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가 비운의 황태자들

故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은 2003년 '현대 비자금'관련 검찰 수사를 받던 중 투신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정주영 창업주 다섯째 동생 신영씨 교통사고 시작으로
장남 정몽필씨 교통사고변… 4남정몽우 우울증 음독
5남정몽헌 특검 도중 투신

이병철·정주영 창업주 차남 아들 모두 극단 선택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도 교통사고로 장남 잃어

최근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차남 최모씨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재벌가 비운의 황태자들이 새삼 회자되고 있다. 더욱이 지난 2010년 자택에서 투신 자살한 이재찬 전 새한미디어 사장이 최 전 회장의 사위여서 재벌가의 불운한 가족사도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재벌가 자녀들은 대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승승장구하지만 그렇지 못하거나 명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현대가ㆍ삼성가ㆍLG가ㆍSK가 등 국내서 내로라할 재벌집안 대부분은 가족을 가슴에 묻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사고나 병사, 자살 등 사연은 다양했다. 특히 재벌가에서 금지옥엽으로 키운 '황태자'를 먼저 보내야 했던 경우는 가족들의 슬픔과 함께 경영 구도와 후계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대체 어느 재벌 가문의 누가 이런 비운을 겪었을까.

故 정몽필 인천제철 사장
최원석 회장 차남 물놀이 중 익사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차남 최모씨가 지난 6일 경기 가평군 설악면 미사리 홍천강에서 익사했다. 최씨는 이날 별장에 딸린 선착장에서 물놀이를 하러 물에 뛰어들었다가 변을 당했다.

최씨는 지난 2011년 3월부터 학교법인 공산학원의 이사를 맡아 이사장인 최 전 회장과 함께 동아방송예술대학을 이끌어 왔다. 그의 나이는 올해로 36세. 기업인으로서 한창 일할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최 전 회장은 아들의 사망 소식에 심신을 잃고 응급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들인 최씨는 모친과 최 전 회장과의 이혼, 이후 대립 관계에서도 줄곧 부친 편을 들어 최 전 회장이 가장 아끼던 자식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최 전 회장이 소문으로 들리는 비자금으로 재기할 경우 최씨가 전면에 나서게 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현대가 4명, 삼성가 3명 요절

1982년 故 정몽필 인천제철 사장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사고현장
재벌가 자손의 수난사는 비단 동아그룹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로라할 재벌그룹 대부분이 아물지 않는 상처를 한둘씩 안고 있다. 특히 현대가에 불운이 집중됐다. 사고와 질병, 자살 등으로 집안에서 모두 4명이 비명횡사했다.

그 시작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다섯째 동생인 고 정신영씨다. 신영씨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 중이었다. 그러던 1962년 신영씨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장폐색으로 32세에 돌연 세상을 등졌다.

정 창업주는 6형제 중에서 신영씨를 가장 아끼고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그만큼 정 창업주의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일에서 손을 놓은 적이 없던 정 창업주는 슬픔에 잠겨 일주일 동안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비운은 이어졌다. 1982년 정 창업주의 장남인 정몽필 전 인천제철 사장이 교통사고로 49세에 유명을 달리했다. 새벽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중 경부고속도로상에서 트레일러 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정몽필 전 사장은 당시 일본에서 귀국하는 정 창업주를 마중하기 위해 공항으로 가던 길이었다고 한다. 정 창업주로선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장남을 잃은 정 창업주는 "하늘이 나를 버렸다"는 말로 주위에 비통함을 전했다고 한다.

故 이재찬 전 새한미디어 대표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인 1990년 현대가에 또다시 비보가 날아들었다. 정 창업주의 4남 인 정몽우 전 현대알미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당시 45세이던 몽우씨는 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서울 강남 역삼동 모 호텔에서 음독자살했다.

악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정 창업주의 5남인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이 2003년 '현대 비자금' 관련 검찰의 수사를 받던 도중 서울 계동 본사 12층 자신의 사무실에서 창문을 열고 투신한 것이다. 정 창업주의 뒤를 이어 대북 사업 바통을 이어받았던 그의 자살은 세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삼성가에도 가슴에 묻은 가족들이 적지 않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차남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이창희 전 회장은 1991년 백혈병으로 미국에서 치료 중 58세의 아까운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그의 둘째 아들인 이재찬 전 새한미디어 사장도 46세의 젊은 나이로 아버지 곁으로 갔다는 점이다. 한때 전도유망한 젊은 기업인으로 불렸던 그는 2010년 자신의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유서가 발견되지 않아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2000년 무렵 새한미디어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경영권을 잃고 회사를 떠나 별다른 수입 없이 지냈다는 점과 연관 짓는 시선이 많다. 재벌로 살다가 사업에 실패를 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대우그룹 장남 故 김선재씨
쌍용·LG·대우·롯데도…

쌍용가 김지강씨도 2011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자신의 오피스텔 화장실에서 문고리에 목을 맸다. 자살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재계는 사업실패가 이유일 것으로 조심스레 추측하고 있다.

