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나라 정책으로 본 '지하경제 양성화'한국조세연구원 보고서OECD 주도… 조세정보교류 강화영국·독일·프랑스 등 금융사 고객 보유계좌 정보 공유 이미 합의

복지재원 마련에 대한 과세당국의 의지가 뜨거운 가운데 미국, 영국, 스페인 등 본격적으로‘지하경제 양성화’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주요국들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사진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강조하는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간한국 자료사진 /연합뉴스
대선 토론 당시 화제가 됐던 박근혜 제18대 대통령의 '지하경제 양성화' 발언 이후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새 정부의 세정 강화가 본격화하고 있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금융거래 정보를 국세청 등 과세당국이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을 위시해 구체적 방안 마련에 부심 중인 것이다. 특히, 독립 인터넷언론 '뉴스타파'에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을 일부 공개하면서 이 같은 분위기가 더욱 달궈지는 모양새다.

사실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개념은 박 대통령이 처음 들고 나온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밀수, 마약, 도박 등 범법 행위를 통해 벌어들이는 돈에서부터 탈세나 조세회피까지 과세대상에서 벗어난 경제활동 전반을 의미하는 '지하경제'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GDP(국내총생산) 대비 25%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채동결 조치, 금융실명제 시행 등을 통해 볼 수 있듯이 탈세와의 전쟁은 역대 정권 수장 대부분이 치러온 오랜 역사인 셈이다.

'지하경제 양성화'의 개념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OECD 국가 대부분이 '지하경제'와의 싸움에 몰두한 지 오래다. 빠른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다른 나라의 정책들을 배우자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OECD 주요 국가들은 어떤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을 펴고 있을까. 이에 대해 최성은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 해외동향' 보고서(이하 보고서)를 통해 미국, 영국, 스페인 등 주요 국가들의 정책들을 살펴보고 어떤 것을 취해야만 하는지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다국적 기업과 개인의 조세회피 및 탈세를 방지하기 위해 OECD 주도 하에 조세정보교류를 강화하고 있다.

OECD는 2002년부터 이를 위한 협정을 주도하고 있는데 특히 영국에서 2009년 열린 G20 회담에서 은행들의 비밀주의 영업에 대한 반대 성명을 대대적으로 발표한 이후에는 조세정보교환협약(TIEA) 가입국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OECD는 조세정보교류 협약을 위한 글로벌 포럼을 보조하는 'Steering Group, Peer Review Group'을 창설해 각국의 조세조약 체결 수, 국내법의 실제 집행능력 등 실제 조세조약 집행 능력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주요국간 자동정보교환협정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비거주자에 대한 과세자료를 상대국가의 요청을 기다리지 않고 정기적으로 일괄 제공하는 자동정보교환협정은 각국의 국내법과 충돌돼 논란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은 금융회사가 보유한 고객 계좌 관련 정보를 자동 공유하는 선까지 이미 합의한 상태다.

스페인 현금거래 한도 제한

그렇다면 주요 국가별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스페인의 경우 '세금포탈 및 지하경제 근절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강력한 시행방안들을 마련한 상태다. 우선 개인사업자 또는 독립계약자와 관련된 모든 경제적 거래에 있어 현금거래 한도를 2,500유로 이하로 제한, 신용기관을 통한 거래를 유도했다. 납세자들의 경우 모든 종류의 주식, 자산, 은행계좌, 부동산 등에 관한 정보를 과세당국에 제공해야 하고 데이터가 누락될 경우 건당 5,000유로 및 최소 1만 유로의 벌금이 부과된다. 이러한 정책을 펼친 결과 스페인은 2012년도에 전년대비 10.1% 늘어난 115억2,000만유로의 세수증가를 이뤄냈다.

그리스는 재정위기 해결책의 일환으로 탈세 처벌 강화 규정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공표된 지표로 월별 모니터링을 통해 실적이 저조한 곳에 대해 처벌을 함으로써 과세당국의 네트워크를 전략적으로 재구성했고 자국민의 해외 예금계좌에 대해 국제적인 협조 및 정보 공유를 통해 추적조사를 강화했다. 고액체납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입법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징수의 효율성을 위해 필요절차를 간소화한 것도 특징이다.

투자가 글로벌화된 미국의 경우 역외탈세를 막고 효과적인 금융정보 수집을 위해 금융기관 내 고객정보를 활용하는 것을 중요시하고 있다. 또한, '해외금융계좌신고제'를 통해 신고되지 못한 소득을 자진 신고할 경우 형사처벌을 약화시켜준 것도 눈에 띈다. 미 정부는 2009년과 2011년에 이뤄진 신고제를 통해 50억달러 이상의 체납된 세금 및 벌금을 거둔 바 있다.

영국에서는 개인 및 기업의 탈세에 대한 종합적인 대응전략을 마련했다. 고위험ㆍ고소득 납세자에 대한 역외자산 파악을 통해 세금 추징을 하고 지역 및 부문별 정보 연계강화로 탈세자의 자진납세를 유도하고 있다. 스위스와 은행계좌 정보 제공 동의협약을 맺어 국세청의 조세회피 추적 기능을 강화하고 조세회피 기업은 공공입찰 참여를 금지시키는 등 강력한 대응책도 마련해놓은 상태다.

상거래 투명화 노력 선행돼야

보고서에 따르면 '지하경제'에는 합법적 부문과 불법적 부문, 금전거래 및 비금전거래 등 상이한 부문과 거래유형이 혼재돼있어 실체와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다양한 추정방식을 통해 볼 때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대략 GDP의 15~25% 수준으로 보인다.

다른 나라들은 과세당국의 징수능력을 강화하고 효율화하는 다양한 조치와 소규모 사업체 및 자영업자들에 대한 납세순응도 제고를 위한 조치, 금융정보 및 업무의 연계 등이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에 우리 또한 불법 활동 영역에서부터 과표 양성화까지 다양한 정책을 고려해야만 한다. 특히, 자영업자의 비중이 높은 것을 감안해 상거래 및 경제활동 투명성을 높이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