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위, 대기업 지배구조 현황 발표대기업 총수 영향력 잣대 내부지분율 54.79%자산규모 클수록 총수일가 지분율은 낮아총수 있는 대기업일수록 수평·방사형 출자구조 복잡순환출자구조 절반이 2008년 이후 만들어져

국내 대기업들의 지배구조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주주로 조직된 유한책임회사라는 뜻을 담고 있는 주식회사는 본래 모든 주주가 자신이 보유한 지분만큼의 권리를 행사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주요 대기업 총수 중 상당수는 1%도 채 되지 않는 지분으로 그룹의 전체 계열사를 쥐락펴락하며 최대한의 권리를 누리고 있다.

경제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올해 총수일가의 지분율은 소폭 오른 반면, 내부지분율은 그만큼 감소했다. 그러나 총수일가가 전체 지분율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여전히 미비할 따름이다. 출자단계를 복잡하게 하고 순환출자고리를 형성하는 등 갖은 방법을 이용해 적은 지분으로도 그룹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총수 지분율 감소에도 내부지분율 여전히 50%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지난 4월 지정한 자산기준 5조원 이상의 62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하 대기업집단)의 주식 소유 현황 등을 분석한 자료를 지난달 30일 공개했다. 해당 자료에는 대기업집단별 내부지분율과 소속회사간 주식보유현황, 순환출자 현황, 기업공개 현황 등이 담겨 있었다.

공정위에 따르면 총수 있는 대기업집단 43개사의 내부지분율은 54.79%로 지난해(56.11%)보다 1.32%p 줄어들었다. 이중 총수를 포함한 총수일가의 지분율은 2012년 4.17%에서 올해 4.36%로 0.19%p 증가한 반면 계열사 지분율은 같은 기간 49.56%에서 48.15%로 1.40%p 감소했다. 특히, 총수의 지분율만을 따져보면 지난 1년간 2.13%에서 2.09%로 0.04% 줄어들었다.

내부지분율이란 대기업집단 전체 자본금 중 총수일가(총수 단독 지분+혈족 2~6촌ㆍ인척 1~4촌)의 지분에 계열사 및 계열사 임직원 등이 보유한 지분까지 합친 개념으로 총수가 그룹에 미치는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지닌바 지분이 곧 힘이 되는 주식회사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총수 자신의 지분율이 2% 수준에 불과한 데다 그마저 줄어들고 있는 추세임에도 그룹의 50%가 넘는 지분을 쥐고 흔들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계열사 대부분의 총수 지분이 0%임에도 그 지배력은 여전히 막강하다는 점이다. 총수 있는 대기업집단 43개사의 계열사 1,519개사 중 총수 지분이 아예 없는 곳은 85.9%(1,305개사)에 이른다. 총수일가 지분이 없는 곳도 73.3%(1,114개사)나 된다. 계열사간 물고 물리는 지배구조 덕에 자신이 단 1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계열사들에도 총수의 영향력이 강고히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재계 1~4위 총수 지분 1% 안팎

총수 있는 대기업집단 43개사 중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가장 낮은 곳은 0.69%를 기록한 SK였다. SK는 총수인 최태원 회장의 지분율이 0.04%에 불과했고 총수의 배우자나 자녀의 지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이 1.17%의 총수일가 지분율을 기록하며 뒤따랐다. 현대중공업의 사실상 총수격인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은 1.0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삼성 또한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1.27%에 불과해 눈길을 끌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분율은 0.69%에 불과했고 부인인 홍라희 리움미술관 관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등 1촌의 지분율을 합쳐도 0.56% 수준이었다. 동양(1.38%), 현대(1.87%), 한화(1.99%) 등이 뒤를 이었다.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가장 높은 대기업집단은 한국타이어였다. 조양래 회장(10.90%)을 비롯해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 등 1촌(23.87%)의 지분율이 높았던 한국타이어는 총수일가 지분율이 34.84%나 됐다. 총수 있는 대기업집단의 총수일가 지분율 평균이 4.36%임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수치다.

부영 또한 총수일가 지분율 34.81%를 기록하며 한국타이어를 바짝 뒤쫓았다. 이중근 부영 회장이 30.29%로 전체 대기업집단 총수 중 최고를 기록한 것에 힘입었다. 23.81%로 총수일가 지분율 3위를 기록한 아모레퍼시픽 또한 21.02%의 서경배 회장이 전체 총수 중 2위에 오른 것에 영향받았다. 반면, 가족경영 기치를 내걸고 있는 GS의 경우, 총수 지분율이 1.86%에 불과한데도 총수일가 지분율은 16.77%를 기록하며 눈길을 끌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자산순위를 기준으로 규모가 클수록 총수일가 지분율이 낮았다는 점이다.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1~4위의 대기업집단은 총수(1.0%)와 친인척(1.3%)을 합한 총수일가 지분율이 2.3%에 불과했다. 한화, 롯데, 현대중공업 등 5~10위 대기업집단은 4.3%(총수 1.0%, 친인척 3.3%), 11~30위 대기업집단은 6.0%(총수 3.2%, 친인척 2.8%) 수준이었다.

한라, 신세계, 현대중 총수일가 지분율 감소폭 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기업집단에 포함된 41개사 중 지난 1년간 총수일가 지분율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GS였다. 지난해 13.70%였던 GS의 총수일가 지분율은 올해 30.7%p 늘어난 16.77%를 기록했다.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50%), 허동수 GS칼텍스 회장(25%),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25%)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삼정건업을 계열편입하면서 총수일가 지분율 또한 급상승한 것으로 읽힌다.

