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상에 정국 뒤흔들 새 인물 있다"동원된 여성들 조사과정서 "성폭행당했다" 진술 확보동영상에 모 공기업 수장·유명 여자 연예인" 소문도성접대 대가성 확인되면 고위직 인사 처벌할 근거

건설업자 윤 모씨의 비밀스러운 접대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 강원 원주시 부론면 정산4리의 별장. 4년 전에 지어진 이 저택은 대지 규모만 6,800m²(2,000여평)에 이르며 6개 호화주택에 수영장과 정자, 연못 등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원주=박은성기자
건설업자 윤모(52)씨의 사회 유력인사 성접대 등 불법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은 지난 14일 윤씨를 재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경찰은 전직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 등 유력인사들을 성접대했다고 주장한 여성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윤씨가 성접대를 매개로 사업상 이권을 취했거나 자신에 대한 여러 건의 고소 사건에서 편의를 얻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성접대에 동원됐다는 여성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특정 유력인사와 윤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윤씨와 해당 유력인사에게 특수강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도 검토하고 있다.

또 경찰은 윤씨가 성접대 과정에서 여성들에게 마약류를 사용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를 추진 중이다. 앞서 고발인 권모 여인은 경찰에 "윤씨가 마약류를 사용한 것 같다"고 주장했으나 권씨의 모발 검사 등에서는 마약류가 검출되지 않았다.

경찰은 이와 더불어 윤씨가 성관계 동영상 등으로 여성들을 협박, 이들을 유력인사 성접대에 동원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관련자 진술 등을 토대로 사실 관계를 추궁하고 있다.

건설업자 윤모씨가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 자진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은 이날 윤씨에 대한 2차 소환조사가 충분히 이뤄졌다고 판단되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 윤씨로부터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산 유력 인사들을 소환하고 성접대 피해 여성과 윤씨 간 대질신문을 하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번 윤씨 소환조사에서 필요한 부분에 대한 진술을 절반 정도밖에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 끝까지 다 받고 법리검토를 할 계획이다.

윤씨는 일부 혐의를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앞서 지난 9일 윤씨를 처음으로 소환, 입찰비리 등 사업과 관련한 의혹을 집중 추궁했고 이 과정에서 진술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1차 출석 당시 윤씨는 성접대 동영상 등장인물로 거론된 김학의 전 차관과 모르는 사이이며 유력인사들을 성접대 하거나 동영상을 촬영한 사실도 없다고 부인한 바 있다.

진실게임 2라운드 시작

경찰 수사와 관련해 일부에서는 혐의적용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경찰이 특수강간 혐의를 검토하고 있지만 현재가지 드러난 바로는 혐의입증이 어렵고 입증이 된다 해도 증거가 위법적으로 확보된 것일 가능성이 커 유죄로 연결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경찰이 확보한 동영상에는 등장인물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수준의 화질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영상을 둘러싸고 경찰 주변에서는 여러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모 공기업 수장이 등장한다거나 유명 여자 연예인 A씨가 낯 뜨거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는 등의 소문이 그것이다.

경찰은 이 부분에 대해 일절 함구하고 있어 실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윤씨의 진술과 경찰 안팎에서 들리는 내용을 종합해 보면 적어도 재계 인사를 포함한 복수의 유명인인 영상에 담겨 있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영상에 담긴 내용만으로 사건의 실체인 성접대와 성폭행 여부를 입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이 부분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영상이 일종의 몰래카메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다 영상에 출연한 인물들이 촬영에 동의한 흔적을 찾기 쉽지 않을 것으로 법조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영상물은 피의자들을 처벌하는데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관계자의 증언이나 진술에 따라야 하는데 이 역시 시간이 오래 지난 탓에 증언을 입증할 수 있는 물증이 부실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때문에 윤씨를 비롯한 동영상 관계 당사자들이 어디까지 진술을 할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만약 피해여성들의 진술과 배체되는 진술을 하거나 사실관계를 부인할 경우 경찰은 새로운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동영상에 등장했다는 의혹을 사 옷을 벗은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은 동영상의 실체에 대해 자신과 무관함을 강조하고 있다.

김 전 차관은 사퇴의 변에서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지만, 저의 이름과 관직이 불미스럽게 거론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저에게 부과된 막중한 소임을 수행할 수 없음을 통감하고, 더 이상 새 정부에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임하는 것입니다. 확인되지도 않은 언론 보도로 인하여 개인의 인격과 가정의 평화가 심각하게 침해되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가 반드시 진실을 밝혀,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명예를 회복할 것입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말한 김 전 차관이 향후 경찰 수사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할 것임은 자명해 보인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경찰은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수사결과 발표에서 동영상의 내용을 공개할 때 발생할 파장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더불어 검찰조사 결과 그리고 사법부의 판단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대가성 여부 확인이 관건

이 사건의 핵심은 윤씨가 실제로 여성들을 동원해 각계 인사들에게 성 접대를 했느냐는 것이다. 만약 고위층의 권력을 이용하기위해 여성을 동원한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동원된 고위직 인사들을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씨가 자신의 사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권력층을 이용하기 위해 여성의 성을 제공했을 경우 뇌물죄 적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별장에 남녀가 모여 섹스파티를 벌였을 경우, 도덕적, 양심적 측면에서 범죄일수 있으나 마땅히 처벌할 근거조항이 없다. 형법상 뇌물죄의 객체에 돈 이외에 성의 제공도 포함 된다는 게 지금까지 사법부의 통념이다. 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없지만 하급심 판결 중 성행위를 뇌물로 판단한 경우가 있다. 창원지법은 2010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피의자와 향후 수사편의제공 명목으로 3차례 성관계를 가진 경찰관에 대해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해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윤씨가 공갈이나 협박의 수단으로 삼기위해 지인들을 불러 동영상을 촬영했다면 오히려 윤씨는 피의자 신분이되고, 지인들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경찰은 사실관계를 입증해야할 책임을 안게 되는데 이것은 경찰의 딜레마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미국의 OJ심슨 사건을 예로 들면 심슨은 수많은 정황증거에 따르면 살인죄가 명백해 보였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경찰이 수집한 증거가 불법적으로 수집된 증거로 판단됨에 따라 사법부는 심슨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번 사건도 결론적으로 이렇게 흘러갈 소지가 없지 않다. 이른바 '독과수 원칙'에 따라 경찰이 확보한 동영상을 사법부가 증거로 채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법조계 전반에 깔려 있다.

독과수 원칙이란 독이 있는 나무에서 열리는 과실에도 독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불법적으로 확보된 증거는 그것이 진실을 담고 있어도 불법행위에 의한 것이므로 그것으로 진실성을 가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국정원 불법도청사건 당시 사법부는 불법도청을 한 국정원 관계자들은 처벌했지만 도청 내용에 담긴 내용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았다. 도청 내용에는 여러 비리의 실체가 담겨 있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검찰은 이에 대해 따로 조사하지는 않았다. 이 역시 독과수 원칙에 따라 불법적으로 수집된 증거물은 법적인 효력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에 이번 성접대 동영상 사건은 경찰이 향후 사건의 실체를 동영상 내용 이외에 어떤 방법으로 입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