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DI, 정년연장 법안 통과 이후 남은 과제

정년연장 법안이 통과된 이후에도 일선에서는 여전히 기업 인건비 증가, 청년 고용 하락 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2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정년연장법안을 심사ㆍ논의하는 모습. 오대근기자
오랫동안 노사문제의 주요 쟁점으로 자리 잡았던 정년연장 법안이 통과되며 해당 법안이 가져올 파장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법 개정으로 중고령 노동력 활용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기업의 노동비용 증가, 청년의 신규채용 축소 등 악영향에 대한 우려도 상당하다. 이에 한국개발연구원(KDI) 황수경 연구위원은 '정년연장 법안 통과 이후 남은 과제' 보고서(이하 보고서)를 통해 전망과 과제를 짚어봤다.

60세 정년 법으로 보장

60세 정년 보장을 골자로 하는 정년연장 법안은 4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5월 22일 관련 법(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 이에 따라 60세 정년이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의무화되게 됐다.

해당 법에 따르면 우선 강제력이 없던 기존의 60세 정년 권고조항을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여야 한다"는 의무 조항으로 대체하고(제19조 1항) 벌칙 등의 이행강제규정 대신 "정년을 60세 미만으로 정한 경우에는 정년을 60세로 정한 것으로 본다"는 의제규정을 두어(제19조 2항) 60세 정년의 실효성이 보장되도록 했다. 이에 사업주가 60세 미만의 연령을 정년으로 설정하고 근로자를 해직한다면 근로기준법상 부당해고로 간주될 예정이다.

또한 정년연장 시 고용기간이 연장되는 근로자의 임금조정이 함께 이뤄질 수 있도록 정년을 연장하는 사업체는 노사 간에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제 19조의2)고 명시된 것도 눈에 띈다. 이러한 조치를 취하거나 취하려는 사업체에 대해서는 고용지원금, 임금체계 개편 컨설팅 등 필요한 지원이 이어질 전망이다.

기업 인건비 ↑, 청년 고용 ↓

정년연장 법안이 현실로 다가오며 그에 따른 우려들도 덩달아 제기되고 있다. 기업의 인건비 상승, 청년층의 고용 하락, 정년 당사자 간의 간극으로 인한 불만 가중 등 쟁점의 종류도 다양하다.

정년연장의 가장 큰 쟁점은 중고령 근로자의 고용유지에 따른 비용상승 문제다. 경쟁적 노동시장에서는 근로자의 임금이 개인의 생산성을 반영해 결정되기 때문에 중고령 근로자의 고용기간이 연장되더라도 기업에 추가적인 비용부담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기업의 임금이 내부노동시장에서 독립적으로 결정되고 연공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연공임금은 기업이 근로자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해 젊었을 때는 생산성보다 낮은 임금을, 장기근속자에게는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제공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가질 때 채택된다. 기업은 장기고용관계를 기반으로 근로자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가능해지며,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과 더불어 안정적인 근로생애의 설계가 가능한 임금체계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러한 연공임금에 대한 문제점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생산의 주기가 단축되고 기술 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전 생애에 걸친 임금 상승과 생애에 걸친 생산성 상승 간의 괴리가 증폭되고 있다. 이는 임금의 경직성으로 이어져 기업으로 하여금 비정규직에 대한 수요를 더욱 증가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가파른 연공급적 임금체계가 근로자의 전반적인 고령화와 맞물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크게 증가시키는 점도 눈에 띈다. 실제로 젊은 근로자에 비해 중고령 근로자가 더 많은 기업이라면 기업은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초과하는 인건비 부담을 감수해야만 하는데 이 경우 기업은 다양한 형태로 중고령자의 조기퇴직을 유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장기고용관계가 예상되지 않을 때 연공급적 임금체계가 근로자의 생산성이나 동기부여를 하지 못하면서 근로자 간 임금 배분을 왜곡시키고 조직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제대로 된 정년연장을 위해서는 임금체계 개편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또 하나의 굵직한 쟁점은 정년연장이 중고령자의 고용연장의 대가로 청년층의 고용기회를 빼앗을 수도 있다는 문제다. 물론 중고령자 고용과 청년 고용 간의 뚜렷한 상관관계를 밝히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개별 기업의 관점에서 보면 정년연장으로 신규 채용규모를 조정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전체적으로는 고령자 일자리와 청년층 일자리가 상이하지만 공기업, 대기업과 같은 양질의 일자리에서는 부분적으로 일자리의 세대 간 경합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일자리는 대부분 정년연장의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년연장과 관련한 마지막 쟁점은 수혜자와 비수혜자 간의 형평성 문제다. 이번 60세 정년 보장의 수혜자는 당연히 정년제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에 한정된다. 기업에 아예 정년제도가 없거나, 정년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계약직 등 비정규직 근로자는 원천적으로 수혜대상이 될 수 없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정년연장 법제화의 최초의 수혜자가 될 베이비붐 세대의 대부분이 이미 안정적인 직장에서 퇴출당했거나 장기근속과는 거리가 먼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정년제도에 의존해 중고령자의 고용안정을 도모하려는 정책은 매우 제한적인 의미만을 갖게 된다.

연공급적 임금체계 개편 우선돼야

그렇다면 정년연장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떤 보완책이 뒤따라야 할까? 가장 먼저 정년연장이 연공급적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것과 병행해 추진되도록 해야 한다. 임금조정이 병행되지 않을 경우 노동시장의 비효율, 세대 간 갈등, 양극화의 심화 등 제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까닭이다.

실제로 지난 5월 30일 열린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는 60세 정년제도의 연착륙을 위해 개별 사업장 여건에 따라 임금피크제, 임금구조 단순화 등 임금체계 개편에 협력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다만, 일선 기업에서 임금체계 개편을 두고 노사 간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적지 않으므로 정년연장 시행 전 임금체계 조정과 관련해 노동위원회의 조정 및 중재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법 개정의 한계도 명확하다. 2016년 이후부터 60세 정년을 의무화하는 경우 여전히 연금공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2013년 현재 국민연금의 연금수급연령은 61세이고 5년 후인 2018년이면 다시 62세로 한 살이 증가한다. 즉, 연금수급연령이 되기 전에 연령에 의한 강제퇴직을 국가가 인정하게 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에 중장기적으로 강제퇴직제도로서의 정년제도를 임의적, 사회적 정년제도로 개편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할 전망이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