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득 4만달러 시대 위해 K푸드 표준화 시급외식 규제 풀고 농산물 수출 지원… 독창.정체성 담아 영문표기 통일'김치→기무치' 둔갑 사태 차단

한 식품기업이 외국인들과 함께 한식 세계화를 위한 궁중요리 시연회를 진행하고 있다. 타 산업과 연관성이 높고 문화적 파급효과가 큰 K푸드가 한류의 종착역이 되기 위해서는 글로벌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는 표준화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프랑스의 달팽이 요리, 일본의 스시, 베트남의 쌀국수, 인도의 카레. 그 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음식으로 자리잡은 음식들이다. 스시 가게는 미국에서 고급 레스토랑으로 인식되고 쌀국수는 미국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인기몰이를 하다가 전세계로 퍼지면서 베트남의 인지도를 한층 높였다. 프랑스의 달팽이 요리 역시 하이엔드급 고급 요리로 이미지를 굳혔다.

그러나 아직까지 전세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국을 상징하는 K푸드는 딱히 없는 형편이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시작한 한식 세계화 사업이 사업추진 과정에서 규정위반ㆍ예산전용 등 문제가 많았다는 감사원의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문화적 파급 효과가 가장 큰 K푸드가 한류의 종착지가 되기 위해서는 표준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K푸드는 가장 강력한 한류

여러 문화 한류 콘텐츠가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독성이 강하고 지속성이 뛰어난 것은 바로 식문화인 K푸드다. 입맛이야말로 한번 길들여지면 오랜 기간 빠져드는 생활습관인데다 다른 산업과 연계 효과가 크고 국가 이미지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조윤제 우송대 글로벌한식학과 교수는 "현재로서는 K푸드와 K팝 등을 연계한 시너지 효과를 통해 K컬처를 완성시키는 중장기 전략이 없는 편"이라며 "식문화는 타 산업과 연관돼 있기 때문에 국가 브랜드 이미지 제고 같은 거시적인 전략과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크고 작은 식품기업들이 해외진출을 꾀하고 있지만 그나마 해외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성된 것은 2010년 론칭한 CJ푸드빌의 비빔밥 브랜드 '비비고' 정도에 그친다고 할 정도로 한식 세계화의 현실은 답답한 수준이다.

비비고는 최근 세계적인 식품 트렌드인 웰빙식을 지향하며 선택해 먹기를 즐기는 외국인들의 식습관에 맞춰 밥ㆍ토핑ㆍ소스 등을 고를 수 있도록 현지화해 미국ㆍ중국ㆍ영국ㆍ싱가포르ㆍ일본 등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고유의 비빔밥마저 일본ㆍ미국 등이 호시탐탐 브랜드화를 노리고 있다. 뉴욕ㆍLAㆍ파리ㆍ밀라노ㆍ도쿄 등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으로 유명한 일식 레스토랑 '노부'는 최근 비빔밥을 신메뉴로 추가했다. 비비고 브랜드와 콘셉트를 그대로 따다 쓴 미국의 유명 레스토랑까지 나오고 있어 전세계에서는 총성 없는 먹거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비빔밥 세계화 초기단계에서 주도권을 빼앗기면 종주국의 위상마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각국 입장에서 보면 음식 종주국은 있어도 판매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표준화해야 한다"며 "김치가 우리가 넋 놓고 있는 사이 일본식 명칭인 '기무치'로 통용되면서 일본 식품으로 둔갑한 것처럼 '제2의 기무치' 사태가 발생하지 말란 보장이 없다"고 우려했다.

촌각 다투는 K푸드 표준화

문제는 K푸드가 현재 글로벌 니즈를 만족시키기에는 표준화가 제대로 이뤄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극소수의 일부 기업만이 한식 세계화를 위한 중장기 투자전략을 진행하다 보니 여전히 글로벌 식문화 전쟁에서 헤게모니를 쥐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K푸드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세계 속의 한식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고 이를 표준화시키는 것이 선결과제다. 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이 볼 때 '순두부=한국' 또는 '청국장=한국'처럼 인식할 만한 한국 음식의 원형을 그대로 갖고 그 나라 특색에 맞게 현지화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한식이 외국인에게 도전해야 할 미지의 맛인 만큼 독창성과 정체성을 기본으로 세계인의 입맛과 식습관, 각 지역의 특징을 잘 파악해야 한다"며 "우리 음식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현지 음식문화를 접목한 음식이 바로 한식 세계화의 기본요소이며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입장에서 한식을 쉽게 여길 수 있는 메뉴를 내놓는 것도 한 방법으로 꼽힌다. 최지아 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 대표는 "한식의 새로운 기획과 연출을 통해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비주얼로 외국인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시도들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우리만의 음식재료와 요리 영문표기를 통일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본 음식이 미국에서 보폭을 넓혀갈 때 맨 먼저 한 일이 일본 음식재료와 요리의 영문표기를 통일하고 이를 설명하는 작업이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정부의 측면지원도 필수

민간 주도의 한식 세계화가 속도를 내려면 해외에 나가기 앞서 외식산업이 우선 국내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최근 외식기업이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되는 등 국내 점포확장이 불가능하다 보니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어가는 해외사업에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다. 미국 최대 외식브랜드 'Yum'이나 맥도날드 같은 매출 수십조원의 글로벌 자본들은 자국 정부의 막강한 지원과 자국 내 성장을 발판으로 전세계에 그들만의 식문화를 전파시켜왔다.

이와 함께 민간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할 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각국 규제에 대한 정보지원과 더 나아가 각국 규제까지 완화해줄 수 있는 정부의 외교적인 노력도 수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종국에는 '메이드 인 코리아푸드'를 구현하기 위해 우리 농산물의 수출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 교수는 "한국의 식재료를 그대로 가져다 쓰지 않고서는 사실상 한국 음식을 재현하기가 쉽지 않다"며 "정부가 적어도 일부 관세나 운송비를 지원해 신선한 국산 원재료를 쓸 수 있도록 해주면 우리 농가와 외식기업들 모두에 윈윈"이라고 제안했다.



심희정기자 yvett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