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진 보장 없고 '미래파(국가미래연구원 출신)'에 밀리고…친박 핵심이던 장경상 전 행정관… 사표 제출 후 동요 분위기대선때 역할 비해 청와대 입성후 합당한 대우 못받아 불만 쌓인듯국가미래연구원 출신 중용도 '집단 탈출'설 한몫

청와대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지난 5일 새 정부 들어 첫 사직서가 제출된 이후 그렇다.

사표를 낸 사람은 국정기획수석실의 장경상 전 행정관. 장 전 행정관의 직급은 3급이었지만 친박 핵심 실제로 평가됐던 인물이라 사표 파장은 작지 않다. "아이와 함께 유학을 준비할 생각이며 다른 이유는 없다"는 게 장 전 행정관의 사표의 변(辯)이었다고 한다.

장 전 행정관은 2007년부터 박근혜 대통령 곁에서 일해왔다. 장 전 행정관은 지난해에는 대선 캠프에 이어 당선인 비서실에도 몸담았다. 청와대 인선 때도 장 전 행정관은 일찌감치 국정기획수석실에 배정됐다.

박근혜 대통령을 오랫동안 보좌하며 '문고리 권력'이라는 신조어를 낳은 세 사람(이재만 정호성 안봉근)을 제외하면 장 전 행정관은 실세 중의 실세로 통했다. 장 전 행정관은 몇몇 국회의원들과는 사석에서는 호형호제할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청와대 내에 장 전 행정관과 비슷한 경력을 가진 보좌관은 20명 정도. 이들은 새누리당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오랫동안 박 대통령을 도왔다. 이들은 박 대통령 당선 후 청와대 1, 2부속실과 정무ㆍ국정기획ㆍ홍보 라인에 주로 배치돼 있다.

문제는 장 전 행정관의 사표 제출 이후 그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행정관들의 동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는 데 있다. 새누리당 출신 행정관들의 엑소더스(많은 사람들의 동시 탈출)가 이뤄질 수도 있을 거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처우 불만? 미래 불안?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청와대 행정관이라는 자리가 책임과 업무는 막중한 반면 밖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실제로 누리는 것은 별로 없다"면서 "내년에 지방선거, 2016년에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기 때문에 의외로 일찌감치 거취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원 고성 출신으로 강릉고와 서강대를 나온 장 전 행정관은 청와대 행정관과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냈다. 냉철한 분석력과 빠른 두뇌 회전을 자랑하는 장 전 행정관은 전략통으로 통한다.

장 전 행정관을 비롯한 몇몇 행정관들은 당초 2급으로 추천됐으나 실제로는 3급에 임명됐다는 후문이다. 2급과 3급은 처우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크다.

새누리당 출신 일부 행정관들은 대선 기간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변변한 바닥에서 죽을힘을 다해 뛰었는데도 청와대 입성 후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데 대해 크게 허탈해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행정관들의 엑소더스 조심의 한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행정관들이 정치권으로 돌아올 경우 청와대 근무 경력이 '플러스 요인'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현실은 생각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박 대통령이 보여준 인선을 살펴보면 새누리당 출신 행정관들이 누릴 수 있는 기득권 같은 것은 별로 없을 듯하다. 전시(戰時)와 평시(平時)에 쓸 재목은 다르다는 게 박 대통령의 인사 원칙 중 하나로 파악된다.

이에 따라 행정관들 입장에서는 청와대 내에서 승진 가능성이 여의치 않은 데다 청와대를 나왔을 경우 진로가 막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행정관들의 엑소더스는 막을 방법이 없을 수도 있다.

파워게임 그리고 국가미래연구원

일각에서는 청와대 내 실세 수석비서관들 간의 파워게임과 국가미래연구원 출신들의 중용으로 인해 새누리당 출신 행정관들이 상대적으로 설 자리를 잃어간다고 지적한다.

청와대 대 일부 비(非) 관료 출신들은 파워 게임을 벌이는 반면 몇몇 관료 출신들은 관망으로 일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행정관들의 위치가 어정쩡해졌다는 것이다.

장 전 행정관이 돌연 사표를 낸 것을 두고 청와대 내부적으로'늘공(늘 공무원인 사람들)'과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들)'들 간 기싸움의 희생양이 됐다는 뼈있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박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싱크탱크였던 국가미래연구원 출신들은 새 정부 들어 '물 만난 고기'가 됐다. 국가미래연구원은 장관급으로만 5명, 차관급인 청와대 수석비서관까지 더하면 모두 10명을 청와대와 정부로 진출시켰다.

장관급으로는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 류길재 통일부 장관,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차관급으로는 곽상도 민정수석, 최성재 고용복지수석, 김재춘 교육비서관, 정영순 여성가족비서관, 홍용표 통일비서관이 있다.

국가미래연구원 출신들의 약진과는 대조적으로 새누리당 출신 행정관들의 입지가 좁아지자 일각에서는 청와대 내 1급 비서관들 중 일부도 정치권 복귀를 모색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권 초기 청와대 행정관들의 동요 조짐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낯선 장면"이라며 "청와대뿐 아니라 새누리당도 큰 충격을 받았다. 최악의 경우 청와대가 내부적으로 혼란에 빠질 신호탄으로도 해석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