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뒷돈요구 등 횡포 심각수위 넘어

드라마제작의 ‘명장’으로 통한 김종학 PD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방송사와 외주제작사간의 불평등한 관계를 놓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드라마제작사 협회 측은 김 PD의 죽음과 관련해 성명서를 발표하며 드라마 외주제작사의 불합리한 관행을 바로잡자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사단법인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측은 ‘한국 드라마의 살아있는 역사, ‘김종학’ 감독,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외주 드라마제작 시장 개선을 위해 제언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협회 측은 “고 김종학 감독의 명복을 빈다”라고 애도를 표시한 뒤 “김종학 감독은 한국 드라마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자존심이었다. 김종학 감독은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상 가장 큰 별 중에 한 명이었기에 그를 떠나 보내야하는 마음은 너무나 비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움 심경을 금할 수 없다”라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어 협회 측은 “대한민국 최고의 연출가였던 김종학 감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며 “한국 외주 드라마제작 시장의 자정되지 않은 환경, 제작 요소들 간의 이해관계에 따른 상생의지 부족 그리고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수직적 갑을 관계에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개선이 되어야 한국 외주 드라마제작 시장이 건전해질 수 있으며 이것이 故 ‘김종학’ 감독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라고 뜻을 밝혔다.

법제도부터 문제

주장 내용을 살펴보면 첫 번째로 한국 외주 드라마제작 시장 자정을 위해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의 신고제를 등록제로 개정해 줄 것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요청했다. 두번째는 드라마 제작 요소들 간의 상생을 위해 출연자와 작가들이 고액 출연료, 고액 작가료 요구를 자제해 줄 것을 촉구했다. 끝으로 방송사와의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수직적 갑을 관계를 벗어나 외주 드라마제작사에 합리적인 제작비를 산정하여 지급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 같은 촉구가 나온 것은 비단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방송가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외주제작 시스템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드라마 외주 제작은 흥행에 실패하면 출연료 미지급 등의 부작용을 낳아온 외주제작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1주일 기준 전체 22개 드라마에서 외주제작 비율은 63.6%다. 지난해 전체로는 75%에 가깝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신고된 드라마 외주제작사는 156개사(폐업 포함)다. 이 중 34개사가 만든 드라마가 지난해 방송을 탔고, 편성을 따내기 위한 출혈 경쟁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미니시리즈의 경우 보통 회당 최소 2억5,000만원의 제작비가 들어간다. 사극은 편당 2억원~5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상파 3사는 평균 50%가량의 제작비를 지원하지만 톱스타 출연료와 유명 작가 영입 비용 등을 고려하면 제대로 제작비를 지원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드라마를 제작해도 방영을 못하면 소용없기 때문에 방영에 대한 결정권을 쥔 방송사가 드라마제작에 대해서는 수퍼 갑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제작비가 부족하면 외주제작사는 방송사에서 받는 돈 외에 드라마 말미에 협찬 업체임을 알리는 ‘협찬 고지’ 등을 통해 제작비를 충당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경기 불황과 방송사의 횡포로 제작비 충당은 그리 쉽지 않은 문제다.

방송사-외주제작사 비리도

외주제작사는 방송사의 편성을 따내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방송사에 로비를 해야 하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또 세트장 사용과 각종 부대장비 이용 그리고 배우들 캐스팅에 이르기까지 드라마제작은 그야말로 방송사가 절대적으로 쥐고 흔든다. 그러면서도 방송사는 드라마제작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만 지원하는 구조다. 제작사가 난립하다보니 방송사 입장에서는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것이다.

드라마를 통한 매출도 방송사가 원하는 대로 계약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협찬 매출은 보통 100% 제작사가 갖지만, 일정액을 넘기면 방송사가 챙길 때도 있다. 드라마에 상표를 노출시키는 간접광고(PPL) 매출은 통상 방송사와 제작사가 반반씩 나눈다. 방영 시간 전후의 광고는 모두 방송사 수입이다.

