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서 시작된 한반도 훈풍 서울광장 바람 밀어낼까

개성과 금강산, 서울광장, 그리고 성남 국가기록원.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세 곳이다. ‘개성과 금강산’은 남북한 대결과 화해의 상징으로 박근혜정부 들어 훈풍이 감돌며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광장’은 민심과 소통의 장(場)으로 촛불집회가 열리고 최근엔 민주당 천막당사까지 세워져 정국 방향의 리트머스가 되면서 관심이 점증하고 있다.

‘성남 국가기록원’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의혹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이 압수수색을 벌이면서 그 결과에 따라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반에 후폭풍이 예상된다.

이들 세 이슈 장소는 각기 다른 어젠다(agenda)와 사건으로 별개의 곳으로 여겨지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서로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관계로 얽혀 있다.

박 대통령 여론 유세

우선 세 이슈 장소의 표면적인 관계성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은 이명박정부에서 줄곧 닫혀 있다가 박근혜정부 들어 새롭게 열리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로 이어지고 있다.

25일로 취임 6개월을 맞은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50%를 넘고 있다. 이 같은 지지율은 취임 6개월 당시 이명박ㆍ노무현 전 대통령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이러한 높은 지지율의 가장 큰 동력은 대북정책과 외교 성과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과 촛불집회에서 ‘하야 요구’ 등 안티 분위기가 상존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개성공단을 포함한 한반도의 훈풍이 서울광장의 한풍을 밀어낸 것으로 읽힌다.

서울광장의 열기가 주춤하면서 장외투쟁을 강화하겠다고 한 민주당은 딜레마다. 국회 입성을 반대하는 당내 강경파의 목소리가 높고 원내외 병행투쟁이 여당에 끌려 다닐 수 있다는 우려에서 천막 강도를 높이기로 했지만 여론이 부담이다. 장외투쟁에 동조하는 촛불이 있지만 성숙한 정당정치를 기대하는 국민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으로 개성공단이 정상화, 확대되고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관계의 긍정적 변화가 예정돼 있어 야권의 장외투쟁은 약발이 기대에 못미치거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민주당은 남북관계 이슈가 다른 사안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던 전례에 비춰 자칫 천막당사마저 무너지지 않을까 경계한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그같은 전망이 현실화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초(史草) 실종’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도 정국의 변수다. 수사 결과는 세 가지로 예상된다. 대화록이 노무현 청와대 업무관리 시스템인 이지원(e-知園)에 있을 경우, 노무현정부에서 대화록이 삭제된 사실이 드러나는 결과, 그리고 이명박정부 때 대화록이 사라진 경우다.

대화록이 발견되면 수사는 헤프닝으로 끝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할 가능성이 높다. 대화록 내용에 따라 박근혜정부와 야권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

노무현정부 때 대화록을 삭제한 사실이 드러나면 민주당, 특히 친노(친 노무현)파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 이명박정부 시절 대화록이 사라졌다면 주범 및 박근혜정부와의 연계 여부가 쟁점화 될 수 있다.

이슈 관계 복잡하게 얽혀, 한쪽 타격

앞서 세 이슈의 내부적 관계성은 보다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다. 상대 측에 미치는 영향도 파괴적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의 경우 뼈대는 남북관계다. 남북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서울광장의 촛불도, 거기에 터잡은 민주당 천막당사도 영향을 받게 된다. 더구나 민주당의 두 축인 호남 민주계와 친노파는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당사자여서 남북관계의 직접적인 영향권하에 있다.

성남 국가기록원의 압수수색 대상인 정상회담 대화록 역시 남북관계에 관한 것이다. 대화록은 남한에서 실종 논란에 행방이 묘연하지만 북한엔 원본이 존재한다.

세 이슈의 중심에 남북관계가 자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남북관계는 박근혜정부 출범 초부터 개성공단 문제로 시험대에 올랐다. 남북 양측의 입장에 따라 개성공단이 영향을 받고, 그 반대의 현상도 나타났다. 박근혜정부와 북한이 어떤 관계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남북 현안들이 좌우되는 양상이다.

