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의 STX 그룹, 회생 '안갯속'자율협약 통한 가닥 불구 연내 3조원 지원금 놓고 채권은행 반발 진통 예고"업황 회복 안될 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STX그룹의 채권단 회의가 열린 6일 채권단 소속의 주요 은행들은 STX의 요청대로 자율협약을 통해 STX그룹을 지원한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 STX남산타워 모습. 연합뉴스
연내 3조 지원 등 부담 눈덩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STX그룹의 회생을 놓고 일부 채권단이 이견을 제기하면서 제2의 성동조선 사태를 겪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STX그룹 5개 계열사의 자산 총액은 23조원으로 성동조선의 10배에 달하는데다 여신도 13조원이나 돼 지원액이나 충당금은 성동조선을 크게 웃돌 수밖에 없다.

자율협약 체결 등을 통해 지원은 이뤄지겠지만 결국 분담액 등을 놓고 성동조선 때와 같은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금융계의 분석이다. 채권단에서는 벌써부터 STX의 회사채 지원을 놓고 갈등을 표출하고 있다.

지난 7일 금융계에 따르면 STX 채권단은 현재 자율협약을 통한 지원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STX 지원에 필요한 자금이 연내에만 3조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최종 합의까지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원해야 할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는데다 쌓아야 할 충당금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STX그룹은 원자재 구매, 하도급 대금 지급, 인건비 등 운영자금으로만 1조원 이상 필요하다. 연내 도래하는 STX그룹의 회사채 규모도 9,800억원에 달한다. 더욱이 STX의 유동성 위기로 채권은행들이 쌓아야 할 충당금은 8,400억원이 넘는다. 이들 세 가지 항목만 합쳐도 채권단은 3조원 이상을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다.

채권단의 한 고위관계자는 "덩치가 훨씬 작은 성동조선의 지원을 놓고서도 채권단 내에서 많은 갈등이 있었는데 STX그룹은 오죽하겠느냐"면서 "조선산업 등 경기에 너무 민감해 무작정 지원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금융계에서는 그래서 STX 지원을 놓고 채권단 간의 갈등이 극심했던 성동조선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성동조선이 2011년 말 유동성 위기를 겪자 신규자금 5,500억원의 추가지원을 놓고 채권단 간 이견을 보이면서 국민은행의 경우 채권단에서 탈퇴하기에 이르렀다. 2010년에 자율협약은 체결했지만 업황 전망 등을 볼 때 지원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은행은 회계법인 실사 결과 청산가치가 계속가치보다 높았고 조선업황도 2014년에야 좋아질 것으로 나왔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채권단이 부담을 갖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조선이나 엔진ㆍ중공업 등이 하나같이 경기에 민감한 업종이어서 업황이 회복되지 않을 경우 자칫하다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의 지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10년 4월 자율협약에 들어갔던 성동조선은 그 이후 매년 7,000억원가량의 운영자금을 지원 받고 있다.

여기에다 STX그룹은 성동조선과는 달리 회사채 발행물량도 많다. STX그룹 주요 계열사의 회사채 가운데 올해 안에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는 9,800억원에 이르고 내년에는 1조3,000억원이다. 만기도래 회사채 지원액과 신규 운영자금 지원, 충당금 적립액 등을 합치면 채권단이 부담해야 할 자금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커진다.

채권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추가지원에 나섰다가 발을 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부 은행 거센 반발

채권단 내에서는 지원에 대한 이견도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지난 6일 열린 채권단회의에서 한 채권은행은 "STX의 회사채까지 갚아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의 투자책임인 회사채를 은행들이 갚아주는 게 이치에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채권단의 관계자는 "은행이 예금보험공사도 아니고 회사채를 대신 갚아줘야 하느냐"면서 "STX 측이 회사채 투자자를 설득해 은행들의 지원 규모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1ㆍ4분기 순이익이 반토막(3조3,000억원→1조8,000억원) 난 은행들로서는 STX의 유동성 위기는 또 다른 악재다. STX의 여신에 맞춰 채권은행들은 7%의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3월 말 기준 STX그룹에 대한 금융계의 여신 총액은 13조1,910억원. 이 가운데 은행들이 갖고 있는 여신이 12조원가량 돼 이들이 쌓아야 할 충당금은 7,800억원이나 된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여러 문제가 얽혀 있어 자율협약에 동의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 지원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1ㆍ4분기 실적도 극히 저조한데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니 고민만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핀란드·프랑스 등 유럽조선소, 국내자본이 사달라"


김영필기자


STX그룹, 국부 유출 우려
"사모펀드·국민연금 투자를"

STX그룹 측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매물로 내놓은 핀란드와 프랑스 같은 유럽 조선소를 국내 자본이 사달라고 'SOS'를 쳤다. 핀란드 조선소 등은 크루즈선을 주로 하는데 고급기술인데다 부가가치도 높아 해외에 팔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논리다. 지금 쫓겨서 매각하면 헐값에 넘겨야 하고, 이는 고스란히 국부 유출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외환 위기 이후 국내 기업들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외 자본들은 시한에 쫓긴 기업들로부터 헐값에 알짜 매물을 사들였다. STX 역시 지난해 STX OSV를 이탈리아 업체에 파는데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에 치여 제대로 협상도 못한 채 외국 업체에 넘겨야 했다.

STX그룹의 한 고위관계자는 지난 6일 "핀란드 조선소는 최근에도 크루즈선을 한 척 수주해 건립하고 있다"며 "크루즈는 첨단 기술인데다 지금 갖고 있는 노하우가 커서 우리나라 산업을 보호하면서 기술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사모펀드(PEF)나 국민연금에서 투자해 사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히 "지금 사도 싼 가격에 조선소를 사들일 수 있다"며 "PEF 등의 입장에서는 앞으로 경기가 좋아질 것을 감안하면 틀림없이 돈이 된다"고 강조했다.

유동성 위기에 몰린 STX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유럽 조선소를 팔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외국인이 사는 것보다는 국내 자본의 손에 들어가는 게 국익 차원에서 낫다는 얘기다. 이미 STX다롄 조선소는 다롄시 정부로 처분권이 사실상 넘어간 상태다. 모회사격인 STX조선해양을 살리기 위해서 거금을 들인 다롄 조선소를 중국에 넘길 처지다.

실제 STX의 핀란드 투르크 조선소와 프랑스의 쌩라재르 조선소는 크루즈 선박과 방산업무를 주로 한다. STX에 따르면 핀란드 조선소는 현재 TUI사가 발주한 크루즈선 2척을 건조하고 있다.

두 조선소를 아래 두고 있는 STX 유럽법인의 수주 잔량은 10척에 금액으로는 32억달러다. 특히 STX의 유럽조선소들은 크루즈에 관한 한 세계 3대 메이저다.

STX 유럽의 지난해 크루즈 수주잔량은 60만2,000GT로 점유율이 21.6%다. 이탈리아의 핀칸티에리(35.4%)와 독일의 메이어 베르프트(30.11%)에 이어 3위 수준이다.



서민우기자 ingaghi@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