방송사는 협찬 고지와 함께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국외 판권까지 제작비 산정에 넣는다. 하지만 협찬 고지 광고는 시청률에 영향을 많이 받고, 국외 판권료 또한 미래 가치로 확실치가 않다. 결국 제작사는 기본적으로 -50%의 상태로 드라마를 시작한다는 게 일반적인 의견이다.

심지어 출연자들도 방송사가 바꾸는 일이 허다하다.

한 프로덕션 관계자는 “방송사가 원하는 대로 맞추지 않으면 드라마가 편성되지 않거나 제작비 문제를 들어 편성을 연기하는 경우도 있다”며 “심지어 출연자들에 대해서도 방송사의 입김이 상당해서 방송사가 원할 경우 출연자를 교체하는 상황도 발생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외주제작과 관련해 세트장 공사나 이용 그리고 조명 등 각종 장비에 이르기까지 방송사가 원하는 업체에 원하는 가격을 주고 드라마를 제작하기도 한다”며 “방송사 관계자들이 리베이트를 챙기기 위한 것으로 따르지 않을 경우 드라마 제작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연출된다”고 털어 놓았다.

김종학 PD는 23일 오전 10시 20분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의 한 고시텔 5층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공식 입장.

첫째, 한국 외주 드라마제작 시장 자정을 위해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의 신고제를 등록제로 개정해 줄 것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요청 드립니다.

2012년 기준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 신고 된 독립제작사는 896개이며 이 중 드라마제작사는 156개가 있습니다. 그러나 2012년 한 해 동안 드라마를 제작했던 외주 제작사는 총 34개 회사입니다. 이는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얼마나 많은 드라마제작사들이 난립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문제는 1년에 한 편도 제작하지 못하는 나머지 122개 제작사들의 대부분은 제작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 신생 제작사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들 제작사는 방송사의 편성을 받기 위해 드라마제작 시장을 교란시키면서까지 고액의 출연료와 고액의 작가료를 지급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협찬고지를 통한 광고영업이 잘 되고 시청률이 잘 나와 높은 가격에 해외 판매가 된다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겠지만 예상과 다른 결과가 발생한다면 상대적 약자인 연기자들의 출연료와 스태프 인건비가 미지급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제작 역량이 부족하여 문제를 발생시키는 드라마제작사들이 더 이상 난립하지 않게 하며, 일정 자격 조건을 갖춘 제작사만 드라마 제작업을 할 수 있도록 기존의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의 독립제작사 신고제를 드라마제작사에 한해 등록제로 개정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기존에 등록된 제작사라고 할지라도 출연료 미지급 등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을 때 제재할 수 있는 ‘패널티 제도’도 함께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드라마 제작 요소들 간의 상생을 위해 출연자와 작가들이 고액 출연료, 고액 작가료 요구를 자제해 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일부 고액의 출연료와 작가료를 받는 출연자와 작가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과 기대만큼 당연한 대가를 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너무나 어려운 외주 드라마제작 시장 환경을 고려하여 시장 가격을 상회하는 고액의 출연료와 작가료 요구를 스스로 자제하여 제작사와 출연자, 작가 그리고 제작에 참여하는 모든 제작요소들이 상생할 수 있는 드라마 제작 환경을 만드는데 일조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셋째, 방송사는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수직적 갑을 관계를 벗어나 외주 드라마제작사에 합리적인 제작비를 산정하여 지급해 줄 것을 요청 드립니다.

방송사는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미래 가치인 협찬고지를 통한 광고영업과 해외 판매에 대한 수익 배분을 미리 계산하여 제외하고 외주 드라마제작사에게 제작비를 지급하고 있으며, 모든 권리를 방송사에 귀속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제작비 산정기준과 권리 분배는 제작 역량이 뛰어난 제작사들도 정상적인 수익구조를 발생시키기 힘들며, 제작 역량이 부족한 제작사들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하여 출연료나 스태프 인건비 미지급 등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이에 우리는 방송사가 합리적인 제작비 산정기준에 근거하여 외주 드라마제작사에 제작비를 지급해줄 것을 요청 드리며 공정한 드라마제작 시장구조를 만들어 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故 ‘김종학’ 감독을 가슴으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한국 외주 드라마제작 시장이 건전하게 개선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