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원 발 '제2의 촛불정국' 오나NLL 대화록 공개 기름 부어민주 '배후 밝힌다' 총공세… 검찰, 원세훈 특별팀 구성정권 핵심 줄사퇴 가능성

지난달 25일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앞에 모인 대학생들이 국정원 정치개입 규탄 촛불집회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인 2008년 정국을 뒤흔들었던 촛불에 다시 불이 붙었다. 현재로서는 이 촛불이 얼마나 늘어날지 예상키 어렵지만 제 2의 촛불정국이 올 가능성에 점점 무게가 실린다.

2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결집해 국가정보원의 선거 및 정치 개입을 규탄하는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면서 그 세가 점점 확산되는 분위기다. 시국 선언도 확산일로다. 국정원 선거개입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는 대학교수와 대학생 등의 시국선언도 이어지고 있다.

KAIST 학부 총학생회는 지난 6월 27일 성명을 내고 "정치권은 조속히 국정원 사태를 규명하기 위한 국정조사를 벌여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한국진보연대와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진보단체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이들은 이날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시국회의를 열고 209개 시민·사회단체 명의로 국정원 사태 규명과 국정원 개혁을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또 이들은 공동 운영위원회를 결성하고 다음날인 28일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국민촛불'을 진행했다. 무엇보다 이날 시국회의를 개최한 한국진보연대 등의 단체들이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경찰과 정치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국회의에 참가한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은 "자발적으로 시민들이 모이는 추이를 보면서 '촛불'들이 모일 수 있는 최소한의 계기를 마련하자"고 제안했고 한국진보연대 오종렬 의장은 "국정원장이 대통령의 명령만을 받는 만큼 국정원장이 한 일은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NLL파문 촛불정국에 기름

국가정보원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 공개에 대한 파장이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NLL대화록 공개에 따른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이 지난해 대통령 선거일 이전에 대화록을 입수하고 이를 선거에 이용하려 했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여야 양측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대화록 대선 전 입수' 의혹과 관련해 새누리당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대화록 사전 입수설을 적극 부인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NLL(북방한계선) 포기 발언을 덮으려는 민주당의 무책임한 폭로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야권 공세에 맞서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민주당은 대화록 입수 과정의 위법성 및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커넥션' 의혹을 제기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국정원장의 해임까지 요구하고 있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상임위간사단·정조위원장단 회의에서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NLL 포기 발언 논란은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짠 시나리오라고 주장하며 정치쟁점화하더니 이제는 한 술 더 떠 관련 음성파일 100여 개를 확보하고 '그 뒤에 누가 있다'고 음모론을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남북정상회담 내용의 진위는 덮어놓고 공개 절차와 부당성을 제기하면서 대선의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민주당의 작태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화록 사전 입수 의혹의 당사자인 김무성 의원은 지난해 12월 14일 부산 유세 발언이 최근 공개된 대화록 전문의 내용과 거의 일치하는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왜 그리됐는지 모르겠다. 흡사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새누리당의 대응에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새누리당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수사를 덮으려 무리수를 뒀다"는 시각이다.

원 전 원장에 대한 검찰수사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내자 야권은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이에 새누리당은 국정조사를 받아들인다면서 갑자기 NLL대화록 공개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를 두고 야권에서는 "원 전 원장 수사와 관련해 감출 게 없다면 NLL대화록 공개 카드를 꺼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NLL카드를 꺼낸 것은 원 전 원장 수사에 대한 청와대 검찰수사 개입 의혹에 무게를 싣는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시각은 야권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시민단체 등도 여기에 동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여권의 행보를 두고 "NLL공개는 박근혜 정부의 정치수준이 얼마나 구태에 젖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이 예"라고 지적한다. NLL카드가 정치적으로 어리석은 판단이었다는 이야기인데, 대화록의 진실여부를 떠나 나의 잘못을 덮기 위해 상대방의 잘못을 들추는 비열한 행위라는 비난이 그것이다. 말하자면 박근혜정부가 민심을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이 원 전 원장에 대한 국정조사 관철을 위해 또 다른 카드를 꺼내들 것이라는 소문이 정치권에 퍼지고 있다. 아직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일부에서는 MB정권 당시 국정원에서 수집한 박근혜 관련 파일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외에 친박계 핵심 인사가 연루된 원 전 원장의 비리 의혹이 불거질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정권 핵심 줄사퇴 조짐도

NLL공개 파장에 뒤따르는 의구심은 날로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왜 NLL대화록 공개를 추진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새누리당이 원 전 원장을 보호하기 위해 맞불작전을 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다시 맞불을 놔야 했던 이유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원 전 원장에 대한 검찰조사가 시작되면서 검찰 주변에서는 심상치 않은 소문이 돌았다. 그것은 "원 전 원장이 검찰 진술에서 박근혜정부에 치명적인 내용을 진술했으며 해당 내용이 청와대에 보고됐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원 전 원장이 MB정부 당시 최장수 국정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알게 된 박근혜 대통령의 정보와 친박계 인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치명적 정보로 청와대를 겨냥하고 있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이 소문의 진위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최근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움직임을 보면 떠도는 소문이 일부 사실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원 전 원장 검찰수사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과 검찰 내부 동향을 퍼즐 맞추기 해보면 이렇다.