당시 34세이던 지강씨는 쌍용그룹이 잘 나가던 시절 미국에서도 학비가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버몬트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외환위기(IMF) 당시 경영난을 겪은 쌍용그룹이 1997년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암운이 드리웠다.

지강씨는 그룹 해체 직후 학업을 중단하고 휴학했다. 이후 국내로 들어와 2002년 기획이벤트와 쇼핑몰 회사인 동아시아회사를 창업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특별한 직업 없이 투자활동을 해 왔으나 번번이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1990년 장남 선재씨를 잃었다. 선재씨는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로 23세에 요절했다. 특히 선재씨가 사고를 당한 이유가 미국을 방문하기 위해 공항에 도착한 어머니를 마중하러 나가던 길이어서 김 전 회장 부부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김 전 회장 부부는 선재씨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이듬해 아들의 이름을 딴 선재미술관을 설립했다. 김 전 회장 부부는 1994년 "인기탤런트 A씨가 선재씨를 닮았다"는 이유로 양아들을 삼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전 회장 부부는 특히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된 이후에도 선재씨의 유골이 안치돼 있는 안산별장을 2000년까지 매각하지 못하는 등 유난히 강한 집착을 보였다. 그러나 해당 별장이 감추어진 부동산으로 전해지면서 현재 선재씨의 유해는 다른 곳으로 옮겨진 상태다.

롯데가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넷째 동생인 신준호 롯데우유 회장은 장남 고 신동학씨를 잃었다. 동학씨는 2005년 여행차 태국에 방문했다 한 콘도 베란다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두산가에서는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2009년 11월 자살, 재계에 충격을 가져왔다. 박두병 두산그룹 창업주의 차남인 박 전 회장은 지난 2005년 '형제의 난'으로 두산가에서 제명당한 뒤 사업에 실패하고, 차남인 박중원씨가 사기죄로 구속되는 등 악재에 시달리다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했다.

SK가에선 유독 폐암으로 인한 병사가 많았다. 먼저 최종건 SK그룹 창업주가 1973년 48세의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타계했다. 이어 2대 회장을 맡은 최종현 전 회장도 68세가 되던 1998년 폐암으로 천수를 누리지 못했다. 여기에 창업주의 장남인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도 지난 50세이던 2000년 폐암으로 숨을 거뒀다.

대개 동급의 재벌가와 사돈


■ 비운의 황태자 혼맥은?

송응철기자

재벌가 비운의 황태자들은 대게 화려한 혼맥과 연결돼 있다. 물론 평범한 집안과 혼인한 경우도 있지만 드문 경우다.

최근 물놀이 하다 사망한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차남 최모씨는 비교적 보통 가문 출신의 아내를 맞았다. 반면 최 전 회장의 딸 선희씨는 삼성가와 인연을 맺었다. 삼성 이병철 창업주의 차남 창희씨의 둘째 아들인 이재찬 전 새한미디어 사장과 결혼한 것. 그러나 이 전 회장은 2010년 자택에서 투신 자살해 가족과 최 전 회장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

현대 정주영 창업주의 장남 정몽필 전 인천제철 회장은 50세도 안돼 사망했는데 둘째 딸 은희씨는 쌍용양회 김석원 명예회장의 장남 지용씨와 결혼했다. 반면 김 명예회장의 차남 지강씨는 2011년 자살, 부모에 큰 상처를 남겼다.

현대 정 창업주의 넷째 아들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은 45세의 나이로 자살, 남겨진 유족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돌봤다. 몽우씨의 장남 일선씨는 LG가 구자엽 가온전선(옛 희성전선) 부회장의 딸 은희씨와 인연을 맺었다. 차남 문선씨는 김영무 김&장 법무법인 대표변호사의 딸 선희씨와 결혼했다.

정 창업주의 5남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은 2003년 서울 계동 사옥에서 몸을 던졌다. 부인 현정은 현 현대그룹 회장은 현영원 전 신한해운 회장 딸이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