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한 달 넘었지만 '나눠먹기식' 당직 인선 등 감동 없이 혁신 구호만당 지지율 12% 지지부진 당직자 명퇴 과정서도'잡음' 일부 "간판 내려야 하나" 자조

민주당 김한길대표
민주당이 여전하다. 매우 유리한 환경 속에서 치러졌던 지난해 총선과 대선에서 잇달아 패한 뒤 극심한 내분을 겪었지만 달라진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당 안팎에서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결국 민주당이라는 간판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까지 나온다. 그런데도 당 지도부는 냉랭해진 민심을 아직까지도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대선 패배 후 휘청거리던 민주당은 지난달 4일 전당대회를 열어 비주류였던 김한길 4선 의원을 당대표로 선출하는 등 새 지도부를 구성했다. 이어 당은 사무처 구조조정에 나서는 등 체제 정비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출범 한 달이 넘었지만 김한길호(號)는 "독한 혁신을 하겠다"던 당초 공언과 달리 감동 없는 행보로 일관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또한 당이 추진하는 구조조정을 두고서는 "같은 식구들에게 이렇게 뒤통수를 쳐도 되는 거냐"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민주당이 대선 패배 후 반년이 지나도록 이처럼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니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실체조차 모호한 새 정치를 들고 나와도 유권자들에게 먹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한길(왼쪽에서 두 번째) 민주당 대표가 4일오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2014 지방선거기획단 발족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야무야 혁신

비주류의 좌장 격이었던 김한길 의원은 전당대회 전부터 강력한 대세론으로 무장했다. 친노 주류가 대선 패배 책임론에 휘말려 있던 터라 김 의원의 당대표 등극은 예상됐던 일이다. 김 대표는 친노 주류 측 단일후보였던 이용섭 후보와 1대1 대결에서 61.71% 대 38.2%로 완승을 거뒀다.

"계파 없는 정치"를 강조해온 김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독한 혁신'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김 대표의 공언과 달리 당 안팎에서는 "도대체 뭘 혁신했느냐"는 비판이 더 많다.

김한길호의 감동 없는 혁신은 어찌 보면 출범 때부터 예견됐었다. 투표를 통해 선출된 최고위원과 원내대표는 차치하더라도 나머지 주요 당직 인선을 보면 '나눠먹기' 인상이 짙게 풍겼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소속 의원들의 투표로 원내대표에 선출됐던 박기춘 의원이 사무총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친노 구주류로 분류되는 장병완 의원이 정책위원회 의장으로 임명됐다.

현직 원내대표가 차기 사무총장으로 '명찰'을 바꾼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또 장 의원의 정책위의장 발탁에 대해 '구색 맞추기'라는 지적이 나왔다.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광주 출신의 박혜자 의원이 임명된 것을 두고도 말들이 많다. 호남과 여성 배려 차원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박 의원이 초선이라는 점과 호남에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게 최선이었냐"는 반론도 무리는 아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김한길 대표 체제가 이전 대표들 때와 다른 게 뭔지 잘 모르겠다. 이러니 정부 여당이 저렇게 시원치 않아도 민주당 지지율이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우격다짐 단일화'까지 추진하고도 당권을 빼앗긴 친노 구주류도 부글부글 속이 끓는 모양이다. 5ㆍ4 전대 때 김 대표와 맞붙었던 이용섭 의원은 지난 2일 성명을 통해 "새 지도부 출범과 함께 국민들께 혁신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하고 환골탈태하는 혁신 의지를 보여줬어야 했는데 실기했다"고 비판했다.

비노 진영의 한 의원은 "이런 식이라면 10월 재보선 결과에 따라 당이 다시 한 번 요동치지 않겠냐"면서 "친노 쪽에서 지금 당장은 숨죽이고 있지만 재보선 결과가 나쁘다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당대표라는 자리는 임기 자체에 큰 의미가 없는 것 아니냐"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여론도 썩 호의적이지 않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의 지난달 31일 여론조사 결과 내년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 민주당 후보,

안철수 신당 후보 3자 대결의 지지율은 새누리당(38.6%), 안철수 신당(34.0%), 민주당(11.7%)순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율은 김한길 체제 출범 이전과 비교했을 때 제자리걸음 또는 소폭 하락이다.

