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모레퍼시픽 '갑의 횡포', 결말도 남양유업처럼?

‘아모레퍼시픽 피해대리점주협의회’가 막말 녹취록 공개를 앞둔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예상된다. 사진은 25일 서울 중구 아모레퍼시픽 본사 앞에서 열린 방문판매 특약점 문제해결을 위한 기자회견. 연합뉴스
남양유업의 '밀어내기'로 촉발된 유가공업계 '갑질' 논란이 화장품업계로 옮겨가고 있다. 주인공은 전체 시장의 31.6%를 점유하며 당당히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이다. 남양유업 사태에서 문제가 됐던 '밀어내기'는 물론 '인력 빼가기', '강제계약종료' 등 횡포 내용도 만만치 않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남양유업을 침몰시켰던 녹취록이 아모레퍼시픽 사태에도 중요한 쟁점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남양유업과 유사한 과정을 밟고 있는 아모레퍼시픽 사태가 어떻게 결론지어질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계약종료 후 퇴직임원 자리 마련

국내 화장품업계 1위의 아모레퍼시픽은 550개에 달하는 특약점과 3만5,400명의 방문판매원을 두고 있다. 특약점은 본사와 취급상품ㆍ판매지역ㆍ거래조건 등에 관해 특별한 약정을 체결하고 있는 도매상으로 본사로부터 상품을 공급받은 특약점이 방문판매원을 통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구조이다.

상품공급의 독점성, 구매 및 판매망 통제시스템, 점포환경조성규정, 판매장려금 지급결정권 등을 지니고 있는 본사는 자연히 특약점에 대해 무소불위의 지배권을 갖게 된다. 이에 아모레퍼시픽 특약점주들은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갑의 횡포'에 반발하고 있다.

피해 특약점주 13명으로 구성된 '아모레퍼시픽 피해대리점주협의회'(이하 협의회)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은 남양유업이 자행하던 '밀어내기'를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본사가 부여한 목표실적에 도달하지 못하면 밀어내기식의 상품 구매를 강요해 적자 경영을 초래시킨다는 것이다.

특약점주가 어렵게 목표실적을 달성하더라도 이듬해에 5% 이상의 추가 목표액을 설정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본사는 판매 목표량을 초과 달성하고 특약점은 재고와 그에 따른 적자가 쌓여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된다.

협의회 관계자는 "특약점을 오픈할 때 최소 1억5,000만원 이상이 필요하고 5~7년은 있어야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며 "본사는 이미 안정화된 특약점 밀어내기를 해 경영실적을 악화시킨 다음 이를 이유로 특약점을 직영점으로 바꾸거나 새로운 점주로 교체한다"고 지적했다. 공백이 생긴 자리는 아모레퍼시픽 퇴직 임직원들에게 돌아간다. 임직원 퇴직 시 신규 특약점을 맡기를 권유하고 적극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아모레퍼시픽의 횡포는 우수특약점이라고 비껴가지 않는다. 회사 방침을 따르지 않았다거나 점주 교체 필요성을 이유로 방문판매원을 직영점 혹은 타 특약점에 나눠주길 요구하거나 계약기간을 단축하는 등 점주들을 압박, 특약점을 포기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에 반발하면 상품공급 중단, 컴퓨터 전산매출시스템 정지, 포기각서 강요 등의 횡포가 이어진다.

한 협의회 회원은 "10년 동안 사업을 해왔는데 아무런 협의 없이 '성실하지 않다'며 3개월밖에 연장계약을 못하고 계약 해지됐다"며 "일단 본사의 눈 밖에 나면 어떤 이유로든 계약 해지가 될 수밖에 없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아모레퍼시픽 측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계약종료의 경우 적법한 거래종료사유가 있을 때 사전에 충분히 논의하고 진행된다"며 "최소 3년간의 실적을 파악해 경영 개선이 안 되는 경우에만 종료하기 때문에 협의회 측이 말하는 일방적인 계약종료는 있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관계자는 "피해자라고 하는 분들은 판매장려금까지 포함해 기본적으로 매년 억 단위의 돈을 가져가고 있다"며 "심지어 협의회 회원 중 한 분은 자녀들이 특약을 운영하도록 추천했다고 하는데 손해가 크다면 왜 자녀들까지 끌어들이겠냐"고 반문했다.

녹취록 수위는 어느 정도?

공정위 조사에 정치권ㆍ시민단체마저 합류하며 점차 문제가 확산되고 있는 아모레퍼시픽 사태는 남양유업 때와 여러모로 유사하다. 본사가 '밀어내기'를 무기로 특약점(대리점)주들을 압박한 점, 피해대리점주협의회가 결성돼 공동대응하고 있는 점, 점유율 1위 업체인지라 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 등이다.

남양유업 사태와 닮은꼴인 이번 사건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막말 녹취록의 존재 여부다. 오랜 관행처럼 이어져 온 '갑의 횡포'가 전국민적 공분을 사기 시작하고 결국 피해대리점주들의 승리로 귀결될 수 있었던 것이 남양유업 영업직원의 막말 녹취록 덕분이었던 까닭이다.

실제로 화장품업계의 관심은 '아모레퍼시픽 피해대리점주협의회'(협의회)가 지니고 있다는 녹취록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지난 18일 우원식 민주당 최고위원이 "남양유업 같은 막말 녹취록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언급한 이후 이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증폭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아모레퍼시픽 측의 막말 녹취록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진행된 '화장품업계 을의 눈물' 7차 사례발표에 참석한 아모레퍼시픽 특약점주들은 하나같이 녹취록의 존재를 인정했다. 협의회에 따르면 5개 정도의 녹취록이 확보된 상태이고 이를 우 최고위원 측에 전달한 상태다.

그렇다면 최후의 한방으로 작용할 수 있는 녹취록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녹취록에 담긴 막말의 수위가 남양유업 때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남양유업 사태에서 녹취록이 문제시됐던 것이 '아버지뻘 되는 대리점주에 대한 폭언' 때문이었는데 아모레퍼시픽 녹취록은 막말 수위에서 부족해 파괴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협의회 측에 따르면 막말의 수위는 높지 않을지라도 그 내용은 만만치 않은 수준인 듯하다. 실제로 협의회 관계자는 "너무 나서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것이다", "순순히 특약점을 내놓지 않으면 옆에 직영점을 열어서 내놓을 수밖에 없게 만들겠다" 등의 내용이 녹취록에 담겨있다고 밝혔다.

이에 아모레퍼시픽 측은 "녹취록이 있다면 이미 공개했을 텐데 계속 이슈만 만들고 있다"며 "내부조사 결과 막말직원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협의회에서 주장하는 수준의 내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될 경우 그 파장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한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녹취록의 존재는 막말 수준과 상관없이 부담"이라며 "'칼은 칼집에 있을 때 가장 무섭다'는 말처럼 아모레퍼시픽 측으로서는 차라리 녹취록이 빨리 공개되기를 바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