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한 곳 줄고, 못한 데 늘고… 최저 등급 기관장 '전전긍긍'한국수자원관리공단… 'E등급→A등급'급등부품납품비리 한수원은 'C등급→D등급'추락기관장 다수 교체 예상

이석준 기획재정부 차관이 18일 오후 세종청사에서 '2012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결과'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획재정부가 최근 '2012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결과'를 발표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국민의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경영 효율성과 책임감을 높이기 위해 1984년 도입됐다. 평가 대상은 공기업 28개사와 준정부기관 83개사 등 총 111개 기관이었다.

이번 기관 평가에선 최고인 S등급이 없었다. 우수등급인 A등급을 받은 기관은 모두 16곳이다. 이어 B등급 40개, C등급 39개, D등급 9개, E등급 7개 순이었다.

A등급을 받은 기관장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반면, 하위 등급을 받은 공공기관들의 표정은 다르다. 거의 사색이 돼 있다. 수장이 교체되는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영평가와 관련해 수위 높은 발언을 한 상황이어서 걱정은 더욱 크다.

리더십 따라 평가 상승

올해 기획재정부가 실시한 2012년도 경영 실적 평가는 '양극화'라는 한마디로 압축된다. 먼저 S등급은 한 곳도 없었다. 우수인 A등급 이상을 받은 공공기관은 전년 17곳에서 16곳으로 줄었다. 반면 하위인 E등급은 전년 1개에서 7개로 늘었다.

A등급을 받은 곳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이다. 지난 2011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최하등급인 'E등급'을 받은 바 있어서다. 당시 직원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추진 중이던 사업은 번번이 저조한 평가를 얻었다.

이런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나선 게 기관장인 양태선 이사장이었다. 육사 출신으로 농림축산식품부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그는 수산자원 연구를 위해 직접 바닷속 45m 지점까지 뛰어드는 등 바다 숲 조성 등 주력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성과는 눈부셨다. 올해 발표된 2012년도 경영평가에서 수산자원관리공단의 등급은 우수인 A등급으로 수직 상승했다. 이는 평가단조차도 깜짝 놀랄만한 결과였다. '변신'을 넘어 '변혁'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선박안전기술공단도 2011년 D등급에서 A등급으로 환골탈태했다. 선박안전기술공단의 경우 부원찬 이사장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선박검사 무료특진 서비스를 실시하는 등 해상 안전성을 제고한 것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항만공사 역시 전국 항만공기업 중 올해 최초로 A등급을 받는 쾌거를 달성했다. 그 배경엔 2011년 취임한 김춘선 사장이 있었다는 평가가 많다. 고유의 '다채널-전방위 회의체계'를 구축해 항구 안팎의 이슈에 직원들이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게 주효했다.

이처럼 진일보한 성적표를 받은 공공기관의 숨은 비결은 뭘까. 기재부는 A등급을 받은 공공기관과 B등급 이하 공공기관의 가장 큰 차이는 '리더십'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좋은 선장을 만나 순항하게 됐다는 것이다.

사실 객관적인 지표만 놓고 보면 경영평가에서 리더십의 비중이 가장 크지는 않다. 경영실적 평가의 항목은 ▦주요사업(45점) ▦경영효율(35점) ▦리더십ㆍ책임경영(20점) 등 3개 항목 아래 18개 지표로 구성된다.

A등급 공공기관들은 대체로 고르게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특히 리더십ㆍ책임경영 항목에서 고득점을 한 곳이 많았다는 게 평가단의 설명이다. 같은 조직이더라도 리더의 역량에 따라 조직 전반의 분위기와 실적이 확연하게 갈리게 된다는 것이다.

등급 떨어진 기관 우려 증폭

A등급을 받은 공공기관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그러나 하위 등급의 공공기관들은 여전히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정부 차원의 제재가 가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감에서다. 특히 전년에 비해 등급이 떨어진 공공기관들은 더욱 그렇다.

가장 근심이 깊은 곳은 한국광물자원공사다. 최하위인 E등급을 받아 2011년 B등급에서 무려 세 단계나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와 대한석탄공사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전년에 비해 한 단계씩 떨어져 E등급을 받았다.