검찰은 원 전 원장 수사와 관련해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수사과정에서 검찰은 원 전 원장에 대해 구속수사로 가닥을 잡았다. 이 시기 검찰 주변에서 "검찰이 원 전 원장으로부터 '박근혜정부의 치명적 비밀을 공개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이를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찰 내부에서 동요가 감지됐고 이는 한 언론의 보도로 구체화 됐다. 원 전 원장을 조사하고 있는 특별수사팀의 윤석렬 부장검사가 지휘부에 불만을 토로하며 윗선의 압력이 있음을 암시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파장이 확산되자 검찰은 '사실무근'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정치권에서는 청와대와 여당의 수사개입에 심증을 굳힌 뒤였다. 검찰 소식통의 말을 들어보면 여당의 핵심인사와 청와대 실세들이 만나 검찰수사에 대한 의견을 나눴으며, 검찰 수사는 채동욱 총장이 아닌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사실상 지휘했고 이 때문에 검찰 내 반발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검찰수사에 영향을 끼쳤다는 소문에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일절 부인했지만 최근 여야가 원 전 원장에 대한 국정조사 추진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소문에 무게를 싣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이 바로 새누리당의 NLL대화록 공개 제안이다.

과연 새누리당은 어떤 목적으로 그 같은 제안을 했던 것일까.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맞불작전'으로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맞불작전이 실패한 작전, 즉 '어리석은 판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대체 무슨 생각으로 NLL대화록 공개 카드를 꺼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NLL대화록 공개 책임자 사퇴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이번 발언록으로 노 전 대통령을 향해 지나친 비판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밝혀 주목을 끌었다.

6월 26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국회부의장을 지낸 정의화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한 발언은 문제가 굉장히 크고 심히 유감스럽지만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한 것도 국익에 손상 줄 수도 있는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남경필 의원도 이날 회의에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가 국익에 부합했는지에 대해선 심각한 의문을 갖고 있다"며 "앞으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 의원은 "이번 국정조사를 통해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을 추방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 의원은 국정원의 회담록 공개 후인 같은 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문서가 공개되면 노무현의 반애국적 발언이 드러나 민주당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한 새누리당 지도부, 사자의 명예훼손을 국가의 이익보다 더 중시하여 문서 공개하자고 제안한 문재인 의원, 사본이 아니라 원본과 녹취록을 공개하자고 한술 더 뜨는 민주당 의원들, 자신에 대한 정치적 공격을 막아보려고 국가의 이익을 훼손하며 공개를 결정한 국정원, 이를 제어하지 않고 방치한 청와대. 나라가 온통 뭔가에 씌운 것 같다. 정말 제 정신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NLL대화록 공개 파문과 맞물려 촛불시위가 확산되고 있어서다. 정치권 공방과는 별도로 국민적 움직임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촛불시위가 점점 확산되는 분위기가 되면서 새누리당은 결국 국정조사에 합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정조사안이 통과되면 정가에는 또 다시 초대형 쓰나미가 불어 닥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NLL대화록 공개 책임자와 검찰수사 개입인사에 대한 퇴진 여론도 거세질 전망이다. 야권에서는 벌써 NLL공개와 관련, 국정원장 사퇴 등 공개 책임자에 대한 퇴진 압박 여론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은 '집권 후 대화록 폭로' 발언을 한 것으로 의심하는 권영세 주중대사와 김무성 의원을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키로 하는 한편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채택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회의에서 권 대사와 김 의원을 거명하며 "대화록 공개를 둘러싼 공작적 행태에 대해 분노를 억누를 수 없다"며 "끝까지 대화록 불법 공개의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전 원내대표는 특히 "국정원과 새누리당의 공모 행각이 양파껍질처럼 벗겨지고 있다"며 "민주당은 국민과 천인공노할 범죄커넥션의 배후와 몸통을 밝히겠다"고 강조해 향후 2라운드를 예고했다.

한편 청와대 핵심 실세들이 원 전 원장 수사를 덮으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 핵심들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권영세 대사가 지목되고 있다.

권 대사는 경찰에 수사결과 발표를 서두르도록 종용한 의혹을 사고 있다. 대선 열기가 한창이던 지난 2012년 말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터지고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권 대사가 박원동 당시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을 통해 김 전 청장에게 수사결과발표를 서두르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 의혹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는 권 대사와 박 전 국장 그리고 김 전 청장 모두 국정원에서 한솥밥을 먹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특히 권 대사와 박 전 국장은 가까운 관계이고 박 전 국장은 김 전 청장과 가까운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권 대사-박 전 국장-김 전 청장 사이의 커넥션이 수사결과 발표에 상당한 작용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권 대사는 "할 말은 많지만 대통령의 방중 이후 사실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들은 침묵하거나 무관함을 강조했다.

NLL 대화록과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둘러싼 여야 간 힘겨루기는 10월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