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비리' 한수원 커넥션 정황 문건 입수전현직 직원 34명 친인척 내세워 회사 설립해 리베이트 형식 수익 챙겨검찰 '원전 비리' 수사 급물살MB정부 연루설 주목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비상체제에 들어간 가운데 검찰의 원전비리 수사망이 한수원쪽으로 좁혀지고 있다.

한수원은 지난 7일 신임 사장이 선임될 때까지 전용갑 부사장(사장 직무대행)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경영위원회'를 구성하고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김균섭 전 사장이 불량원전부품 관리의 부실 책임으로 전날인 6일 면직된데 이은 후속 조치다. 원전 비리와 관련, 검찰은 한수원이 원전비리에 연결돼 있다고 보고 원전 납품업체와 커넥션이 있는 한수원 관계자들을 주목하고 있다.

한수원 주변에서는 그동안 검찰이 한수원과 원전 내부비리에 대해 여러 제보와 첩보를 입수하고 비리를 입증할 상당한 정황증거를 확보했다는 말이 나온다. 이에 이른바 '원전 마피아'로 불리는 '그들만의 왕국'이 초토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이런 시점에 최근 <주간한국>은 한수원 비리 정황이 드러난 문건을 입수했다. 이 문건에는 원전에 부품을 납품한 모 업체 주주명단이 담겨있다. 아울러 이 주주들과 한수원 간부들 간의 관계도 드러나 있다. 문건에 따르면 한수원 직원들은 원전부품납품 등을 통해 상당한 사익을 챙겼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주간한국>이 입수한 원전 부품 납품 업체의 주주명단에는 한수원 전현직 직원 34명의 이름이 올라 있다.
검찰 한수원 정조준

문건에는 한수원 직원들이 별도의 법인회사를 만들고 이 회사로 한수원 하청을 받아 처리한 것이 드러나 있다. 이 과정에서 영수 과당계상수법을 사용하거나 내부 직원들이 리베이트 형식으로 수익을 분배한 의혹이 일고 있다.

이 회사의 주주구성을 살펴보면 한수원 직원들과 특수관계인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즉, 한수원 직원들은 자신과 특수관계인 친인척 등을 내세워 회사를 만들어놓고 하청을 받아 수익을 챙겼으며 그것도 모자라 한수원에 리베이트까지 제공한 정황이 있다.

최근 연달아 터지고 있는 한수원 비리 혐의를 들여다보면 이 문건에 드러난 정황에 상당한 무게가 실린다. 이 자료는 2011년 7월 21일자 자료로 현재는 주주명부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당시까지 직원들의 행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증거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 리스트를 보면 당시 현직에 몸담고 있는 한수원 전현직 직원들이 101명 중 34명에 달한다. 이 중 8명은 한수원 모 인사의 아내 친인척, 자녀 명의인 것으로 드러나 있다. S사는 한수원에 벨브 등 주요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로 한수원 관계자들이 차명인을 내세우거나 본인 명의로 주주로 참여했다.

지난 2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원자력발전소 부품 비리를 규탄하고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이에대해 검찰의 한 관계자는 "내부에서 조직적으로 눈을 감아주거나 윗선과의 공감대가 없이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라며 "한수원 뿐만 아니라 원전 관계자들도 주주로 참여한 것으로 미루어 이 회사를 통해 상당한 돈이 움직였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특히 이 문건에서 주목할 점은 S사 주주들 중에는 원전직원 당사자 또는 원전 직원들과 특수관계인도 주주명부에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이럼 점을 감안하면 향후 검찰의 칼날은 원전을 거쳐 한수원 고위관계자들을 겨냥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원전 관계자를 살펴보면 영광원전1계측팀, 신고리2발전팀, 교육원, 고리2 발전팀, 고리2 발전계측제어팀, 고리2 정비팀, 신고리 12 영광훈련센터 등에 근무하는 관계자들이 포함돼 있다.

한수원 관계자들은 차명인 포함 11명이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이 회사는 한수원을 퇴직한 인사가 대주주라는 점에서 의혹이 짙다. 이떻게 한수원과 원전에 근무하는 이들이 직접 이 회사에 주주로 참여하게 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어찌됐든 이 회사가 원전 등에 각종 부품을 납품해온 회사의 주주들이 한수원과 원전 직원들이라는 것은 여러 면에서 석연치 않다.

이 문건대로라면 불량부품문제나 잦은 원전의 이상은 한수원과 원전 내부자들의 합작품인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대형참사가 지금까지 발생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다.

검찰 VS 원전 마피아

원전 부품비리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지난 5일 한국전력기술을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동안 민간 영역인 부품 제조·시험업체에 국한됐던 수사가 한국전력의 자회사로 시험 성적서를 승인하는 기관까지 확대되면서 일부에서는 "검찰 수사가 한수원을 향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원전 부품 제조·시험업체와 한전기술, 한수원이 연결돼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검찰 수사가 갈수록 확대될 것이라는 게 검찰 안팎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전기술에 대한 압수수색은 한수원이 새한티이피와 JS전선 임직원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발한 지 불과 8일 만이다.

이처럼 검찰이 초반부터 수사에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은 새한티이피 임직원 등에 대한 조사와 압수물품 분석 과정에서 원전 부품과 관련한 전반적인 유착 고리가 일부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이 한수원의 여러 비리 의혹을 캐고 있지만 한수원의 비리가 쉽게 드러나지 않고 꼬리만 잡힐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수원 비리는 권력형인 까닭에서다. 한수원의 비리는 MB정부 초기부터 끊임없이 제기됐다.

