선을 모았다.

유이의 성공에 고무된 롯데주류는 이효리의 후속 모델로 포미닛의 현아, 카라의 구하라, 씨스타의 효린 등을 기용했다. 최고를 다투는 세 사람의 걸그룹 멤버가 총출동한 '처음처럼' 광고는 화제를 모았으나 등장하는 춤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결국 중단됐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