최근 남북관계는 강온 대결과 대화를 거친 후 순항하는 모양새다. 개성공단 정상화가 가시화 되고 이산가족 상봉도 추석 직후 성사될 예정이어서 남북관계는 그 어느때 보다 전망을 밝게 한다.

더욱이 눈여겨볼 대목은 남북관계의 구조적 변화다. 박근혜정부 들어 남북관계는 이전 정부와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다. 즉, 우리 정부가 북한을 대등하거나 우월적 입장에서 상대하는 점이다. 개성공단 문제와 남북대화를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는 김대중ㆍ노무현 정부가 겉으론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지만 ‘을(乙)’ 입장에서 끌려다닌 것과 크게 다르다. 이명박정부의 융통성 없는 강경 일변도의 대북 정책과도 격을 달리한다.

박근혜정부는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신뢰프로세스에 기반해 대규모 대북지원인 ‘한반도 마셜플랜’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져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이는 앞서 여론조사가 말해주듯 박 대통령 지지율 상승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반면, 서울광장의 야권에는 압박으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더구나 천막투쟁을 주도하는 민주당의 호남파와 친노계가 2000년,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당사자라는 점도 야권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호남파의 좌장격인 박지원 의원은 2000년 정상회담 성사의 밀사 역할을 했고, 친노계를 대표하는 문재인 의원은 2007년 정상회담 추진위원장이었다.

두 의원은 지난 대선을 주도한 ‘이박문’(이해찬 대표-박지원 원내대표-문재인 대선후보)의 당사자로 지금도 강력한 정치 파워로 막후에서 김한길 대표 체제의 민주당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민주당이 여의도를 나와 서울광장에서 천막투쟁을 결행하게 된 배후에 호남 강경파와 친노계의 힘이 작용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성남 국가기록원의 대화록도 남북관계의 연장선에서 야권을 옥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의 자료를 원본 그대로 소장하고 있다. 김대중-김정일 대화와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이 담긴 정상회담 대화록의 원형이 북한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화록 원본을 갖고 있는 북한은 또 다른 ‘갑(甲)’인 셈이다. 대화록이 공개돼 ‘NLL 발언’의 실체가 드러날 경우 박근혜정부든, 민주당이나 친노파든 한쪽은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북한 전문가는 “대화록의 본질은 NLL이 아니라 다른 데 있다. 그것 때문에 정상회담이 가능했다”면서 “대화록이 사라졌다면 정상간 대화의 핵심이 부담스러운 누군가 손을 댔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대화록 본질’에 대해 2000년 정상회담 때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비밀리에 한 ‘약속’이라고 했다. 하지만 ‘밀약’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함구했다. 다만 상상을 뛰어넘는, 국가적으로 큰 부담이 되는 ‘대규모 북한 지원’이라고만 설명했다.

그는 ‘밀약’ 때문에 퇴임 2개월가량 앞둔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간에 비상식적인 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성사됐다고 말했다. 이어 1개월 뒤인 2007년 11월 북한의 김양건 통전부장이 갑자기 남한을 방문해 이명박 전 대통령을 극비리에 만난 것도 ‘밀약’과 관련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2002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대화에서 ‘밀약’에 대해 들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대화록 증발’에 대해 박 대통령이 강력한 수사를 촉구한 것도 그러한 배경 때문이라는 설(說)도 있다.

논란이 된 ‘사초 실종’ 의혹과 관련해 대화록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북한 전문가는 “ ‘밀약’으로 인해 부담을 갖게 되는 쪽에서 대화록을 훼손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때문에 현재 검찰이 국가기록원에서 찾고 있는 대화록은 없거나 있더라도 원형에서 많이 훼손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는 대화록도 원형과 다를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이 대화록을 들고 ‘갑’ 행세를 할 수도 있어 직접 당사자인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인사들의 대응이 주목된다.

이와 관련, 박지원 의원과 문재인 의원이 대화록 공개를 놓고 상반된 입장을 보인 것은 여러 해석과 추측을 낳고 있다.

