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거용역업계 대부, 1000억원대 횡령 사건 전말'원조대부' 계보 이어 서울 철거사업'싹쓸이'… 2000년대 들어 사업 확장측근 동원해 968억 횡령 세무공무원에 로비

검찰에 따르면 다원그룹 회장 이씨는 2006년부터 자신의 측근들을 동원해 폐기물업체를 포함한 계열사들과 서로 허위 세금 계산명세서를 발행해 주거나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등의 수법으로 회사돈 968억원을 횡령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최근 '철거용업업계의 대부'로 통하는 다원그룹 이모 회장이 거액의 회삿돈을 횡령하고 달아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와 관련해 수원지검은 지난 14일 사건에 개입된 이 회장의 측근이자 자금담당 김모씨 등 직원 4명을 구속 기소하고, 계열사 대표 정모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정작 범행을 주도한 이 회장과 동생에겐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다. 수사가 시작되자 황급히 몸을 감췄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철거업, 부동산 개발 시행사, 골프장 등 13개 계열 기업을 운영하는 다원그룹의 실질적 사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검찰에 다르면 이 회장은 2006년부터 최근까지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등의 수법으로 빼돌린 회삿돈이 무려 1,000억여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간의 관심은 이씨의 정체가 무엇이고, 어떻게 회삿돈을 어떻게 횡령했으며, 어디에 사용했는지에 모이고 있다.

철거업체 대부 이씨 누구?

이 회장은 1990년대 '철거용역업계의 대부'로 불리며 큰 재산을 축적한 인물이다. 국내 최초의 철거용역업체는 1986년 설립된 입산개발이다. 여기서 분화된 용역들이 1990년 적준개발을 세웠다.

천주교인권위, 인권운동사랑방, 민변 등 12개 단체가 참여한 '다원건설(구 적준용역) 사법처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적준은 국내 철거 현장의 80%를 장악하고 폭력을 행사해 악명을 날렸다. 이 무렵 20대 초반이던 이 회장은 적준에 몸을 담고 서울ㆍ경기 지역 재개발 예정지에 철거 '실행조'로 활동했다. 여기서 이 회장은 적잖은 성과를 냈다. 그런 이 회장은 당시 철거업체의 대부로 불리던 A씨 형제 눈에 들었고, 이들의 운전기사가 됐다.

그러던 1998년 A씨 형제는 적준의 사명을 다원건설로 바꿈과 동시에 27세이던 이 회장을 대표로 앉혔다. 철거업계 대부의 계보를 잇게 된 것이다. 이후 이 회장은 서울 철거사업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주요 개발지역 중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철거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이 회장은 2000년대 들어 부동산 개발업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검찰은 이 회장이 횡령을 저지른 게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계열사를 설립하거나 인수하는 등 무리한 사업확장을 하다가 손해를 보자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1,000억원대 횡령 수법은?

그렇다면 이 회장은 어떤 방식으로 회삿돈을 횡령했을까. 검찰에 따르면 이 회장은 2006년부터 자금 담당 직원들을 동원해 폐기물업체를 포함한 계열사들과 서로 허위 세금 계산명세서를 발행해 주거나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등의 수법으로 회삿돈 968억원을 빼돌렸다.

이 회장은 건설 계열사가 2006년 김포 신곡6지구 도시개발사업을 하면서 이사회 결의 없이 자금 150억원 상당을 자신이 세운 평택 가재지구 도시개발사업 시행업체에 대여했다. 이는 배임 행위에 해당한다.

이로 인해 건설 계열사는 사업자금이 부족해 신곡6지구 토지를 제대로 구입하지 못한데다 조합 설립과정에서 위법행위가 드러났다. 이에 2011년 인천지방법원으로부터 도시개발사업조합 설립인가처분 무효 판결을 받고 지난해 8월 도시개발구역지정이 해제됐다.

검찰에 다르면 이 회장은 평택 가재지구 도시개발사업 시행 과정에서 군인공제회로부터 2,700억원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받아 이 중 134억원을 빼돌리기도 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이 회장 개인 채무 변제에 사용했다. 그리고 나머지 자금은 2007년 부도위기에 놓인 건설사를 인수하는 데 사용됐다.

이 회장은 이후 청구의 자금 372억원을 횡령, 회생절차 종료결정을 받아 재기할 수 있던 회사를 파산에 이르게 했다. 건설사에서 횡령한 돈은 다시 골프장 업체 인수 등에 투입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평택 가재울 뉴타운사업의 시설공사에 참여, 하도급업체에 공사비를 과다 지급하고 다시 돌려받는 식으로 370억원을 챙겼다. 또 직원 90명 명의로 경북 포항의 아파트 90채를 허위 분양받아 중도금 명목으로 은행에서 168억원을 대출받은 뒤 갚지 않기도 했다.

범행 드러난 배경은?

범행은 자금관리담당하던 이 회장의 측근이 전ㆍ현직 세무공무원 3명에게 5,000여만원의 뇌물을 준 사실이 드러나면서 꼬리를 잡혔다. 정씨는 2008년 그룹내 철거업체에 대한 세무조사를 원만하게 해달라며 돈을 건넸다.

검찰은 비자금을 조성한 업체가 그룹내 계열사인 ㈜다원이앤씨와 ㈜다원이앤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수사를 벌여 왔다. 돈을 챙긴 세무공무원들은 지난 5월 실형을 선고받아 수감된 상태다.

검찰은 적발된 공무원은 빙산의 일각으로 보고 있다. 빼돌린 금액을 고려하면 로비를 하면서 곳곳에 돈을 뿌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또 도시개발과 재건축ㆍ재개발 사업에 나서 비교적 쉽게 공사를 따낸 점도 로비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이 회장의 횡령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ㆍ단체와 시공사들이다. 이 회장이 자금을 빼돌리면서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어서다. 먼저 군인공제회는 빌려준 2,700억원을 돌려받을 길이 사실상 막힌 상태다.

농협 컨소시엄도 다원그룹의 경기 김포신곡6지구 도시개발사업 대출금 6,500억원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업에 연대보증을 섰던 시공사 남광토건과 신동아건설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