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 방중, 한반도 대변화 물꼬 튼다'북핵' 6자회담에 맡기고 '경제' 매개로 교류해야'북한 비핵화'에 몰두하면 남북관계 꼬일 수 있어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27일 베이징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한다.
박근혜정부 들어 남북관계를 비롯 한국-미국-중국-북한 간 관계가 새롭게 형성되고 이들 국가 간 이해관계에 변화 조짐이 일면서 한반도에 대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이명박정부 내내 경색되온 남북관계는 개성공단 사태를 계기로 해빙 모드로 진행되고 있고, 당국 간 회담을 둘러싼 대립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대화 테이블에 마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한미관계는 박근혜 대통령과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한층 향상된 관계가 형성됐다. 미국은 박근혜정부의 대북 정책에 공동의 입장을 취하는 등 양국이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북한의 최대 우방인 중국은 김정은체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데 지원을 하면서도 북한핵에 대해선 강경한 입장을 보여 더이상 '혈맹' 이란 말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과의 유대관계를 증진시키는 행보를 취해 북한에 충격을 주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고위급 회담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려고 하지만 냉담한 반응에 직면해 있다. 다시 발걸음을 중국으로 돌렸지만 별반 소득 없이 돌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달 말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에 이은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와 주변국들의 관계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남북관계가 새롭게 출발하는 모멘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한 조짐은 최룡해 북한군 총정치국장에 이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방중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대화" "북핵 논의를 위한 6자회담" 을 외치며 변화를 꾀하고 있다.

때문에 박 대통령의 방중 및 성과는 한반도 대변화의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한반도 주변국을 비롯 세계가 이번 방중을 주목하는 이유다.

남북관계 담장위를 걷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은 그간 롤러코스트를 탄듯 예측불허의 불안한 관계를 지속해온 남북관계에 분명한 전환점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남-북, 북-중 간에 걸림돌이 된 사안들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북한에 확실한 메시지를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남북관계는 지난 4월 북한이 개성공단 근로자를 철수시킨 데 대해 남한도 공단 입주기업에 귀환 조치를 취하면서 강대강 국면으로 치달았다. 그러던 6월 6일 북한이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 당국간 회담을 열자고 제의하면서 대화의 전기가 마련됐다.

비록 북한이 12일 서울에서 열기로 한 '당국 회담'을 하루 전 일방적으로 취소하면서 무산됐지만 그간의 남북관계에 비춰 크게 진전된 셈이었다.

북한은 당국 회담에 나서는 남한의 수석대표(단장)의 격(格)을 문제삼아 회담을 취소했지만 실제 속내는 다른 데 있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의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지도부는 당국 회담에 임하면서 '북핵'과 '경제' 를 두고 결론을 내리지 못한 터였다.

'북핵'은 비단 남한 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등과의 관계에서도 최대 현안이다. 반면 '경제'는 북한의 당장 시급한 과제이다. 북한은 남한과의 경협을 통해 '경제' 문제를 해소하려고 했지만, '핵'은 포기하거나 양보할 수 없었다.

지금도 북한 내부에선 북핵과 경제를 놓고 당과 군부 사이에 방점을 달리하는 시각이 있지만 여전히 '북핵 고수'가 우세한 상황이다.

북한은 16일 북미 당국 간 고위급 회담을 전격 제안했다. <조선중앙TV>
남북 당국 회담이 무산된 데는 우리 정부의 대북 전략이 미숙한 부분도 작용했다. 정부가 북한의 실무회담 제의에 장관급 회담을 역제의한 것은 남북 회담에서 주도권을 쥐거나 '격'을 고려한 측면이 강하다. 즉, 북한은 당국 회담에서 그들의 현안인 '경제'를 중심으로 한 '의제(agenda)'에 무게를 둔 데 반해 우리 정부는 '모양새'를 중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일 정부가 장관급 회담 역제의 대신 개성공단 문제부터 다루자고 했으면 북한은 바로 달려왔고, 북핵을 제외한 다른 의제들도 일사천리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다.

베이징의 북한 소식통은 "만약 '경제' 문제를 다루자고 했으면 남한이 기대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나올 수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남한이 역대 정부에서 보인 북한의 태도를 바로잡으려고 하는 건 이해하지만 너무 명분에 얽매이면 본질적이고 더 큰 것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중 정상회담이 주목받는 이유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누구보다 주목하고 있다. 북한의 현재와 장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두 국가 정상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북한 영변 경수로 터빈건물
북한이 부쩍 한중 정상회담에 신경을 쓰는 데는 최근 열린 한중 군사회담이 가져다 준 충격도 한몫하고 있다.

한국의 정승조 합참의장과 팡펑후이(房峰輝) 중국군 총참모장 등 한중 군 수뇌부는 지난 4일 오후 베이징 '8ㆍ1청사'에서 한중 군사회담을 갖고 양국의 군사분야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나아가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 안정을 정착시키기 위한 군사분야의 전략적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북한과 중국은 6.25 전쟁을 함께 치룬 '혈맹'을 자부해왔고, 어느 한 국가가 침략을 받았을 때는 군사적 지원을 하기로 돼 있다. 그런 마당에 한국과 중국의 군 수뇌부가 군사회담을 갖고 군사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한 것은 북한에 멘붕(멘탈 붕괴) 상태를 초래할만큼 충격이 컸다. 자칫 북한의 군사기밀이 남한에 넘겨질 수 있고, 북한이 침략을 받아 위기에 처할 경우 중국의 자동 개입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은 지난 5월 22~24일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해 그들의 입장을 분명하게 전한 터였다.

