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시 공무원이 위험하다고시 출신 공무원 자살 파문 '힘 없으면 세종시로…' 자조80% "삶의 질 하락"별거 늘고 이혼 위기 등 일부 가정 붕괴 현상도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각종 생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촉망받던 행정고시 출신의 5급 여성 공무원이 서울 도심의 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6월 16일 낮 12시 30분쯤 마포구 도화동의 한 호텔에서 중앙부처 행정사무관 김모(31)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는 홀로 투숙했으며 호텔 메모지에 남편과 한 지인의 이름을 언급하며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기관과 관련해 발생하는 사건이 대부분 그렇듯이 당시 이 사건은 일부 언론에 조그만 단신 기사로 보도돼 내용을 아는 이들이 거의 없다.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 단순 개인사건에 불과한 듯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공공기관의 심각한 문제를 그대로 담고 있다. 다름 아닌 세종시 문제다.

행시 51회 출신인 김씨는 올해 기획재정부의 모 부처로 발령나 가족과 떨어진 채 세종시에서 근무했다. 김씨는 주말을 맞아 서울에 있는 가족을 찾았고 평소와 똑같이 집을 나선 뒤 이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의 남편도 중앙부처의 사무관이다.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김씨가 근무하는 근무처를 중심으로 뒷말이 무성했다. 이를테면 기러기 부부가 된 이후 여러 문제가 겹쳤다거나 원치 않는 근무지에서 일하는 스트레스에 힘들어 했다는 것 등이다.

이처럼 세종시로 근무지를 옮긴 공무원들이 여러 가정사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적지 않지만 정부는 이 부분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불만을 드러낼 수 없는 처지다.

힘ㆍ배경 없으면…

모 부처에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얼마 전 세종시로 내려가는 문제를 두고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맞벌이를 하며 노모와 함께 생활하는 A씨는 세종시로 내려가게 될 것 같다는 인사 담당자의 말을 듣고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A씨는 "어느 날 세종시로 가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앞이 막막했다. 80세에 가까운 노모를 모시고 사는데 내가 내려가게 되면 아이들과 노모를 아내 혼자 챙겨야 한다"며 "아내의 직업상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데 그렇다고 못 내려가겠다고 버틸 수도 없어 심경이 복잡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공무원은 A씨뿐만 아니다. 수도권의 모 기관에 근무한 B씨도 눈물을 머금고 세종시로 가야 했다. 그는 노부모와 함께 생활하며 사실상 집안을 책임지고 있다. 어머니가 건강문제로 병원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에 세종시로 내려가게 돼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방법이 없었다.

이들 외에 세종시에 근무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근무지를 옮겼다. 이를 두고 공무원들 사이에선 힘없고 배경 없는 이들만 세종시로 간다는 말이 적지 않다. 상부에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거나 학연 지연 등 배경이 좋은 이들은 대부분 세종시로 내려가지 않고 희망근무지에서 계속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공무원 K씨는 "같이 근무하던 L씨는 자신이 세종시로 내려가게 될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던 중 든든한 배경이 있는 이들은 여러 수단을 동원해 세종시를 피해갔다는 말을 듣고 허탈감에 빠졌다"며 "세종시로 가게 된 이들은 이런 내용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며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씨가 운명을 달리했을 때 근무처와 경찰은 관련 사건을 최대한 신속히 수습하는 한편 사건이 퍼지지 않도록 주변단속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시에 근무하게 될 이들에게 악영향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세종시에는 아직 편의시설을 비롯해 방범보안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공무원들 특히, 여성공무원들은 해가 떨어지면 거처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아예 못한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평일에는 사무실과 집만 오가고 주말에 서울로 올라가기 바쁘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벌써부터 세종시 공무원 사이에서는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으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공무원 가정 붕괴 현상도

세종시로 이주한 공무원 중에는 가정이 휘청거리는 이들도 있다. 떨어져 살게 되면서 가사분담이 사실상 불가능해져 부부간의 갈등이 깊어지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현재 세종시에 근무 중인 Y씨는 아내와 별거상태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Y씨는 "아내와 사이가 벌어지면서 이제 주말에 집에 올라가지도 않는다. 별거 중인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돼 버렸다"며 "집안 문제로 아내와 다툼이 좀 있었고 맞벌이인 탓에 가사분담 문제로 의견충돌이 심했다. 내가 세종시로 오면서 아내가 더 이상 못 살겠으니 헤어지자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Y씨와 형편이 비슷한 이들은 더 있다. 역시 세종시에 근무 중인 P씨는 형제들과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P씨는 부친이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해 장기요양 중이다. 하지만 그가 세종시로 내려오면서 그의 아내와 자녀들도 세종시로 옮길 계획이다. 문제는 형제들이 "온 가족이 다 세종시로 가면 아버지 간병은 안 하겠다는 것이냐"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P씨는 고민에 빠졌다. 아내는 떨어져 생활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있어서다.

정부는 아직 이런 부분에 대해 뚜렷한 대책이 없다. 또 세종시 공무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내부적인 불만이나 여러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태도다. 공무원들은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직장 내에서 문제적 인물로 낙인찍히는 게 두려워 쉬쉬하고 있는 분위기다.

한편, 현재 세종시로 이전한 공무원 대부분은 아직도 청사 근무여건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을뿐더러 세종시에서의 삶의 질이 나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최근 국무조정실이 세종시 이전공무원을 대상(4,700여 명)으로 전수조사한 결과다. 이에 따르면 세종시 이주공무원 10명 중 7~8명은 수도권에서의 삶과 비교할 때 세종시에서의 삶의 질이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세종청사 근무여건 개선정도를 묻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응답한 공무원이 과반수에 미달, 지난해 이전 당시와 비교해 근무여건이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세종청사 근무여건 개선도는 43.3%가 '비슷하다'고 답했고, '나빠지거나 매우 나빠졌다'고 응답한 공무원도 9.9%, 4.4%에 달한다. 반면 40.0%는 '개선됐다'고 했고, 2.4%는 '매우 개선됐다'고 밝혔다.

수도권에서의 삶과 비교했을 경우 세종시 삶의 질 만족도는 38.2%가 '나빠질 것'이라고 했고, 40.5%는 '매우 나빠짐'이라고 답해 이전 공무원 78.7%가 세종시에서의 삶의 질을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좋아지거나 매우 좋아질 것'이라고 응답한 공무원은 20%에 불과했다. 전체 응답자 중 11.3%는 수도권과 세종시에서의 삶의 질이 비슷할 것이라고 했다.

주중 세종권에 거주하는 공무원은 4,000여 명(77%)에 달하고 평일 수도권 출퇴근 자는 1,200명(23%)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종권 거주자 중 43%는 주말이면 집으로 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