금호아시아나도 지난 한 해 동안 2.85%p(1.18%→4.03%)의 총수일가 지분율 상승을 경험했다. 총수일가가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금호산업, 금호타이어의 유상증자를 참여한 것과 금호산업의 감자 등이 지분율 상승을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세아 또한 지난해 8.67%였던 총수일가 지분율이 올해 9.82%로 1.15%p 늘어났다. 총수일가 지분이 없었던 강남도시가스의 계열제외 영향이 컸다. 그밖에 효성(0.95%p↑), 부영(0.82%p↑) 등이 뒤를 이었다.

같은 기간 총수일가 지분율이 가장 급격히 감소한 곳은 한라였다. 한라의 총수일가 지분율은 17.16%에서 7.65%로 1년 만에 9.50%p나 떨어졌다. 케이에코로지스 등 총수일가 지분이 없는 계열사를 신규 편입하고, 휘청이는 한라건설을 살리기 위해 총수인 정몽원 한라 회장이 지니고 있던 한라엔컴 지분 100%를 무상증여한 것의 영향이 컸다.

신세계도 지난 한 해 동안 총수일가 지분율이 6.89%p(13.08%→6.20)나 급감했다. 센트럴시티 등 총수일가 지분율이 없는 계열사들을 신규 편입하고 총수의 동생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의 출자금액이 감소한 까닭이다. 유상증자로 (주)한진중공업에 대한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0.77%에서 0.72%로 줄어든 한진중공업 또한 같은 기간 2.34%p(11.96%→9.62%)의 지분율 감소를 경험했다.

총수 있는 집단, 비지주회사일수록 출자단계 복잡

공정위에 따르면 총수 있는 대기업집단(43개사)의 출자구조가 총수 없는 집단(19개사)보다 상대적으로 복잡하고 출자단계도 더 많은 특징을 지닌다. 총수 있는 대기업집단은 평균 계열사 수가 35.33개사로 많고 수평, 방사형 출자 등 그 구조가 복잡하다.

반면, 총수 없는 대기업집단의 경우 평균 계열사 수가 13.11개사로 적고 수직적 출자의 비중이 커서 출자구조 또한 단순했다. 단, 포스코, 케이티, 대우조선해양 등 공민기업들은 총수 있는 대기업집단의 모습을 보였다.

출자단계에서도 차이가 났다. 총수 있는 대기업집단의 평균 출자단계는 4.51단계(2012년 4.44단계)였던데 반해 총수 없는 집단은 1.52단계(2012년 1.75단계)에 불과한 것이다. 농협이 대우로지스틱스를 계열 제외하며 출자단계를 지난해 6단계에서 올해 2단계로 대폭 감소하며 가뜩이나 낮은 수준이었던 총수 없는 대기업집단 전체의 출자단계를 더욱 낮춘 것으로 보인다.

총수 있는 대기업집단에서도 지주회사 체제를 취하고 있는 15개사는 다른 곳보다 훨씬 단순 투명한 출자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SK, LG, GS, 두산, LS 등 일찌감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대기업집단은 수직적 출자구조 이외에 수평, 방사형, 순환형 출자가 거의 없었다. 실제로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의 기본 틀을 지니고 있는 지주회사 체제의 대기업집단의 출자구조는 3.07단계로 비지주회사(5.29단계)들에 비해 훨씬 적었다.

순환출자구조 대기업 늘어나

비지주회사의 출자구도 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구조를 지닌 것은 순환출자구조를 지닌 곳들로 이들 모두 총수 있는 대기업집단에 속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순환출자 대기업집단은 지난해보다 1개사(한솔) 늘어난 14개사였고 순솬출자고리수는 총 124개였다.

지난해와 비교해 계열사간 순환출자구조가 강화된 곳은 롯데, 현대, 현대백화점, 동양, 현대산업개발 등 5개사였다. 롯데의 경우 롯데쇼핑의 롯데알미늄 보유지분이 6.0%에서 12.1%로 늘었고 현대의 경우 현대상선의 현대글로벌 지분이 19.7%에서 24.8%로 증가하는 등 주로 계열사간 지분율 상승에 영향받았다. 동양의 경우 티와이머니대부를 매개로 한 신규 순환출자구조가 형성돼 눈길을 끌었다.

한진과 동부는 지난해보다 순환출자구조가 현저히 약화됐다. 한진의 경우 한진관광을 매개로 하는 순환출자고리가 해소됐고 동부는 '동부증권→동부생명보험'을 매개로 하는 순환출자고리가 사라졌다.

같은 순환출자 대기업집단으로 묶여있지만 그 형태는 판이했다. 현대중공업, 대림, 한라는 최소단위인 3개 계열사만으로 순환출자고리가 형성된 반면 롯데는 롯데쇼핑, 롯데리아, 롯데제과 등 3개사를 중심으로 거미줄식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밖에 한진, 현대백화점, 현대산업개발, 영풍, 한솔 등은 대부분의 순환출자고리가 1개의 주력기업을 중심으로 형성돼있기도 했다.

공정위 측은 "순환출자구조 중 절반 이상이 2008년 이후에 새로 만들어졌다"며 "상호출자규제 회피, 주력회사에 대한 총수의 지배력 강화, 부실계열사 지원 등을 위해 생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