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 "환영" 시민단체·야당 "안돼""이사의 경영적 판단 따른 임무수행 손해책임 묻지말자"개정안 국회 법사위 제출… 독일·미국 사례 들어 법학계도 찬성 분위기"강화해야" 목소리도 커… 통과에 난관 예상

기업인 배임죄 완화 개정안 발의한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
기업인의 정상적 경영판단에 대해 배임죄를 적용하지 않는 내용으로 법 개정이 추진되고있다. 이를 두고 재계를 비롯해 법학계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이지만 시민단체, 야당 등은 비판적 입장이다.

배임죄 관련법 손본다

최근 이명수 의원 등 새누리당 의원 10명은 기업인의 경영행위에 적용되는 배임죄를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상법 일부 개정법률안(이하 개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했다.

이 의원 등이 제출한 개정안에는 이사가 경영적인 판단에 따라 임무를 수행했을 경우 손해에 따른 책임을 묻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상법 제282조(이사의 선임, 회사와의 관계 및 사외이사) 2항에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어떠한 이해관계를 갖지 않고 상당한 주의를 다해 회사에 최선의 이익이 된다고 선의로 믿고 경영상의 결정을 내리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하더라도 의무의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는 단서를 삽입한 것이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이 의원은 기업인의 선의를 인정하는 '경영 판단의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이 이미 독일 주식법 제93조에 성문화돼있고 미국 판례에서도 인정되고 있다는 점을 제안 이유로 들었다. '경영 판단의 원칙'이란 회사의 이사나 임원들이 비록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했더라도 선의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고 그 권한 내의 행위를 했다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이론이다. 이 의원은 "우리 학계에서도 이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계속 제기된데다 하급심이나 대법원에서도 이미 판례를 통해 '경영 판단의 원칙'을 인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승연 한화 회장
배임죄 문제는 학계 단골

이명수 의원의 말처럼 국내 법학계에서는 기업인이 경영상 필요에 의해 내린 판단을 사후에 처벌하는 배임죄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투자 결정 등 기업 본연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형벌 과잉'으로 죄형법정주의에도 어긋난다는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지난 3월 20일 법률신문이 '우리 사회 배임죄 성립과 처벌수준, 과연 적절한가'를 주제로 개최한 신춘좌담회에서 최준선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2005~2008년 1심 기준으로 전체 형사 범죄 무죄율이 평균 1.2%인데 반해 형법상 배임죄 무죄율은 5.1%,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의 무죄율은 11.6%로 10배 정도 높다"며 "이렇게 되는 이유는 배임죄 자체의 구성요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 교수는 "배임죄 규정은 지난 50년간 일정한 역할을 해 왔고 이를 없애면 사기죄 등 다른 범죄로 의율될 것이기 때문에 범죄 총량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상법 제622조에 규정되어 있는 특별배임죄를 개정, 경영판단의 원칙을 조문으로 넣어서 특별배임죄를 판단할 때 법관이 이 부분을 고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좌담회에서 박미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형법상 배임죄 적용 내지 처벌과 관련해 형법 영역이 정책 방향에 좌지우지돼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며 "구성요건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광범위하게 규정돼있는 까닭에 법 적용에 있어 구체적인 기준을 발견하기 어렵고 형법상 무죄추정 원칙에 따라 무죄율이 많이 나온다"고 꼬집었다.

최태원 SK 회장
이번 좌담회에서 뿐만이 아니다. 법학계의 오랜 논란거리였던 기업인의 배임죄 논쟁은 국내 대표 기업인 SK와 한화의 회장이 해당 죄목으로 법정구속된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여러 차례 불거졌다. 강동욱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는 지난해 12월 4일 한양대 법학관에서 열린 '한양법학회 동계학술세미나'에서 발표한 '이사 등의 경영 행위에 대한 배임죄 성부'를 통해 업무상 배임죄에 대한 부당성을 주장했다.

강 교수는 "형법상 배임죄 자체가 개인의 사적 자치를 보장하는 사법, 즉 경제활동의 영역에 깊숙이 관여하는 것"이라며 "현재의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는 이사 등의 경영행위에 대해서는 배임죄 적용에서 배제하거나 상법상 특별배임죄를 삭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강 교수는 "재산범죄에 있어 피해자의 승낙이 있으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형법 24조의 규정을 적용할 경우 배임죄의 피해자는 주주가 아닌 회사"라며 "이사회 결의는 곧 회사의 의사로 봐야 하므로 이에 따른 경영행위는 피해자의 승낙과 같다"고 해석해 눈길을 끌었다.

재계 환영에도 시행 미지수

재계는 법학계의 오랜 논란거리였던 기업인 배임죄 문제에 정치권이 가세, 관련법 개정안마저 제출된 것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기업인들에게 특히 엄해진 여론과 법정 분위기 때문에 갑갑했던 숨통이 오랜만에 활짝 트이게 된 것이다.

실제로 과거 배임죄를 저지른 기업인 대부분에게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 '정찰제 판결'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던 법원은 2009년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양형기준을 만든 이후 강도 높은 법 적용에 나선 바 있다. 특히 지난해 경제민주화가 일종의 화두가 된 이후 , 등 대기업 총수들에게 실형선고 및 법정구속이 이어지는 등 이 같은 분위기도 더욱 강해졌다.

재계 관계자는 "총선과 대선이 함께 열린 지난해 경제민주화 바람이 몰아치면서 덩달아 기업인 배임죄 처벌도 강화된 것 아니냐"며 "김승연 회장과 최태원 회장도 경제민주화의 희생자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계자는 "(관련법 개정 소식은)이제 막 1심을 마친 두 회장을 비롯해 다른 기업인들에게도 희소식"이라며"'걸면 걸리는' 배임죄 때문에 그동안 전전긍긍해왔던 우리로서는 해당 개정안이 빨리 통과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정안이 통과되기까지는 여러 난관을 거쳐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시민단체와 야당 등에서는 배임죄 적용을 유지,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 재계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배임죄 면책사유로 '경영 판단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사전에 제도를 정비해 이사나 경영진의 배임행위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통합당 이춘석 의원은 "우리나라의 기업 이사회가 객관적ㆍ독립적 기능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경영판단이라는 이유로 배임죄를 적용하지 않을 경우 배임에 대해 죄를 묻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현행법상 배임 조항

형법 제355조(횡령 배임) 2항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356조(업무상의 횡령과 배임)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하여 제355조의 죄를 범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상법 제622조(발기인, 이사 기타의 임원 등의 특별배임죄) 1항 회사의 발기인, 업무집행사원, 이사(중략) 등이 그 임무에 위배한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회사에 손해를 가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특정재산범죄의 가중처벌) 제3조 형법 제355조(제2항 배임)의 죄를 범한 사람은 그 범죄행위로 인하여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가액(이하 이 조에서 "이득액"이라 한다)이 5억원 이상일 때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가중처벌한다. 1.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때: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2.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일 때: 3년 이상의 유기징역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