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국·김선용 등 267명 추적11명에게 714억원 추징금… 국제 공조 해외정보 수집 강화올해 안 조사 마무리 자신감

김연근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이 3일 서울 종로구 국세청 브리핑 룸에서 역외탈세 조사실적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외탈세에 대한 국세청의 칼바람이 거세다. 국세청은 최근 역외탈세 혐의자 267명의 신원을 확보하고 정밀 검증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이 중 11명에게 714억원의 추징금이 부과됐다. 이 밖에 같은 혐의를 가진 28명에 대한 조사도 진행 중이다.

국세청의 조사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6월 400GB 분량의 자료를 입수한 이후부터다. 국세청이 대량 정보를 일괄 수집한 건 이번이 처음. 국세청의 표정에 자신감이 넘치는 이유다. 반면, 표적이 된 기업들은 초주검 상태다. 언제 국세청의 타깃이 될지 가늠할 수 없어서다.

역외탈세자 주요 수법은?

국세청은 이번 정권 들어 역외탈세에 팔을 걷어붙였다. 미국ㆍ영국ㆍ호주 국세청 등과 국제 공조를 강화하고, 해외 요원 파견을 확대하는 등 정보수집 활동을 벌여 왔다. 그 결과 지난 6월 주요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와 관련된 자료를 입수했다.

국세청은 해당 자료의 주주ㆍ임원 인적사항 및 미공개 재무정보 분석을 통해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495명의 명단을 추출했다. 현재까지 신원이 확인된 인물은 모두 267명. 11명에게 714억원을 추징했다.

전재국
국세청이 밝힌 역외탈세자들의 수법은 혀를 내두를 만했다.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뒤 폐기물 등을 정상적인 원재료로 위장 수입하는 수법으로 기업 자금을 해외로 유출하고 은닉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현지 법인에 기술용역 제공 명목으로 받은 대가를 자신이 설립한 페이퍼컴퍼니 계좌에 넣어 해외 소득 신고를 누락한 일도 있었다. 또 국내 거래처에 용역을 제공해 놓고 페이퍼컴퍼니가 용역을 제공한 것처럼 허위 계약서를 작성해 수수료를 챙기기도 했다.

'살생부' 포함된 인사는?

이번에 추징금 처분을 받은 11명은 시작에 불과하다.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이들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살생부'에는 과연 누가 포함돼 있을까. 국세청은 뉴스타파가 지난 5월 발표한 역외탈세 의심자들은 모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입장이다.

이를 감안하면 현재 역외탈세 관련 조사 대상자의 윤곽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국세청은 먼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삼남 선용씨가 명단에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김선용
재국씨는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 계좌를 통해 자금을 거래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또 선용씨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베트남 하노이에 600억 원대 호화 골프장을 보유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국내서 내로라할 재벌가 일원도 '블랙리스트'로 거론된 바 있다. 이수영 OCI 회장과 부인 김경자 OCI미술관 관장,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의 부인 이영학씨, 조욱래 DSDL 회장과 그의 장남 현강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용민 전 한진해운 대표, 황용득 한화역사 사장, 조민호 전 SK증권 대표이사 부회장 부부, 이덕규 전 대우인터내셔널 이사, 유춘식 전 대우폴란드차 사장 등 대기업 CEO들도 역외탈세 의혹을 받은 바 있다.

국세청 자신감 배경은?

국세청의 기세는 등등하다. 국세청은 역외탈세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가 높은 만큼 가능하면 올해 안에 조사를 마무리짓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충만한 자신감을 읽을 수 있는 대목. 그 배경엔 국세청이 지난 6월 확보한 400GB 분량의 자료가 있다.

해당 자료는 페이퍼컴퍼니 설립 전문 대행사에 의해 만들어졌다. 자료엔 설립 목적은 물론 재무정보, 설립 대리인, 회사명, 임원과 주주의 인적사항, 이메일 송부자료 등 페이퍼컴퍼니를 둘러싼 각종 정보가 포함돼 있다.

해당 자료에 나타난 페이퍼컴퍼니의 최초 설립 시점은 2000년대 이전이다. 페이퍼컴퍼니의 설립이 가장 집중된 건 금융위기 당시인 2007년과 2008년 사이다. 2009년 이후 설립 내용은 아직 확인이 안 된 상황이다.

국세청 조사는 이 자료를 확보한 이후 급물살을 탔다. 추징금 철퇴를 맞은 11명 외에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도 세무조사가 진행 중이다. 여기에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138명에 대한 분석이 완료되면 대상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신원확인 과정에서 탈세 혐의가 드러나면 추가로 조사할 계획"이라며 "다만 기업들의 정상적인 경영행위와는 구분해 기업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국세청 감시망 '촘촘' 전망

조세피난처는 그동안 '가진자'들 사이에서 탈세와 돈세탁용 자금 거래의 온상으로 애용돼 왔다. 세제상의 우대뿐 아니라 규제가 적어 기업 경영상의 장애요인이 거의 없음은 물론 금융거래의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되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현재 조사에도 박차를 가하는 한편, 향후 역외탈세에도 제동을 걸 계획이다. 국세청이 감시망을 더욱 촘촘히 하고 있어서다. 먼저 국세청은 역외탈세 조사 역량 강화를 위해 2009년 역외탈세 추적 전담센터를 출범시켰다.

또 국제탈세정보교환센터(JITSIC)에 가입하는 한편 한·미 동시 범칙조사 약정(SCIP) 체결,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도 등을 잇따라 도입했다. 여기에 관세청과 역외탈세 및 외환거래 관련 국·관세 탈루 등 혐의 정보를 공유키로 하기도 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역외탈세는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뒤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기 때문에 통상적인 관리 방안으로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며 "앞으로 역외탈세에 대한 국제 공조와 해외정보 수집 활동을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응철기자 sec@hk.co.kr