당시 북한은 "핵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만일의 경우 생화학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며 중국을 압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중국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지만 다른 부분(생화학 무기 등)에 대해서는 매우 곤혹스러워 했다는 전언이다.

북한은 남한을 통한 돌파구가 막힌 상황에서 대내외 압박이 강해지자 미국에 고위급 회담을 제의하고,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중국에 보내는 등 해결 방안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모두 냉담한 반응이다. 특히 중국은 예전과 달리 북한과 더욱 거리를 두면서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결국 북한은 시선을 다시 남한으로 향하는 중이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북핵을 제외하고 우리 정부가 '명분'만 제공하면 언제든 대화 테이블에 나서려 하고 있고, 북한이 먼저 대화 제의를 해올 수 있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중국 방문을 계기로 남북관계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 전반에 새 이정표를 세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누구보다 한중 정상회담을 주목하는 이유다.

핵-경제 분리해야 남북관계 풀려

이달말 예정된 한중 정상회담에서 발표될 최대 이슈는 '북한 비핵화'가 될 전망이다.

박근혜정부 대북정책의 근간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서 북한의 비핵화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북한핵에 강경한 입장이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달 북한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과의 면담에서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 공표는 전략적이고, 신중해야 한다는 게 북한 소식통의 전언이다. 북한은 핵에 관한 한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한중 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정면으로 다를 경우 남북관계마저 꼬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과 오랜 무역으로 내부 사정에 밝은 또 다른 소식통은 " '핵과 '경제'를 놓고 당과 군 수뇌부 간에 이견차가 있지만 '핵보유' 의지는 완강하다"며 "두(핵, 경제) 문제를 분리해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북한을 제대로 알고, 북측 고위층과도 교류하는 소식통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북한핵은 6자회담 등 국제관계에 맡기고, 남북은 '경제'를 매개로 산적한 현안을 풀어가는 게 전략적이다.

북한의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이 방중 과정에 이례적으로 '대화'를 거론한 것이나 최근 중국을 방문한 김계관 제1부상이 '6자회담을 포함한 각종 대화'를 통해 핵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한 것은 핵보다 경제에 방점을 두고 있는 그들의 속내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김 제1부상의 방중에 맞춰 한국의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조태용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미국 워싱턴에서 한ㆍ미ㆍ일 3국 6자회담 대표들이 만나 한반도 문제를 논의한 것도 6자회담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박 대통령의 방중에서 '북한 비핵화'가 중요한 의제가 되겠지만 향후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를 고려한다면 북한핵과 경제를 분리해 다루는 것이 전략적이다. 더욱이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원만하게 가동되고 탄력을 받으려면 이념이 배제된 '경제'에서 출발하는 게 현실적이다.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3단계로 대북 인도적 지원→농업ㆍ조림 등 낮은 수준의 남북 경제협력→교통ㆍ통신 등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비전코리아 프로젝트 실현을 밝힌 바 있다.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궁극적으로 남북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건설하고 이를 통해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즉 남북 간 '경제'가 양측 신뢰의 바탕을 이루고 궁극적으로 통일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남북관계는 지난 20년 동안 핵문제가 걸림돌이 돼 경제 활성화를 이루지 못했고, 지금도 발목을 잡고 있다.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핵-경제 분리정책'을 통해 북한을 대화 창구로 이끌어내고 경제협력 및 민간교류 등으로 남북이 공동 발전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이번 박 대통령의 방중은 한중관계를 재정립한다는 의미가 크지만 한반도 및 동북아 신뢰프로세스의 측면도 있다.

따라서 한중회담에서 '북한 비핵화'가 과도하게 부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한중이 북핵 문제를 6자회담에서 다루는 계기를 마련하고, 남ㆍ북ㆍ중 3국이 경제 협력을 통한 공동발전으로 사실상의 '북한 비핵화' 효과를 거두는 방향이 합리적이다.

북한은 한미, 미중 정상회담에 이어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북핵 문제에 공동 입장을 취할 것으로 알고 '대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한 북핵은 포기할 수 없지만 6자회담 등에서 비핵화를 논하는 것은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다시말해 북핵을 6자회담 등에서 논의토록 하고 현실적 과제인 '경제'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북한 김양건 통전부장이 개성공단 근로자를 철수시킨 것은 새로 출범한 박근혜정부와 '경제'를 놓고 통큰 대화를 하자는 '신호'였다. 북한이 개성공단 폐쇄 직전까지 가는 상황에서도 대화창구를 열어놓은 것이나 우리 정부에게 먼저 당국 회담을 꺼내고 서울까지 오겠다고 한 것 등은 그러한 방증이다.

북한은 박 대통령의 방중이 가져올 한반도의 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그러면서 '경제'를 매개로 남북 간 대화의 창을 지속적으로 열고 싶어 한다.

박 대통령의 방중은 다양한 함의와 기대를 지니고 있다. 남북한 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들이 박 대통령의 방중과 그 성과를 주목하는 이유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