이런 부정적인 기류들을 의식한 때문인지 김 대표는 지난달 31일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더디긴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 중이다. 사람으로 치면 화장을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생활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락가락 구조조정

민주당은 지난달 20일부터 국장, 부국장급 당직자 105명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다. 그런데 퇴직금 규모와 구조조정 절차에 갑자기 변화가 생김에 따라 당직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커지고 있다.

당초 민주당은 명예퇴직금 규모를 '연봉X잔여 연수'를 지급하기로 했다. 가령 연봉 5,000만원을 받는 당직자의 잔여 연수가 5년이라면 퇴직금으로 2억5,000만원을 지급하는 식이었다. 현재 민주당 당직자 정년은 만 56세다.

하지만 "퇴직금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이 이렇게 돈잔치를 해도 되냐"는 비판이 일자 당 인사위원회는 퇴직금 규모를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와 관련, 부국장급 한 민주당 관계자는 "오랫동안 당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 일인데 처음부터 숙고해서 퇴직금 규모를 결정했어야 되는 것 아니냐"면서 "이러니 당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러다간 민주당이라는 이름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또 다른 당 관계자는 "금배지들은 오로지 3년 뒤 총선만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들의 거취 문제가 아니라고 해서 뭐든 너무 쉽게, 즉흥적으로 결정하려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급기야 민주당 노동조합은 지난달 30일 사무처 당직자 전체 간담회를 연 뒤 박기춘 사무총장에게 퇴직금 규모와 명예퇴직 신청 절차에 대한 재논의를 요청하기로 했다.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신청을 받았던 명예퇴직이 당직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민주당의 당직 인선도 미뤄졌다. 전략기획국장, 총무국장 두 자리만 일찌감치 확정됐을 뿐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사실 정부 여당이나, 안철수 무소속 의원도 찬찬히 뜯어보면 잘하는 게 별로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응이 싸늘한 것은 민주당 스스로 헛발질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어디 가서 민주당 당직자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때가 있다"고 탄식했다.

새누리당이 민주당 도우미로?



"민주 문 닫으면 안철수만 좋아…도와줘야"친박 홍문종 새누리 사무총장 뼈있는 농담

민주당과 새누리당은 서로에게 '적군'이다. 5년 단임제로 치러진 1987년 이후 지난해까지 모두 6차례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4승(2패)으로 2승을 앞섰지만 양당은 거의 모든 선거에서 팽팽하게 맞섰다. 당장 오는 10월 재보선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양당은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따라서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서로 돕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상상 속에서도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친박 핵심인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지난 2일 출입기자단 오찬에서 "민주당은 더 신경 쓰이겠더라. 여론조사만 보면 아주 문 닫게 생겼어"라고 운을 뗀 뒤 "그런데 문 닫으면 안 되지. 우리한테도 안 좋다. 우리가 민주당 도와줘야 해"라며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우리가 도와줘야 해"라는 홍 사무총장의 발언은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안철수 신당에 대한 견제 의도가 깔려 있다. 민주당이 비록 '적군'이라고는 하지만 완전히 붕괴된다면 새누리당이 아닌 안철수 신당이 반사이익을 누릴 거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의 지난달 31일 여론조사 결과 1위인 새누리당은 민주당을 3배 이상 따돌렸지만 안철수 신당과의 격차는 오차범위 내에 있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선거까지 아직 1년이나 남았기 때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간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농담이라 하더라도 민주당이 어쩌다 새누리당의 도움까지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는지 모르겠다"며 "사람들을 만나보면 민주당의 존재감이라는 것은 발견하기 어렵고, 지금도 대선 패배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능한 정당 정도로 인식되더라"고 말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