박 의원은 대화록 공개는 물론, 육성파일 공개에 강하게 반대했다.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선 문 의원의 대화록 공개 입장에 대해 “성급하고 잘못된 판단”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반면, 문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NLL에 대한 진의를 알리기 위해 대화록 전체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해 ‘국정원 정국’을 촉발시키는 단초를 제공했다.

박 의원은 대화록 공개를 반대한 것과 관련, 정상 외교의 신뢰성을 상실하고 남북 관계를 파탄 내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밀약’의 부담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북한 소식통은 “만일 대화록과 육성파일이 공개돼 ‘밀약’이 드러날 경우 김대중정부와 민주당은 불리할 수밖에 없고 당사자인 박 의원은 표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 의원이 대화록 공개를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 ‘밀약’을 몰랐을 수도 있지만 문 의원이 알면서도 (밀약의)직접 당사자가 아니고 보다 큰 현안 때문에 공개하자고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문 의원이 여권과 보수진영의 공격을 차단하고 대선 이후 움츠렸던 친노그룹의 재기를 도모하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분석했다.

최근 박 의원과 문 의원은 또 다른 행보도 눈길을 끌었다.

박 의원은 2일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기남 노동당 비서 등을 만나 우리 정부와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을 설명할 기회를 허락해 달라"며 정부에 방북 승인을 요청했다. 박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에 출연해 "남북관계발전특위 위원장으로서 북한에 가서 그런 분들을 만나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의 입장과 국제적 흐름을 직접 설명하고 싶다"며 그같이 밝혔다.

하지만 박 의원이 방북하려는 진의가 다른 데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북한 전문가는 1차 정상회담 때 한 ‘밀약’과 관련한 얘기를 전하기 위해 방북하는 것으로 결국 박근혜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꼼수’라는 분석이다.

한편 문 의원은 서울광장에서 열린 국정원사건을 규탄하는 민주당 국민보고대회와 촛불집회에 불참했다. 문 의원이 장외투쟁에 합류할 경우 ‘대선불복’ 논란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주변에서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문 의원이 대화록 공개 발언으로 발목이 잡힌 데다 국정원사건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였다가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박근혜 ‘하야 요구’ 넘나?

한편, 개성공단, 서울광장, 성남 국가기록원이 상징하는 이슈에 직면해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가 주목된다.

먼저 개성공단을 포함한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원칙’을 고수하는 모양새다. 박 대통령은 ‘신뢰’를 바탕으로 북핵을 포함해 국제적인 룰의 테두리에서 남북관계를 전개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북한판 마셜플랜’에 대해서는 확고하게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서울광장과 대화록과 관련해선 박 대통령은 야권 및 촛불과 간극이 큰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에 대해 “터무니 없는 모략” “민주당이 국정원 여직원을 감금하고 인권을 침해한 것”으로 평가했다. 새 정부 출범 후엔 지난 6월 처음으로 “‘국정원 댓글'과 ’NLL 발언‘이 지금까지 논란이 되는 것은 유감”이라며 국정조사에 맡기는 방안을 언급했다. 그리고 줄곧 직접 대응을 하지 않고 외면하거나 침묵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이에 서울광장과 야권은 박 대통령이 책임을 회피하고 국민과 ‘불통’하는 것이라며 공세를 취하고 있다. 국정원 사건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가 하면 일부에선 ‘대통령 하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세 이슈를 사이에 두고 박 대통령과 민주당ㆍ촛불시위의 힘겨루기는 팽팽하다.

박 대통령은 세 이슈에 강경하고 원칙적인 입장이다. 일부에선 박 대통령이 남북관계와 대화록에 대해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박 대통령이 ‘밀약’을 알고 있거나 대북관계에서 ‘갑’이 될 수 있는 위상을 확보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뒤따른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서도 “(국정원 선거 개입을) 나는 알지 못했고, 도움 받은 바도 없다”고 말하거나 ‘대화록 증발’에 강력한 수사를 촉구한 것은 그러한 자신감의 연장에서 나온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과연 서울광장에서 메아리치는 “책임지고, 하야 하라”는 요구를 넘어서 현재와 같은 고공 지지율을 유지할 지 두고 볼 일이다.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