최근 부품 납품비리가 드러난 한국수력원자력은 가까스로 E등급을 피했다. 하지만 2011년 C등급에서 D등급을 한 단계 떨어졌다. 한국가스공사도 저렴한 공공서비스 요금으로 인한 부채로 B등급에서 C등급으로 떨어졌다.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도 기재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앞길이 캄캄하다. 본사 이전 문제를 놓고 지난해 노사간 갈등을 빚은 여파로 기관평가 등급이 B등급에서 C등급으로 하락했다는 분석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2010년과 2011년 연속 우수 등급인 A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평가에서 B등급으로 떨어졌다. 수공은 4대강과 아라뱃길 사업 등 대규모 사업을 떠맡으면서 지난해 기준 13조8,000억원의 부채가 발생한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기재부는 이번에 E등급을 받은 기관이 급증한 게 에너지 분야 공기업의 부진 때문으로 보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에너지 분야 공기업의 국외 투자사업 실적이 부진했고, 일부 기관의 영업실적이 악화했던 점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이번 평가에서 윤리경영과 도덕성에 초점을 맞췄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원전 불량설비 납품 등 정부지침을 위반하거나 도덕적 해이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관의 경우 해당 사실을 평가에 엄중하게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기관장 교체 바람도 예상

경영평가는 신상필벌로 이어진다. 공공성을 지키면서도 효율성을 끌어올린 기관과 기관장에게는 인센티브를 주고, 그러지 못한 기관과 수장에겐 불이익이 돌아간다. 실제 낙제점을 받은 공공기관과 기관장은 월 기본급의 최대 300%인 성과급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무엇보다 공공기관들의 최대 관심사는 이번 평가가 공공기관장 물갈이에 반영될지 여부다. 공공기관장이 자리에서 물러날 경우 후임 인선에는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기관이 선장을 잃고 조직이 장기간 표류하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이번 경영평가를 두고 기관들은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새 정부 들어 첫 경영평가인데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번 평가와 관련해 작심하고 강도 높은 비판을 했기 때문이다. 자칫 칼바람이 몰아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24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공기관도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없는 거나 마찬가지 정도가 아니라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특히 박근혜정부가 정권 초기부터 "국정철학이 맞지 않는 공공기관 CEO를 교체하겠다"고 공언해 온 점도 기관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부분이다. 관가 안팎에선 경영평가 결과가 향후 기관장 물갈이의 가늠자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막무가내식 '칼바람'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관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MB정부 초반 때처럼 일괄 사표를 제출받는 등 무리한 공공기관장 교체 작업이 진행되지 않는 분위기"라며 "인위적인 기관장 교체는 과거에 비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에 투입된 재정지원액 40조원 돌파

지난해 정부가 공공기관에 투입한 재정지원액이 40조원을 넘어섰다.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공공기관에 대한 정부 순지원액은 43조5,499억원으로 전년의 37조2,164억원보다 17.0% 늘었다. 지난해 공공기관 총수입이 541조5,021억원으로 전년(493조5,954억원)에 비해 9.7%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증가폭이 훨씬 가파르다.

공공기관 총수입은 자체수입을 포함해 정부 지원액에 속하는 출연금, 보조금, 부담금, 이전·부대·사업·위탁·독점 수입 등으로 구성된다. 정부 순지원액은 정부가 순수하게 예산과 기금을 들여 지원하는 돈이다. 이 비중이 늘어나는 만큼 공공기관의 자체수입 비중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정부가 2008년부터 공공기관 선진화 작업을 추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순지원액이 대폭 늘어난 것은 최근 한국 경제에서 공공부문의 역할이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일자리 창출, 서민 주택지원, 국가장학금 사업 등 다양한 영역에 재정을 투입해왔다.

순지원액 증가율이 높았던 기관을 보면 기초과학연구원이 1,391억8,000만원으로 전년(74억3,000만원)에 비해 18.3배로 늘었다. 인천항만공사(381억8,000만원)는 5.1배로, 한국석유관리원(130억1,000만원)은 4.6배로 각각 늘었다.

특히 일자리·복지 정책 관련 기관에 대한 지원이 대폭 늘었다. 한국잡월드는 2011년 3억2,500만원의 순정부지원액을 받았지만 작년에는 69억원을 받아 21.2배로 늘었다. 한국장학재단에 대한 순지원액은 7,135억9,000만원에서 1조9,319억1,000만원으로 2.7배로 증가했다.

원자력 관련 기관에도 정부지원액이 상당히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는 지난해 791억5,000만원의 순지원액이 들어갔다. 전년 대비 9.0% 늘어난 수치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는 1,255억1,000만원,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에도 194억8,000만원이 지원돼 각각 8.0%, 9.6% 확대됐다.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에는 전년보다 21.8% 늘어난 2,243억3,000만원이 투입됐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