또 한수원의 비리 배후에는 권력의 그림자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적지 않다. 실제로 한수원 비리 내용을 들여다보면 관계자들에 대한 징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천문학적인 자금이 증발하는 등 미스터리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MB정권의 핵심 실세가 한수원 비리에 연루됐다는 말도 상당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지난 정권 핵심 P씨가 원전 비리에 깊숙이 연관돼 있으며, 원전을 통해 조성된 비자금이 현 여권에 흘러간 것 아니냐는 말도 야권 일각에서 나온다.

사실 한수원과 원전 비리 의혹은 전부터 끊임없이 불거져 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혹들이 제대로 된 수사 한번 없이 은폐됐다. 이번 원전과 한수원에 대한 검찰조사를 두고 일부에서 지난 정권의 비리를 들춰내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보는 이유다.

올 들어 줄줄이 터지는 한수원과 원전 비리 사건을 보면 최근 입수된 문건의 내용은 한수원 원전비리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원전마피아의 비리 의혹이 대부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부품 빼돌린뒤 새것 위장해 다시 납품… 체르노빌·후쿠시마 참사 안 난게 기적



지난 4월 원전부품납품관련 비리 의혹이 불거진 적 있다.

당시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주요 부품을 빼돌린 뒤 다시 새 것으로 위조해 납품한 비리와 관련, 뇌물을 수수한 한수원 간부가 검찰에 추가 구속됐다. 위조된 안전성 시험 성적서를 이용해 100억 원대의 원전 부품을 납품한 업자들도 적발됐다.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3부(부장검사 김욱준)는 부품을 수차례 빼돌린 다음 새 제품인 것처럼 속여 다시 납품한 혐의(횡령 등)로 K사 대표 이모(60·여) 씨를 구속하고 전 한수원 과장 신모(46)씨와 H사 대표 황 모(55) 씨 등 4명을 추가 입건했다. 신씨와 황씨는 다른 납품비리로 지난해 이미 구속된 상태다.

또 검찰은 납품비리를 묵인해 주고 금품을 수수한 혐의(뇌물수수 등)로 한수원 과장 임 모(49)씨를 추가로 구속했다. 신씨와 이씨 등은 2006년 12월부터 2011년 4월까지 저압터빈밸브 부품세트 12대를 빼돌리고 이중 9대를 새 제품으로 속여 납품해 22억여 원을 가로챈 혐의다.

검찰조사 결과 이 씨가 대표인 K사는 신씨의 도움으로 원전 부품 국산화 개발업체로 선정돼 한수원으로부터 1억6,500만 원 상당을 연구개발비로 받아 챙겼다. 그러나 K사는 공장조차 없었으며, 실제론 대기업 P사에 용역을 줘 저압터빈밸브 세트를 만들고 이를 자신들의 것처럼 속여 한수원에 납품했다.

황씨 역시 신씨와 짜고 재킹오일펌프 5세트를 빼돌린 뒤 수리 목적으로 반출된 것과 합쳐, 재킹오일펌프 세트 16대를 새 제품인 것처럼 납품해 4억7,500만 원을 챙긴 혐의도 받고 있다. 한수원 과장 임모(49)씨는 황 씨로부터 1,150만 원을 받고 납품과정에 편의를 봐 준 것으로 조사됐다.

안정성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일당도 검찰에 적발됐다. 검찰은 2008년 3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안정성 시험성적서 167부를 위조해 고리원전과 영광원전에 제출해 30회에 걸쳐 148억 원 상당의 부품을 납품한 혐의(사기 등)로 E사 전무 이모(53)씨 등 2명을 구속했다.

앞서 부산 동부지청은 2011년 10월~2012년 1년 고리 3·4호기에 대한 납품업체 전 직원의 부정납품사실을 수사한 바 있다.

이때 검찰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폐기대상 부품을 반출한 뒤 세척·도색해 신품인 것처럼 재납품해 32억여원을 챙기고 관련 금품 3억여원을 수수한 업체 관계자 등 18명을 적발해 이 중 3명을 구속했다.

또 2012년 12월부터 지난 4월까지 감사원이 한수원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 검찰에 고발한 납품비리 사건도 수사했다. 수사결과 부품을 빼돌려 새제품인 것처럼 부정납품하고 시험성적서를 위조해 납품하는 방식으로 160억여원의 이득을 챙긴 관계자 13명 중 4명이 구속됐다.

그러나 이 같은 비리에 대해 한수원 내부관계자들이 알면서도 그동안 묵인해 오며 비리를 공유해온 의혹이 적지 않다. 이미 원전과 한수원 내부에서 비리를 묵인한 흔적이 드러났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감사원은 지난해 4월 2일부터 6월 26일까지 한수원, 원자력안전위원회,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등을 대상으로 원자력발전소 감사를 벌여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등의 비리 사례를 대거 적발했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같은 해 12월 감사결과보고서 전문 및 보도자료를 홈페이지 등에 공개하기도 했다.

감사원은 당시 원전부품 비리와 관련, 국내 납품업체(2개)에서 87건의 시험성적서를 위조(138개 품목, 966개 부품)해 제출하고 업체들이 납품가액을 높이기 위해 담합 입찰하는 등 부당 행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해당 업체들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한편, 한수원 사장에게 허위 시험성적서류로 납품된 기자재의 품질기준 적합 여부를 검토하고 해당 업체에 대한 제재를 하도록 통보했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결과를 받은 한수원과 검찰 등에서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이번 사태가 발생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